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져 있던 ‘안기부 X-파일’폭로로 정치권이 연일 끓는 냄비다. X-파일 폭로로 치명적인 흉탄을 맞은 홍석현 주미대사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말 그대로 두문불출 상태.
지난 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삼성그룹 이학수 비서실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의 ‘녹취록’이 등장하면서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 된 두 사람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무엇일까.
누구야 ‘돌’을 던진 X가…
8년여나 숨겨져 왔던 X-파일. 2007년 대선을 2년여 앞둔 이 시점에서 일파만파 번진 X-파일 불똥이 가장 반가운 사람들은 당연히 ‘2007 대선’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싸이월드에서 꿋꿋이 대권야망을 키워가는 고 건 전총리, 김정일 북방위원장과의 독대 후 드디어 실현된 6자회담의 쾌재를 쭉쭉쭉 대권가도로 잇는다는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바로 대표적인 인물.
하지만 X-파일이 가장 반가운 사람은 바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일 수 밖에 없다. 박 대표는 이번 X-파일로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X-파일 광풍은‘킹 메이커 昌의 정계복귀’가능성에 일찌감치 쐐기를 박은데다 청와대의 깜짝놀랄 ‘빅 카드’로 주목되면서 사실상 대권주자 가능성까지 열어놨던 홍 주미는 치명적인 ‘모럴 헤저드’에 허우적 댈 판이다.
‘준 X도 문제, 받은 X도 문제’지만 특히 이 전 총재 진영은 X-파일 파문이 사실상 ‘昌 두 번 죽이기’라는 볼 멘 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2007 대권’을 꿈꾸는 이 전 총재가 이미 구체적인 조직재건에 몰두중이라는 수많은 염문속에서 느닷없이 등장한 X-파일은 말 그대로 ‘昌 확인사살’이라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X-파일 폭탄은 ‘창’에게, 유탄은 ‘홍’에게?
X-파일은 과연 대권주자를 놓고 벌인 한나라당 내부의 ‘자중지란’산물일까. 정치권은 이번 X-파일 공개로 이 전총재가 지난 2002년 불법대선자금 수수의혹에 이어 두 번 정치적 사망선고를 맞은 셈이라는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의 X-파일이 과연 누구로부터 왜 공개됐는가의 의문은 ‘화두’일 수 밖에 없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X-파일 공개가 ‘보수세력의 구심점’으로 대변되는 이 전총재의 정계복귀를 통해 2007년 대선을 승리로 장식하려던 구한나라당파와 박근혜 대표중심의 또다른 한나라당파간 갈등의 산물이란 지적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위력적인(?) 보수세력을 등에 업고 2007년 대선을 준비하던 이 전총재가 X-파일 폭탄에 최대 희생자라면 홍 주미대사는 어이없는(?) 유탄에 일찌감치 부상(대권낙마)를 실감한 또다른 희생양(?)이란 웃지 못할 지적이다.
깨끗한 ‘昌’이미지 깨지고, 홍 주미는 ‘사의’
공개된 녹취록에서 100억원대 불법대선자금 수수의혹에 휘말린 이 전 총재는 더 이상 ‘깨끗한 昌’이미지 고취를 통한 정계복귀 시나리오를 이어갈 수 없게 됐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로서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위협적으로 2007 대선복귀를 도모했던 이 전총재의 낙마가 그야말로 쾌재 중 쾌재일 수 밖에 없게 된 셈.
‘도랑치고 가재 잡는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일까. ‘X-파일은 준비된 박근혜 발 폭탄’이라는 뜬소문의 진위야 어찌됐든 박근혜 진영은 그야말로 기쁜 숨 감추기에 바쁜 모습이다.
그 뿐인가. 1997년, 2002년, 그리고 2007년 대선의 문턱에서 번번히 고배와 좌절을 실감한 昌과 함께 여권의 ‘빅 카드’홍 주미마저 X-파일 광풍속에 주미대사직 ‘사의’를 표명하자, 실패한 노정권의 인사정책까지 싸잡아 질책함으로써 박 대표 진영은 그야말로 ‘뛰는 홍, 나는 창’ 모두 잡은 여유만만 포수의 모습일 수 밖에.
‘X-파일 특검이냐, 국정조사냐
던져진 주사위 ‘X-파일’에 대한 여야 정치권의 반응은 특검과 국정조사로 모아진다. 한나라당은 최근 강재섭 원내대표 체제로 연 주요당직자회의를 통해 일단 안기부의 불법도청 X-파일 사건에 대해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특별검사제 도입을 통한 전면 수사를 제안했다.
강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은 빨리 이 사안에 대해 특별검사를 임명해 진상을 밝혀 모든 것을 깨끗히 정리하고 검찰과 정치권은 평상 업무와 경제살리기에 몰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무엇보다 이번 사건이 수사당국인 국정원과 검찰이 연루돼 올바른 수사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여야 대선후보도 모두 관여돼 여야가 국정조사를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며 “이 사건이야말로 정말 특검을 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이에대해 민주노동당은 “X-파일이 자칫 불법도청만 부각시켜 언론이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며 삼성의 불법정치자금에 초점을 맞춘다는 입장이다. ‘삼성 불법 정치자금 및 안기부 불법도청 특별대책위원회’를 구성키로 한 민노당은 △정부와 검찰은 이건희, 홍석현 등 관련자 구속 수사하고, 진상을 철저히 밝힐 것 △삼성 이건희 회장은 불법정치자금 내역 및 기아차 인수로비의 전모를 공개하고 국민 앞에 사죄할 것 △정부는 홍석현 주미대사를 즉각 파면 할 것 △국정원은 불법도청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불법도청 근절대책을 세울 것 △여야 정치권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국정조사에 동참할 것 등을 정부, 여야, 삼성에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