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뒤통수를 쳐줘!
‘올드보이’와 영화의 반전
하반기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화제작 ‘올드보이’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경악 아니면 열광으로 나뉘었다. 특히 추측과 소문이 난무했던 영화의
반전은 논란이 되기에 충분할 만큼 충격적이다. 모 언론이 개봉 전에 결말을 유출시켜 팬들의 항의를 받는 등 곤혹을 치르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이 영화의 반전은 그만큼 비밀스러울 필요가 있다. 강렬하고 놀랍다는 표현은 지겨울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적절한 단어가 없다.
그렇다고 ‘올드보이’가 반전 하나만을 무기로 내세우는 종류의 영화는 아니다. 그런 ‘깜짝쇼’가 전부였다면 그 반전은 이미 빛을 잃었을 것이다.
반전을
위해 영화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허를 찌르는 반전을 내세우는 영화는 무수하지만 웬만해서 관객을 움직이기 어렵다. 대부분 영화의 반전은 예측 가능하거나 시시하거나 억지스럽거나
난해하다. 그 모든 것이 아니라도 기발하기보다는 농락 당했다는 기분이 든다면 좋은 반전이 아니다.
반전이 훌륭한 영화는 두 번을 봐도 흥미진진하다. 두 번째에 힌트가 많았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더욱더 좋은 영화다. 정보가 많을수록 개연성은
높아지는 법이다. 반전 부분을 뺐을 때 껍데기만 남는 것이 아니라 촘촘하게 짜여있는 스토리의 벽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감탄할만한 반전이다.
반전을 위해 영화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위해 반전이 존재해야 한다. 오로지 관객을 놀라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짜여진 스토리는 영화라기
보다 게임에 가깝다.
충격적 반전하면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유주얼 서스펙트’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겠지만, 이 영화는 명성에 비해 완성도 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소재는 기발하지만 연출력은 지루하고 밋밋하다.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속았구나’라는 짜릿함을 느꼈다면 그것은 영화 자체의
정교함 보다 케빈 스페이시의 뛰어난 연기력에 의한 것이다.
더 나쁜 경우는 속이는 것만을 목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영화다. 무죄를 입증하던 흑인이 결론은 범인이었다는 내용의 ‘숀 코네리의
함정’은 불쾌하게 관객을 농락하는 무의미한 작품이다. 그에 비해 마크 펠링턴 감독의 ‘함정’은 테러리스트와 영웅적 주인공 구도에 젖은 관객의
편견을 한번에 뒤집는 독창적이고 의미심장한 반전이 돋보인다.
‘유주얼 서스펙트’와 함께 반전이 강렬한 영화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식스 센스’와 아류작이라는 멍에로 다소 평가 절하됐던 ‘디 아더스’는
카메라의 시점을 교묘히 이용했다. 두 영화는 모두 짜임새가 훌륭하고 주제도 반전을 통해 적절히 전달한다. 특히 ‘디 아더스’는 고풍스러운
영상과 매혹적인 연출로 반전이 빠져도 결코 껍데기만 남는 영화는 아니다
불편할지언정
엉성하지는 않다
영화의 반전에 대해 예를 들어 논하자면 끝이 없다. 반전이 인상적인 영화는 대단히 많고, 어설픈 반전으로 실패한 영화는 더 많다. 영화에서
반전의 위치와 좋은 반전과 나쁜 반전에 대해 짧게 나마 이야기 한 것은 오로지 논란이 되고 있는 ‘올드보이’의 반전이 어떤 의미에서 매혹적인지
설명하기 위해서다.
‘올드보이’를 불편한 영화라고 비난할 수는 있겠지만, 그 누구도 엉성한 영화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지적 충격 이상의 윤리적 충격을 관객이
어떻게 수용하느냐는 흥행의 문제로 남을 수 있지만, 드라마의 개연성을 흠잡기는 어렵다. ‘올드보이’의 반전이 진정으로 강렬하고 놀라운 이유는
그 때문이다. 충격을 위한 충격이 아니라 드라마를 위한 충격이다. 반전을 위한 반전이 아니라 주제를 위한 반전이다.
그래서 이 반전은 무서우면서 슬프다. 기막힌 소재 때문이 아니라, 그 반전 속에 담긴 고대 그리스 비극처럼 원초적이고 극단적인 인간의 처절한
운명이 충격을 주는 것이다. 연기인생에서 최고의 캐릭터를 만난 유지태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연기를 펼친 최민식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박찬욱 감독이 빚어낸 숨막히게 감각적인 이미지들이 아니었다면, 단언하건데 뒤통수를 세게 맞은 이후 깊은 여운에 잠기게 하는 이토록 묘한
느낌을 줄 수는 없었다.
개봉 전부터 결론에 대한 궁금증으로 화제가 됐던 ‘올드보이’는 관객과 감독이 두뇌싸움을 벌이는 헐리우드식 반전(反轉) 영화가 아니다. 머리보다는
가슴이 요동치는 영화다. 그것이 이 영화에 감탄을 넘어 열광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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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