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상권 번영의 ‘숨은파수꾼’
창신동 삼호호텔 임영현씨의 70년 동대문 ‘사랑과 삶’
동대문 찾는 내외국 상인들에게 내집같은 휴식처 제공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미처 깨달을새도 없이 앞만보고 달려왔다는 사람. 돌아보니 딸 아들은 어느새 성장해 교단에 서있고, 늘 곁에 있어줄것만
같았던 안사람은 훌쩍 피안의 세상으로 가버렸다는걸 알았다는 고희의 호텔경영인 임영현씨. 서울 종로구 창신동, 흔히 말하는 동대문 청계천 시장통에서
만난 그이는 금새라도 고희의 나이를 잊은채 거리로 뛰어나갈 듯 활기찬 청년의 모습이었다.
앞만 보고 달려왔지…
동대문은 사람들 정신을 쏙 빼놓는다. 청계천의 밀집한 상가행렬, 황학동 벼룩시장, 차선 신경안쓴채 요리조리 치달리는 오토바이족들의 질주…
그 정신없는 동대문 상권의 한 중심에서 묵묵히 이곳을 찾아온 내외국 손님들의 안방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던 아주 오래된 창신동 삼호호텔에서 그이를
만났다.
“차가 많이 막히지. 식사부터들 하자고.” 얼큰한 생선탕이 내어져오고 알맞게 익은 달랑무를 더운밥에 올려 늦은 점심을 먹는동안에도 ‘이이가
과연 이 30년넘은 호텔을 꾸려온 장본인일까’ 싶었다.
“1969년에 이땅을 사서 터파기 공사를 할 때만해도 불안했지. 단돈 5백만원을 들여 매입한 땅에 호텔을 올리고 2,3,4층에 사우나를
차렸어. 나만의 아이디어였던 셈이지. 당시만해도 사우나라곤 신신탕 정도가 다였으니 서울시내에서 한 번 해볼만하다 싶었던거야.”
청년실업가 임영현씨의 야무진 사업계획은 적중했다. 그동안 해오던 운수업까지 정리하며 적극적인 호텔사업에 뛰어들었던 야심만만함도 한 몫했다.
당시만해도 복개가 안된 청계천에선 밤낮으로 악취마저 풍겼고 그런 시유지를 나꿔채 건물을 올리려는 그이를 부러워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가봐도
그당시의 삼호호텔 부지는 초라했다는 얘기다.
“처음엔 주유소를 할까도 했지. 그렇지만 남들이 하는걸 따라해선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 사실 이곳에 호텔을 세우고 난 뒤 호텔사업의
주를 이뤘던 사우나, 그러니까 목욕탕을 떠올린건 아주 묘한 계기가 있었지.”
그이의 사업운엔 아주 특별한 에피소드가 따라다닌다. 그러니까 한창 서울시내에 지하철 얘기가 무르익던 시절, 한 수자원공사 관리가 우연히
지하철관련 업무차 근처에 왔다가 임씨의 호텔을 찾았다고 한다. 수맥을 찾아내는데 도가튼 이 수자원공사 관리가 대뜸 “차한잔을 마시러 들렀는데
가만히 보니 호텔아래로 기가막힌 지하수가 흐르고 있다”고 귀뜸을 해주더란다.
이름없는 귀인이 알려준 지하수맥과 사우나 사업번창
“지금 생각하면 그이가 내게는 부처님이 보내준 귀인이었던 셈이지. 말들은 즉시로 지하를 팠어. 그이는 아예 작정하고 지하수 개발자까지
내게 소개를 해줬고 그다음엔 모든게 일사천리였지.”
150m쯤 파내려간 땅속에서 석간수를 찾은 임씨는 그저 신기하고 또 신기했다. 바위와 바위사이를 흐르는 청정 지하수를 사우나로 연결하기
위해 그이는 사우나 문화가 일찍 발달한 일본을 전전하며 배우고 또 배웠다고 한다. 그후로 20여년, 그이의 호텔은 불황을 찾을 수 없었다.
“지금도 난 그이가 고맙지. 수소문했지만 이후로 만날수가 없더라구. 정신없이 그렇게 호텔사업에 매달려 앞만보고 살아온게 벌써 고희라니…”
사업가라지만 남의 돈 빌려쓰면 큰일나는줄 알았다는 사람, 60여개에 이르는 객실과 부대시설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모두 가족이라는 말에 의아한
눈길을 보내자 “모두 근속년수가 20~30년씩은 되는데 가족이 아니고 뭐겠어”라며 ‘어여 맞장구를 치라’는 그이는 그래서 당신 자녀들이 성혼식을
했을때도 직원축의금 같은건 아예 하지도 받지도 말자고 했다던가.
30년이상을 종로 동대문일대 토박이 경제인으로 살아와서일까. 종로일대 지역로타리도 두 개나 만들어 초대회장을 맡으면서 일대상인들간 친목도모와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한 이런저런 활동에도 성의를 아끼지 않은 임씨는 이제 가끔씩 시간이 나면 제2의 고향이라는 치악산을 자주 찾는다.
“이 모든게 아내의 음덕(陰德)이라고 생각하며 살지. 수년전 집사람 묘를 치악산 근처에 만들고 가끔씩 찾기시작한게 이제는 아예 고향같아졌어.
더 나이들면 아예 치악산으로 들어가려고해. 거기 사람들하고 어울려 살면서 지역특산물 농사도 짓고, 지역모임도 만들고 그럴꺼야.”
더 나이들면 치악산으로 들어가야지…
아내의 묘앞에 언제나 꽃 한다발을 들고 찾아간다는 성공한 사업가 임영현씨는 언제나 오전6시면 기상해 간단한 운동과 함께 삼호호텔 출근을
계속해 왔지만 이제 조금더 나이가 들면 호텔을 전문경영인 체제로 맡기고 제2의 치악산 삶을 계획할 참이다. 망하지 않는 회사를 다닌다는게 그저
다행스러운 세상살이, 그러나 그이의 일터는 구조조정이 뭔지 모른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의 CEO(최고경영인)들이 해외로 도피하고 근로자야 어찌됐던
내재산만 챙기겠다는 졸부사장만 판치는 요즘세태 속에서 그이의 자리는 크고 넓어보인다. ‘과욕을 버려야해, 일확천금 이란건 없지. 범법을 저지르지
않는 아이들로 키우는거 그게바로 제대로된 2세 교육이야…’ 대학을 나와도 지킬 수 없는 생각과 행동들이기에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특히 아쉽게
지적해주고픈 말들이라는 그이의 올곧은 경험담이 새삼 가슴뭉클하게 다가온다.
김승호 기자 (강원지역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