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연장시키는 거룩한 사명
200여 점 넘는 지류문화재 복원, 국내 유일 배첩장 김표영 옹
우리가
의사를 존경하는 이유는 그들이 생명을 구하고 연장시키는 거룩한 일을 하기 때문이다. 김표영(79) 옹도 그런 존경받는 의사 중 한 명이다.
상처 난 부위를 치료하고 매만지는 그의 손길은 한없이 따뜻하고 애정이 느껴진다.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한 생명에게 귀중한 시간을 되돌려주는
김옹. 그런데 그에게 붙여진 칭호는 의사가 아닌 ‘배첩장’이다.
고서화 수리 최고 경지
배첩은 표구와 마찬가지로 서화에 종이, 비단 등을 붙여 족자·액자·병풍 등을 만드는 서화처리법으로, 한자를 직역하면 등에 붙이는 작업,
즉 뒷면에 옷을 입히는 것을 말한다. 배첩의 주요 작업 중 하나인 손상된 고서화를 수리하는 일은 고도의 안목과 기술을 요하는 최고 경지
단계로,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듯 콧김에도 부서질 듯한 낡은 고서화를 살려내고 치유하는 작업이다. 김옹은 60년 넘게 이 일을 해온 이 분야
최고의 권위자이자 국내 유일의 배첩장(중요무형문화재 제102호)이다. “표구는 일본에서 들어온 말이라 아무리 널리 쓰이더라도 배첩이라 고쳐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김옹은 고집과 애착이 남달라 사비를 몽땅 털어 ‘지류문화재연구소’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백석동에 자리한 연구소는 100평정도의 넓은 공간으로, “폭만 해도 몇 십 미터에 달하는 탱화를 배첩하는 경우가 많아” 경제적으로 무리가
됐지만 욕심 하나로 마련했다.
“문화재는 우리의 얼굴이며 역사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문화재도 보존을 못하면 소용없죠. 복원은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해야 하기에
배첩도 아무데서나가 아니라 정신을 가다듬고 집중할 수 있는 곳에서 해야 합니다.”
보한제 신숙주 영정(보물 613호) |
연안이씨종중문적공신회맹록(보물 651호) |
전통 한지와 10년 삭힌 풀 사용
방해꾼 없는 조용한 작업실에서 이뤄지는 배첩은 서화류와 문서류에 따라 과정이 다른데, 그림의 경우 우선 안료 기운이 다한 부분에 안료를
묻혀 착 달라붙게 만든 후, 식빵을 문질러 때를 벗겨낸다. 그런 다음 그림을 엎어놓고 뒤에 대 놓았던 오래된 종이를 떼고 새 한지를 붙인다.
건조가 다 되면 가장자리에 비단을 붙이고 그 위에 다시 한번 한지를 덧댄다.
고문서나 경책 등의 글씨의 배첩은 이보다 조금 쉬운데 한장 한장을 뜯어내 따뜻한 물에 빤다. 한지는 물에 넣어도 풀어지지 않고, 먹도 번지지
않아 손상 없이 때만 빠지게 되는데 그 후 종이를 건져내 말리고 낱장마다 배첩하면 된다.
배첩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재료다. 특히 부드러우면서도 질기며 깨끗한 종이와 세균이 없는 무균의 풀을 사용해야 한다. “나쁜 종이와
풀을 쓰면 원본까지 썩고 삭아버립니다. 때문에 화약약품이 섞인 수입 한지는 절대로 안되죠. 전통 방식으로 만든 한지와 녹말을 완전히 가라앉힌
뒤 10년을 묵힌 풀을 써야합니다.”
김옹은 1999년부터 연구를 거듭해 올해 2월 좀벌레에 강하고 부드러운 재질의 ‘백토지’를 개발했다. 풍산에 공장을 두고 직접 재배한 닥풀과
지하수를 끌어올려 몇 일을 침전시킨 깨끗한 물, 고운 백토를 섞어 만들었다.
“정부의 지원이 없어 연구하는 데 애를 참 많이 먹었어요. 그래도 이렇게 완성하고 나니 문화재를 좀 더 오래 보존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합니다.”
매 순간이 살 떨리는 과정
김옹이 배첩을 배운 것은 1939년 14세 때, 사촌 매형이 운영하는 표구사에 들어가면서다. 풀 쑤는 것 3년, 칼 쓰는 것 3년을 배웠고,
해방이 된 후 상경해 당대 최고였던 ‘박당표구사’ 김용복 선생에게 14년간 수학했다. 그후 인사동에 자신의 가게를 냈고, 1972년 문화재관리국
지정문화재수리기능자 표구공이 되면서 지금까지 우리나라 국보·보물급 문화재 200여 점을 수리했다. 전국의 사찰과 박물관 등 주요기관 지류문화재치고
김옹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작품이 다 소중하고 기억에 남지만 그중 신숙주 영정이 가장 잊혀지지 않는다. 문화재로 지정 받자마자 1주일만에 도난 당해 다시 찾은
그림이었는데 훔친 사람이 대충 접어 가방에 넣어 다닌 터라 훼손정도가 매우 심각했다.
“신숙주 문중에서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잘못 복원하면 제가 모든 책임을 지고, 자격을 박탈당하는 상황이었죠. 과정 하나하나가 살 떨리는 순간이었어요.
다행히 어느 누구도 흠잡지 못할 정도로 일을 해냈죠.”
최덕지 영정을 10여명의 문중 앞에서 복원했던 일도 잊혀지지 않는다. 숨도 참아가며 조심스럽게 해야하는 작업을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정신산란한
가운데 해야만 했으니 어찌 고생스럽지 않았겠는가? 또한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돌아가며 검증받고 인정받는 시간은 정말이지 피 말리는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배첩이 새롭게 작품을 창조하는 일이 아니라 너무 쉽게 여기는 경향이 있어요. 자칫하면 몇백년 몇천년 전해 내려온 문화재가 사라질 수도
있는데 말이죠.”
한국식 배첩 관련 책 저술
김옹은 현재 한국식 배첩에 관한 책을 저술하고 있다. 대부분의 책이 일본에서 들어오거나 베낀 것이어서 우리식 배첩에 대한 책이 없고,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누가 보건 죽기 전에 완성하고 싶다”는 김옹은 그간 복원한 문화재와 과정을 상세히 기록, 후대에게 참고될 만한 서적을
쓰고있다. 점점 사라져가는 배첩의 맥을 어떻게든지 잇고, 다음 세대를 위한 연구자료를 마련함으로써 문화재의 영구보존을 꾀하는 김옹의 힘겨운
투쟁이다.
“제가 죽어도 배첩은 계속돼야 합니다. 15년을 함께 해온 두 제자를 믿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많이 힘들어요. 세계 최고였던 한지 장인들이
거의 전멸한 것처럼 배첩 장인들도 언제 이 땅에서 사라질지 모릅니다. 당장 먹고살 여건이 마련되지 않으니 이 일을 그만두고 다른 밥벌이를
찾아나설 수밖에요. 이제는 하룻밤 자고나면 표구사 하나가 없어지는 상황이라 미래가 불안합니다.”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