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에너지 식민국'의 설움을 톡톡히 당하고 있다. 일본 등 다른 경쟁국과는 달리 대외 석유 의존도가 높아, 끝을 모르고 치솟는 국제유가로 '불황탈출'의 행보에 제동이 걸린 것. 전문가들은 "'고유가 장기화'가 지속될 경우 경기회복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편집자 주>
한국경제의 주요지표라고 볼 수 있는 중동산 두바이유(Dubai)가격이 지난해 초 배럴당 30달러 대로 상승하면서 '유가 고공행진'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6일을 기점으로 사상처음 배럴당 50달러를 넘어섬에 따라 '고유가 쇼크'가 국내 산업에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국제유가의 추가상승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지만, OPEC의 움직임과 중동 현지 사정에 따라 상승여력이 아직 남아 있어 고유가가 장기화될 경우 국내 산업계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유가 46달러면 경제성장률 0.53%P 하락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이와 관련 국내 산업계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는 유가의 고공행진의 원인을 세계경기 호조에 따른 수요의 급상승으로 분석하며, 유가가 배럴당 38.25달러일 경우 경제성장률이 당초 예상보다 0.19%포인트 둔화되고 46.5달러까지 올라가면 성장률은 0.53%포인트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원은 특히 중국 등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고성장세 지속과 미국의 경기호조에 따라 석유수요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세계 석유수요 증대지속 여부 △OPEC의 고유가정책 지속추진 여부 △이란 및 이라크 정세불안 악화 여부 △미국의 가솔린시장 동향 여부 등이 주요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석유공사도 1·4분기에 벌써 석유가격이 초강세의 조짐을 보임에 따라 2·4분기도 동절기종료 및 비수기진입에 따른 수요 감소와 OPEC의 증산 등의 영향으로 1·4분기보다 유가가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지만 미국 가솔린성수기진입과 생산능력 제약, OPEC의 고유가정책 등을 고려할 때 하락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공사는 또 3·4분기도 2·4분기의 원활한 재고증가가 이루어질 경우 수급에 다소 여유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4·4분기 성수기를 앞두고 있고 공급능력이 제약을 보이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유가는 2·4분기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아울러 4·4분기에는 2·4~3·4분기 중 충분한 재고증가가 이뤄지고 미 가솔린 성수기가 종료된다는 점에서 유가안정 여지가 있지만 OPEC의 고유가정책, 4·4분기 성수기진입에 따른 수요 증대 등을 감안하면 유가 상승압력이 강할 것으로 분석했다.
외항해운업계 올해 추가비용 천문학적
지속적인 국제유가 상승으로 국내 외항해운업계는 지난 2003년과 비교해 볼 때 올해 약 1조원 이상의 추가부담이 예상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정봉민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국내 외항해운업체들이 운항 중 소모하는 연료비는 지난 2003년에만 1조8,005억원에 달했다. 이것은 전체 운항원가의 19.6%에 달하는 것. 따라서 국제 유가가 10% 상승하면 국내 외항해운업체가 추가로 부담하게 되는 연료비는 연간 약 1,801억 원에 달하며, 운항원가는 약 2% 상승하게 된다.
지난해의 경우 전년도에 비해 두바이 유가가 20.2% 상승했다. 외항해운업체들의 운항원가는 전년도 대비 약 4% 상승, 약 3,637억원이 추가됐다. 또 올해 3월15일 기준으로 보면 두바이 유가는 배럴당 46.49달러로 2003년 평균치 대비 63.7%나 급증했다.
따라서 올해 국내 외항해운업체들은 지난 2003년에 비해 약 1조1,469억원의 연료비 추가부담을 안아야 한다. 이것은 운항원가를 약 12.7% 인상시키는 결과도 가져오게 된다.
국내 외항해운업계는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해상운임에 유가할증료 적용과 연료절감을 위한 자구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연료비의 추가상승을 줄이기 위해 주 기관 연료분사장치를 절약형으로 교체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5,000TEU급 컨테이너선 5척 기준으로 연간 약 5,400톤의 연료를 절감할 수 있다"고 밝히고 "유가할증료를 도입할 경우 화주의 부담이 늘 것으로 보이지만 수익을 위한 것이아니라 보전을 위한 것인 만큼 화주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대한 1,660억원·아시아나 3,946억원 더 부담
외항해운업계와 함께 국내 항공업계도 국제유가 고공행진에 따른 추가비용 상승부담을 안고 있다. 항공사의 경우 매출액 대비 26.5% 정도가 연료비로 할당되기 때문에 수익의 대부분이 연료비로 쓰여 진다고 보면 된다.
대한항공은 국제유가 급등에 따라 올해 갤런당 2,600만원의 항공기 연료비가 더 소요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따라서 6,436억원이던 지난해와 비교해 볼 때 올해는 3,946억원을 추가비용으로 더 지불해야 한다. 아시아나도 올해 1,660억원이 연료비로 더 추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두 항공사는 운임인상이란 대책밖에 내 놓을 수 없는 실정이라 4월15일부터 국제선가격을 일제히 올렸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최근 국제유가 급등에 따라 항공유 가격이 거의 70달러에 육박하고 있어 다음달에는 요금이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며 "이용객들의 불만이 나올 수 있지만 유가할증제가 도입되다 보니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해명했다.
중소제조업, 원자재·물류비 상승 따른 '이중고'
극심한 내수와 수출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제조업체들도 '유가 쇼크'의 표적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이달 실시한 4월중 중소제조업체 업황전망조사에서도 SBHI(건강도지수)는 전월에 비해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유가상승에 따른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 상승의 부담은 전월에 비해 훨씬 커졌다.
공장가동률도 역시 떨어졌다. 2월중 생산설비 평균가동률은 전월(67.9%) 대비 1.0%P, 전년 동월(67.1%) 대비 0.2%P 하락한 66.9%를 기록했다. 이것은 지난 2003년 2월 이후 25개월 연속 60%대의 낮은 가동수준을 기록한 것이다.
안산 시화공단 화학제품 제조설비 전문업체 (주)세다측은 "유가급등에 따른 원자재가 상승으로 설비투자비용이 원가에 크게 반영되다 보니 회사운영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최근 제조업체들의 경기가 다소 살아나는 분위기인데, 회복의 불씨에 찬물을 끼얹지나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에너지절약 국민의 자발적 참여 유도 필요
이에 대해 에너지경제연구원 이상곤 원장은 해법으로 △국민의 승용차 10부제 자발적 참여 유도 △기업들에 고효율 기기와 대체기술 보급 △정부의 에너지절약에 대한 구체적 실천전략의 개발과 보급 등을 제시했다.
특히 이 원장은 정부의 강제적인 10부제 운행은 국민의 반감을 줄 수 있으므로 교통혼잡세나 도심주차료 인상과 홍보를 통해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