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6월말로 끝난 1년간의 활동을 목전에 두고, 지난 6월24일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정당법 등 정치관계법 3개 법안의 개정안을 의결했다. 정치개혁특위가 최종 합의한 정치개혁안을 두고 민선자치 10년을 후퇴시키는 ‘개악안’이라는 비난여론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일부 국회의원과 시민단체들이 이를 전면 재검토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시민단체들은 이번 정치개혁안에 대해 “17대 국회 첫 정치개혁 협상이 ‘개혁국회’라는 정체성과 존재 근거마저 스스로 포기한 채 국회의원 편의를 위한 개혁에만 치중했다”고 비판했다. 국회의장 자문기구로 활동했던 정치개혁협의회(정개협)에서 건의한 내용 중 ‘깨끗한 정치 및 돈 안드는 선거문화’를 만드는 핵심 내용들이 대거 빠짐으로써 정치개혁을 위해 만들어진 국회의 정개특위가 정치권의 기득권 유지와 당리당략만을 앞세워 이번 국회에서도 ‘들러리’ 역할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정치개혁 후퇴시킨 졸속 개정”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참여연대는 지난 6월24일 공동성명을 내고 “정개특위의 행태는 한마디로 정치개혁을 후퇴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며 “정개특위는 소위가 합의하지 못한 쟁점사안에 대해 왜곡 없이 합의하고 입법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작년 3월 정치자금법 개정을 통해 금지한 ‘법인과 단체의 후원금 기부’에 대해 선관위를 통해 비지정 기탁방식으로라도 다시 허용하자는 안이나, 교섭단체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국고보조금 배분방식을 개선하라는 정개협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현행대로 유지키로 한 것 등이 그 핵심 내용이다.
경제실천정의연대(이하 경실련)도 지난 6월24일 즉각 성명을 내고 “국민의 개혁요구를 묵과한 정치관계법 졸속개정을 규탄한다”며 “정개특위는 개정안을 즉각 철회하고 재논의 하라”고 촉구했다.
정개특위가 합의한 조항에 대해 경실련은 정당 지지자들의 자발적 조직이 활성화되지 못한 상황에서 지역 당원협의회를 설치하는 것은 현역 의원이 의장을 맡는 등 과거 지구당의 각종 폐해가 재연될 우려가 크다며 현행 정당법 체계 유지를 주장했다.
또 불법 정치자금 수수에 대한 사후 영수처리를 차단하기 위해 영수증 발급기한을 1개월에서 다시 1년으로 연장시킨 것은 정치자금 투명성 제고라는 정치개혁 핵심 목표를 후퇴시킨 개악조치라고 꼬집었다.
지방의원 유급화와 의원정수 축수에 대해서는 오히려 비례대표 비율을 10%가 아닌 최소 국회의원 수준으로 확대하고 여성에 대한 교호순번제를 확립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의원 유급화와 의원 정수 축소, 본말이 전도된 것”
참여연대와 전국 17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상임공동대표 박상증, 이하 참여자치연대)는 지난 6월27일 성명을 통해 “지방의원 유급화와 의원정수 축소, 중선거구제 도입을 반대한다”며 “정치개혁특위는 합의안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촉구했다.
참여자치연대는 “지방선거법을 왜곡하고 정치권의 구미에 맞는 방안만을 합의안으로 확정했다”면서 “정치개혁이 논의돼야 할 정치개혁특위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개악’이 이뤄진 이번 정치개혁안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년도 지방선거를 대비한 지방선거법 정비는 이번 정치관계법 개정 과정에서도 핵심. 참여자치연대는 지방의원 유급화와 그에 따른 의원정수 조정안은 국민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지지도 않은데다, 여러 부작용마저 예상되고 있다고 심각성을 제기했다. 지방의원 정수는 현재 수준에서도 참여민주주의를 구현하기 부족하고, 우리나라의 자치선거구는 외국에 비해 이미 광역화 돼 있다는 것. 따라서 유급화에 따른 재정부담을 근거로 지방의원 수를 줄이겠다는 발상은 본말이 전도된 것으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또한 현재 지방 유급화가 실시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광역의원에게는 350만원, 기초의원에게는 250만원의 활동비가 지급되고 있다. 참여자치연대는 사실상 유급화가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서 매년 2,000억 이상의 추가세원을 들이겠다는 것은 ‘세비 인상’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참여자치연대는 기초의원의 중선거구제 도입에 대해 기성 정당들의 득표 전략에 따른 정파적 고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국회의원, 광역의원 선거제도는 소선거구제를 취하면서 기초의원만 중선거구제를 택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고, 풀뿌리 민주주의가 핵심인 기초단위를 광역화하면 선거비용 부담은 늘 수 밖에 없어 정치적 소수자들의 선거참여를 역행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또한 중선거구제를 도입하면 기초의원과 광역의원의 선거구가 비슷해 대표성의 혼선이 발생하고 기성정당 기득권과 소지역주의가 결합된 과두제가 고착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참여자치연대는 “중선거구제로의 개편은 영남에 대한 열우당의 이른바 ‘동진’과 한나라당의 호남에 대한 ‘서진’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정략적 타협책”이라며 선거구제 변경에 동의할 수 없음을 명백히 밝혔다.
민노당 “땜질식 개정안만 제출했다”
전국자치구협의회(회장 이재창)와 대전지역 기초자치단체 의원 등 34명은 지난 6월29일 국회 의사당을 방문해 지방선거관계법 개정안 반대집회를 가졌다. 이날 항의방문에 나선 황인호 대전시 동구의원은 “비례대표 신설과 중선거구제는 지방자치를 중앙 정치판에 예속시켜 돈 정치를 하려는 의도”라며 “정치자금을 걷으려고 여당과 야당이 야합을 해 정치개혁이 아닌 ‘개악’을 하고 있다”며 여야 정치개혁안 합의를 강력 성토했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6월30일 기자회견을 통해 “‘고양이 목에 달려있는 방울을 풀어주기 위한 정개특위’라는 오명에서는 다소 벗어난 듯 하나, ‘개혁후퇴특위’, ‘기득권수호특위’라는 불명예를 떨쳐 버리지는 못했다”고 정개특위가 제출한 개정안을 향해 비난했다.
민노당은 정치개혁의 과제인 교섭단체와 현역의원에게 부여된 고도한 특혜와 부정·부패 청산을 위한 회계의 투명성과 정당의 민주화를 외면하고, 정치신인과 여성의 정치 참여 문턱을 낮추는데 소홀히 했다는 점, 특히 1년간의 활동에도 불구, 전면적 정치개혁안을 제출하지 못하고 활동 종료기간에 맞춘 ‘땜질식’ 개정안만을 제출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에 귀 기울이는, 불구의 정치관계법을 치료할 제2차 정개특위 구성이 필요하다”며 “본질적인 정치개혁안이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정치개혁특위가 당초 자율적인 개혁이 아닌, 당리당략과 자신의 이해득실을 앞세워 구미에 맞는 법안만 개정했다고 1년여 간의 활동을 평가했다. 참여연대는 지난 7월5일 논평을 통해 “정개특위는 정개협이 내놓은 정치개혁안 중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해(害)가 되는 안은 ‘여야 합의정신’을 앞세워 변질시켰다”면서 “정치자금은 엄정한 조사는 피하되 자신들의 편의는 최대한 늘렸고, 선거법 개혁도 당리당략과 일치하는 사안은 각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처리를 서둘렀다”고 비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