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화된 남성과 남성화된 여성의 새로운 부류의 등장은 패션과 산업, 문화 전반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외모와 패션에 관심이 많은 남성과 결혼보다 ‘일’ 욕심이 많아진 여성들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새로운 그 어떤 것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런 트렌드를 각 산업에선 유행에 특히 민감한 홍보와 마케팅에 그대로 반영한다. ‘예쁜 남자’를 무기로 여성들의 소비심리를 제일 먼저 부추긴 건 화장품 광고다. 최고의 아름다운 여성만이 찍을 수 있다는 여성모델의 전유물격인 화장품 광고에서 남자모델을 파격적으로 기용한 것. 한류스타 원빈은 작년 한국 남자연예인 중 최초로 립스틱 광고를 찍어 파격적인 반응을 보였다. 몸짱 스타로 유명한 권상우도 경쟁 브랜드의 화장품 광고에 화관을 쓰고 나와 여심을 흔들었다.
전통적인 여성상에 반기를 든 콘트라 섹슈얼도 광고계에 침투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노트북 센스는 기존 소녀 같은 이미지의 임수정을 파격적인 변신으로 강한 여성의 모습으로 변화시켰다. 디지털 유목민이라는 컨셉트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를 만끽하는 30대 전문여성을 공략했다.
현대자동차 투싼은 남성적 힘을 강조하는 RV 차량의 기존 고정관념을 깨고 과감히 여주인공 오지영을 모델로 기용해 눈길을 끌었다. 세련되고 섹시한 전문직 여성을 표방한 주인공은 모험적이고 실험을 즐기는 강한 여자다. 위험, 모험, 실험이라는 삼색 테마를 콘트라 섹슈얼적 이미지로 더욱 매력적으로 색다른 자극을 주고 있다.
남성 화장품 시장 올해 3,500억원
강인함과 무뚝뚝한 등 전통적인 이미지에서 부드러운 컨셉트로 바꾸려는 남성들의 시도가 줄을 잇고 있다. 메트로 섹슈얼족의 등장으로 피부 관리나 화장을 하는 남성들도 크게 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일부 소수 남자연예인에 국한된 것으로 인식됐지만 최근엔 젊은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야말로 ‘미스터 뷰티’(Mr. Beauty)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남성 화장품 시장은 불황에도 매년 6% 이상씩 성장하고 있다.
2003년 3,100억 원에서 지난해 3,300억 원으로 증가했다. 업계는 올해 말 3,500억 원대로 크게 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업체들은 남성용 화장품 시장을 잡기 위해 관련 제품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과거 스킨, 로션 두 가지 제품에 머물던 것이 여성들처럼 미백 에센스와 마스크 팩 등이 날개돋힌 듯 팔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태평양 ‘미래파’는 조인성을 내세운 ‘시트 마스크’를, LG생활건강 ‘보닌’은 이병헌을 주인공으로 미백 에센스를 히트시켰다.
직장인 심민관 씨(29세)는 세수 비누 대신 매일 아침 폼 클렌징으로 세수한다. 미백스킨을 바르고 에센스와 컬러로션을 덧바르고 썬크림으로 마무리하고 출근길에 나선다. 심 씨는 “요즘은 여자든 남자든 깔끔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선호하지 않느냐”며 “직장생활을 하면서 거래처나 회사동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어 피부 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여자친구와 2주에 한 번 씩은 피부미용실에 가서 같이 피부 관리도 받고 데이트도 즐긴다고 할 정도로 피부 관리에 관심이 많았다.
메트로 섹슈얼이 유행하면서 백화점에도 이들을 위한 전문 매장이 등장했다. 유명 디자이너 상품을 모아 놓은 편집매장을 비롯해 화장품 액세서리, 헤어케어 제품 등 취급제품도 다양해지고 있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5층엔 7개 남성 화장품 브랜드만 모아둔 ‘맨스 코스메틱’ 매장이 있다.
롯데백화점 본점의 남성 편집매장 ‘라비엣’은 4개월 만에 한 달 매출이 무려 1억원에 달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30대 젊은층이 주고객으로 수입산 캐쥬얼 의류, 패션시계, 벨트, 반지 등이 많이 팔린다고.
이런 추세에 화장품업체 태평양은 건강한 남자의 자기관리를 위한 뷰티&스타일 북을 출간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처음으로 시도되는 남성 전문 미용책으로 남성들의 피부관리와 패션 건강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에 두드러지고 있는 콘트라섹슈얼… 싱글족 패턴과 비슷
메트로 섹슈얼이 소비를 선도하는 젊은 남성들의 문화라면, 콘트라 섹슈얼은 기존 여성들의 소비문화에서 벗어나 가치 중심의 산업이 발달해 있다. 특히 메트로 섹슈얼은 선진국 등에서 최근 몇 년 전부터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패션과 미용 등 관련 산업이 발달해 왔다. 그러나 콘트라 섹슈얼은 가장 최근에 두드러진 성(性) 역전화 현상으로, 아직까지 이들을 위한 관련 산업이나 문화가 눈에 띄게 부각되진 않았다.
결혼보다 일을 지향하며 전통적인 여성상을 거부하는 콘트라 섹슈얼족은 이런 가치관의 변화로 ‘화려한 싱글’을 선호한다. 이처럼 여성의 사회참여와 경제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싱글족이 늘고 있는 것이다. 즉, 콘트라 섹슈얼은 여성 중심의 패션, 미용보다 ‘싱글’문화와 관련이 깊다고 볼 수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싱글들의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과 소비성향 때문에 향후 잠재 소비 세력으로 주목받고 있다”며 특히 여성 싱글족 증가를 대세로 꼽았다. 즉 싱글 소비자들은 경제적인 면에서 여유로운 편에 속해 자기관리나 즐기는 데 인색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20대 직장 여성의 대부분은 요가나 째즈댄스, 필라테스 등 해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정기적으로 피부 미용을 받거나 피부과를 찾는 것도 잘 나가는 여성들 사이에선 흔한 일이다. 또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이 높고 이에 대한 수용도 빨라 소비지출이 큰 편이다. 여기에 주변인의 관심사와 유행하는 브랜드 등 트렌드에 민감한 것도 싱글 소비자들의 특징이다.
최근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전통적인 남녀 간의 성 영역을 무너뜨리는 구매패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옥션 인터파크 KT몰 등은 메트로 섹슈얼과 콘트라 섹슈얼족을 대상으로 전용 편집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남성몰에서는 피부관리용품과 헤어제품, 화장품 등이 인기고 여성몰에선 공구세트 등이 전에 없이 잘 팔리고 있다.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남성들의 화장품류 구매는 하루평균 470여개로 지난해 동기간 190여개에 비해 2.5배 늘었고 의류는 2배, 팔찌 목걸이 등 보석류 구매는 55% 이상 급증했다.
반면 여성들의 의류 구매는 증가율은 50%에 그친 대신, 공구제품과 자동차 용품 구매가 급증했다. 여성들의 공구제품 구매는 일평균 640여개로 지난해보다 4개, 자동차용품은 900여개로 2배 증가했다.
독신족이 늘고 주5일제 근무로 여가시간이 늘어 가구조립과 집안 단장, 자동차 정비 등 실용적 취미를 즐기는 여성인구가 늘어난 데 따른 것으로 옥션측은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