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맞벌이 주부 강모씨(서울시 구로구)는 얼마 전 황당한 일을 당했다. 지난 2월말 서울시내에서 영업 중인 포장이사운송서비스회사 I업체를 불러 남편과 한푼 두푼 모아 어렵사리 장만한 새 아파트로 이사를 하는 도중, 장롱 일부와 새시의 밑 부분이 파손되는 등의 물질적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씨를 더 당혹케 만든 것은 이런 물질적 피해가 아니었다. 운송업체가 파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배상을 차일피일 미루며 강씨의 속을 바짝바짝 태우는 행태를 보인 것.
강씨는 “남편과 맞벌이로 힘들게 마련한 새집으로 이사를 하려는데 분쟁이 발생해 매우 언짢았다”며 “새집에서의 첫날밤은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이런 일 때문에 속이 상해 잠까지 설쳐야 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고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물품파손 관련피해 증가세 꾸준
본격적인 ‘이사 시즌’이 다가오면서 소비자와 이사운송업체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올해 들어 이삿짐 운반 중에 물품이 파손되거나 분실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지만 이를 규제할 마땅한 피해배상 규정이 없어 소비자들이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이삿짐 분쟁과 관련, 지난 1월1일부터 3월31일 현재까지 모두 55건의 소비자 피해가 한국소비자보호원(이하 소보원)에 접수됐다. 1.5일 꼴로 1건씩의 분쟁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피해유형은 파손, 분실, 웃돈유구 등 다양한 사례가 접수되고 있다. 이중 파손과 관련된 피해가 80%로 가장 많았고 이외에 분실, 웃돈요구사례가 각각 10%를 차지했다.
또 지난 2003년 3월1일부터 2004년 3월31일까지와 2004년 4월1일부터 올해 3월31일까지 소보원에 접수된 분쟁발생사례를 비교해보면, 건수는 각각 349건, 281건으로 전년에 비해 줄어든 반면, 피해유형 중 파손과 관련된 분쟁은 전년에 비해 10% 늘면서 점점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파손피해를 당한 강씨의 사례 외에도 30대 자영업자 송모씨(충남 천안시 신부동)의 경우 지난 2월초 D업체를 통해 이사를 하는 도중 아끼던 옥매트가 분실되는 피해를 당했다. 송씨는 이뿐만 아니라 장롱과 장식장이 틀어지고 부분 파손되는 등 상당한 물질적 피해를 입었다.
경기도 용인에 거주하고 있는 윤모씨(40)도 지난 2월말 H업체와 계약해 이사 중 화장대 상판과 3인용 가죽소파가 부분파손된 것을 이사가 끝난 지 9일이 지난 후에야 발견하고 업체에 배상을 요구했지만 업체는 실수를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지불을 미루고 있다고 한다.
관허업체인지 반드시 확인하라
한국소비자보호원 분쟁조정2국 일반서비스팀 양종석 과장은 이에 대해 “현재 전국의 이사업체 수는 대략 6,000여개 이상, 전문업체 수는 2,000여개 이상으로 추산된다”며 “이사 성수기의 경우 한철을 노린 무허가 업체가 난립해 일어나는 분쟁이 대부분이므로 선정시 시·군에 등록된 업체인지, 공정거래위원회의 표준약관을 준수하는 업체인지를 확인하는 등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양 과장은 특히 “예전에는 웃돈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았으나 지금은 파손, 분실과 관련된 피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특히 분실의 경우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 없이는 배상 받을 수 있는 길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책을 철저히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계약서는 반드시 꼼꼼하게 체크
소보원측은 이사를 준비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주의사항을 반드시 지켜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사 도중 물품 파손이나 웃돈요구 등으로 새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무겁게 할 수는 없는 일. 꼼꼼하게 따져보면서 불이익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관허업체인지 확인-한철만 반짝 영업을 하고 사라지는 업체들이 적지 않다. 이런 업체들은 대부분 서비스가 부실할 뿐만 아니라 이사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보상받기도 어렵다. △싼 게 비지떡이다-이사 비용이 지나치게 낮을 경우 서비스가 충실하지 못하거나 문제 발생시 사후 처리가 안된다는 점에 주의하자. △귀중품은 따로 보관-귀중품은 별도로 취급해 분실을 방지하고, 훼손 가능성이 높은 품목은 가급적 완전 포장토록 요구한다. △견적서를 받아두고 서면계약-구두 또는 전화 계약은 반드시 피해야 하며, 관인 계약서를 사용한 서면 계약을 해야 한다. 분실이나 파손에 대비해 물품 수량이나 가전제품 상태 등을 기재한 견적서를 작성해두는 것이 좋다. △할인쿠폰 사용여부 사전 확인-일부 이삿짐업체에서 할인 쿠폰을 제시하면 이용 가능기간에 제한을 두거나 할인 혜택을 주지 않아 소비자를 당황케 하는 일이 종종 있으므로 사전에 확인한다. △책임여부는 분명하게-이사 계약시 정리정돈, 에어컨의 설치 여부 등에 대한 특약사항은 계약서상에 책임여부를 분명하게 기재한다. △피해발생시 즉시 확인서를 받아 둔다-이삿짐 파손·분실 등의 피해가 발생한 경우, 현장에서 피해 내용에 대한 확인서를 받아두고 이사업체에 즉시 연락해 피해보상을 요구한다.
한국소비자보호원 양종석 과장은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제8조에는 파손이나 분실이 발생했을 때 책임소재의 한계로 운송업자에게 보상의 책임을 묻고 있지만, 손해배상과 관련해서는 업체의 시비가 인정되는 경우에만 피해자가 보상을 요구할 수 있으므로 계약서 작성시 세심히 따져보는 꼼꼼함이 필요하며, 계약금은 전체금액의 10%내에서 지불하고 나머지 잔금은 이사완료 후 지불하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사업체에서 피해보상을 회피하거나 미룰 경우엔 빠른 시일에 각 시·군 구청 교통행정과, 각종 민간소비자단체와 한국소비자보호원(02-3460-3195)에 조정을 요청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