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귀국 전후로 해서 대우 피해자들의 움직임도 부산스럽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 의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대우그룹 상장계열사의 소액주주 37만8,804명. 손실액만 3조원에 달한다. 이중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540여명은 그나마 일부 환수할 가능성이 있는 희망이라도 있다. 하지만 나머지 피해자들은 이미 소송기한이 지나 땡전 한 푼도 건질 수 없는 상황이다.
대우자동차 해고자들도 직접적인 피해자들이다. 그 가족들까지 포함하면 피해자는 눈덩이 처럼 불어난다. 옛 대우인들은 김우중 전 회장의 귀국에 쌍손 들어 환영하며 그의 사면과 재계복귀를 고대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직접적인 피해를 본 37만여 명의 소액주주들과 복직하지 못한 800여명의 대우 노동자들은 아직도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돈 잃고 가정도 잃고…
IMF 직후 주식시장이 활황이던 때, 피해자 A씨는 결혼 전부터 내집 장만을 위해 푼푼이 모은 전 재산을 털어 대우전자 주식을 샀다. 그후 대우사태가 터지고 3억원을 손해 봤다. 어렵게 모은 돈을 한꺼번에 무리하게 투자한 잘못도 있었지만 ‘설마’하는 생각에 피해를 줄일 수도 있었던 손절매도 하지 않았다.
그는 “대우그룹의 신화를 믿었고 당시 재계 1~2위에 김우중 전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대우가 이렇게 쉽게 무너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회상한다. 대우주식이 휴지조각으로 변하고, 가정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자 아내는 우울증을 겪더니 결국 4년전 자살을 하고 말았다고 한다.
화목하고 행복했던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B씨. 그러나 예전의 행복은 단지 TV나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게 됐다. 지금은 휴지조각에 불과한 (주)대우 주식을 100여만주를 소유하고있다. 엄청난 돈을 잃고 가정도 잃었다. 아내에게 이혼을 당하고 자식마저 남겨두고 집을 떠난 B씨는 갖은 고생을 다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렇게 몇 년을 살다보니 이제는 자포자기 하고 다시 일어설 힘이 없다고 한다. 그는 “심각한 대인기피증으로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없고 아무도 찾지 않는 빈방에 혼자 누워 천정만 바라보고 있다”며 “내 탓이오 하면서 살고는 있지만 잃어버린 가정을 되찾고 싶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대우피해자대책위원회(http://cafe. daum.net/daewoojuju) 박창근 의장도 당시 주식으로 12억원을 탕진했던 아픔이 있다. 하지만 어렵게 재기에 성공해 다른 피해자들에 비하면 사정은 좀 나은 편이다. 박 의장은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대우 피해자라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쪽박 찬 신세가 자랑할 것도 못되고 망했다고 하면 괜히 다른 사람들이 외면하고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것이 싫어서란다.
당시 대우자동차 노동자들도 대우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다. 당시 단일규모로는 사상 최대인 1,750여명이 무더기로 정리해고 됐다. 그나마 대우차가 GM에 인수되면서 950여명은 복직됐으나 나머지 800여명은 미복직 상태다. 이들 중 복직을 희망하는 520여명 대부분이 자영업이나 야간경비, 막노동 등으로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고 김성열 대우차 교선실장은 말했다.
복직 투쟁과정에서 100여명이 부상을 입었고 이 중 10여명은 부상이 심해 평생장애로 살아가야 할 처지다.
대우차 정리해고원상회복투쟁위원회 박덕재 의장에 따르면 당시 대우차에 속한 900여개 부품업체들과 10여만 노동자들도 실직과 임금삭감 등의 직, 간접적인 피해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