IMO(국제해사기구)가 채택한 ‘선박 대기오염물질 배출규제협약’(MARPOL)이 오는 5월19일 발효됨에 따라 국내 해운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외국의 각 항구에 입항해야하는 국내 선박들이 협약을 위반했을 경우 입항금지라는 불이익과 함께 막대한 벌금을 물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바닷길을 통한 수출에 목을 매고 있는 국내 제조업체들의 어려움도 예상되며, ‘환경문제는 곧 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도 정립될 것으로 보인다.
선박의 대기오염 관련 규제 엄격
‘MARPOL’이란 지난 2월16일 발효된 오존층 파괴의 주범인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채택된 기후변화협약인 ‘교토 의정서’가 해양에 적용된 것으로 보면 된다. IMO가 이 협약을 제정한 이유는 선박 운항으로 인한 대기오염물질의 배출을 줄여보자는 것이다.
즉 선원이나 선박에 한정돼 제정돼왔던 기존의 협약과는 달리 선박의 운항과정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물질의 배출을 규제해 지구 대기환경의 질을 개선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최재선 부연구위원이 제공한 자료를 보면 이 협약은 지난 1997년 해양오염방지협약(MARPOL 73/78)의 제6부속서 형태로 채택돼 비준한 나라만 15개국에 이르고 지금까지 가입한 국가의 선박량은 전 세계 상선대의 54.57%에 달한다. 우리나라도 이 협약이 포함돼 있는 MARPOL 협약 뿐만 아니라 다른 부속서에도 가입돼 있어 비준을 거부할 명분이 없는 실정이라 협약의 착실한 이행이 요구되고 있다.
이와 관련 에피시미우스 미트로폴로스 IMO 사무총장은 지난해 “이 협약이 발효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쁘다. 이 협약의 발효로 전체 6개의 부속서로 되어 있는 선박해양오염방지협약을 완전히 이행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각 부속서에 포함돼 있는 내용도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게 됐다. 이 협약뿐만 아니라 지난 2001년에 제정된 선박 방오도료 사용규제협약과 선박 밸러스트 수 및 침전물 관리협약도 빠른 시일 내에 시행될 수 있도록 회원국들이 적극 비준해 달라”고 촉구하고 나선 것으로 알려져 선박의 오염물질 배출규제가 해양은 물론 대기환경의 질 개선에 있어서도 중요한 현안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해운선사, 시설비용·리스크 부담 증가
이 협약은 또 선박의 대기오염물질 사용금지 외에도 휘발성 유기화합물의 배출과 선박에서 발생하는 기름이 묻은 쓰레기의 소각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연료유에 대해서도 유황성분이 적은 벙커유 사용 등 환경, 생태적으로 민감한 해역을 운항하는 선박의 항해는 더 까다로워 졌다. 이 기준보다 더욱 낮은 저유황 선용유 사용이 의무화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박 입·출항에 따른 절차가 까다로워지게 되므로 국내 선사가 이를 어겼을 경우 막대한 금액의 벌금을 물어야 하며, 입항지연에 따른 수출화물 하역 지연 등 화주에 대한 위험부담도 크게 늘게 됐다.
최재선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이 협약의 경우 가입하지 않은 국가의 선박에 대해 특별한 혜택을 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어 비준을 간접적으로 강제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이 협약이 포함돼 있는 MARPOL 협약뿐만 아니라 다른 부속서에도 가입하고 있어 비준을 거부할 명분이 없으므로 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특히 발트해, 북해 등 환경에 민감한 지역의 경우 협약에 따른 연료유 사용이 다르기 때문에 2개 이상의 연료탱크를 여기에 맞춰 설치해야 하는 비용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며, 협약 위반시 입출항 지연에 따른 화주의 리스크 부담도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된다 ”고 덧붙였다.
최 부연구위원의 우려와는 달리 국내 해운선사들은 이번 협약 발효에 비교적 차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비준에 따른 준비를 철저히 해왔다는 자신감에 따른 것으로 보여 진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그동안 선박점검, 하주에 대한 서비스를 단계적으로 강화해 왔기 때문에 MARPOL협약 발효가 발등의 떨어진 불은 아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협약이후 오는 2008년까지 3년마다 조사가 이뤄지는 대기오염방제시설증설이 큰 부담이 되고 있어 이 문제도 철저히 대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하주협의회 하주지원팀 김길섭 팀장은 “이번 협정발효는 해운선사들이 안고가야 할 문제이지만 신경이 전혀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부도 선박에 대한 검사를 강화하고 해운선사들도 수출화물 운송에 지장이 없도록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 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이 협약 외에도 최근 세계 각국이 자국 항만 내 입항하는 선박에 대해 대기오염을 규제하려는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최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 항만당국이 접안 중인 컨테이너선에 저유황 연료사용을 요구하는 외에 항계 20마일 이내에서 운항속도를 12노트 이하로 감속토록 했다.
또 일본 도쿄항 역시 지난해 10월 정박 중인 선박의 질소산화물 배출 규제에 착수한데 이어 본격적인 항만대기오염 저감정책을 추진하는 등 ‘친환경적 물류’로의 체질개선이 세계적 추세이자 국가적 필수사항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에 대한 정부의 국·내외적인 방어도 중요한 문제로 부각됐다. 국적선 뿐만 아니라 한국 항만 내 입항하는 선박들에 대한 규제에도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이다. 최 부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국제항해에 종사하는 400톤 이상의 선박에 대한 검사강화와 국제대기오염방지증서 발급 △외국선박에 대한 제1146호 항만국 통제 강화 △휘발성 유기화합물의 배출을 통제하는 항만 지정 및 배출방지시설 설치 △협약 가입국의 재량에 맡겨져 있는 400톤 이하의 선박에 대한 이 협약의 규정을 적용할지의 여부도 빠른 시일 내에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최 부연구위원은 “MARPOL협정은 해운선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 선사, 무역 관련협회가 공동으로 전문위원회를 구성해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신정훈기자/sjh@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