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왜 도청의 불법성에만 초점을 맞춰 정작 사건의 또 다른 한 축인 ‘정경언 유착’의 실체적 진실을 외면할까.”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신문모니터위원회가 분석한 X파일 5대일간지 보도태도 분석의 골자다. 민언련은 8월9일 “97년 대선 당시 삼성의 대선자금 제공과 중앙일보의 개입, 삼성의 기아차 인수공작 의혹 등이 X파일로 드러났지만 사건의 한 당사자인 중앙일보를 비롯해 많은 신문들이 도청의 불법성에만 초점을 맞췄다”며 문제의 중앙일보를 비롯한 5개 일간지의 보도행태를 분석 발표했다.
민언련의 분석에 따르면 중앙일보는 줄곧 ‘X 파일’ 사건을 축소 보도하면서, 이번 사태의 핵심을 ‘불법 도청’으로만 규정, ‘정-경-언 유착’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태도를 보였다.
‘도청’에 초점맞춘 조중동
7월 22일 다른 신문들이 1면에 삼성과 언론, 재계, 검찰 간의 유착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내보낸 날, 중앙은 2면에 ‘YS 때 안기부 불법도청/ 국정원, 진상조사 착수’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불법 도청에 관한 내용만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같은 면 기사 ‘불법도청 내용 방송 말라’에서도 불법 도청으로 입수한 내용을 보도할 수 있느냐는 논란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중앙의 ‘반쪽 보도’는 일관되게 나타났다. 중앙은 23일자 사설 ‘X파일, 도청 진상규명이 먼저다’에서도 “밝혀져야 할 진실의 첫째는 도청이다. 문제의 본질 또한 그것이 되어야 한다”며 정경언 유착 관련 부분은 은폐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보도 태도는 중앙일보의 관련 기사 제목을 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민언련은 또 중앙이 정계와 재벌, 언론계 간의 커넥션과 불법 대선자금 제공 등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중앙은 불법 도청 테이프 유출 과정의 문제를 강조해 자사(自社)와 삼성에 쏠린 비난의 화살을 회피면서 ‘X파일’ 공개의 정당성을 깎아내리려고 했다는 것.
하지만 민언련은 조선과 동아가 초기 보도때는 불법 도청 테이프의 내용에 대해서도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실었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조선은 7월22일 사설 ‘불법도청과 불법적 대선자금 지원 논의’에서 “도청 문제는 도청 문제대로, 또 도청 테이프 속의 대화내용은 그것대로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으며, 동아는 7월 23일 사설 ‘홍석현씨 충격적 행적 사실인가’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근절하고 정치권과 기업간의 구태를 청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7월 25일 이후부터 조선과 동아는 중앙일보와 마찬가지로, 도청의 불법성에만 이번 사태의 초점을 맞추는 태도를 보였다고 민언련은 밝혔다.
한겨레 경향 ‘정경언 유착’주력 보도
민언련은 반면 한겨레와 경향은 ‘정경언 유착’의 실체를 밝히는 데 주력해야 한다며, 도청의 불법성 논란으로 사건의 본질이 흐려지는 것을 강경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민언련에 따르면 경향은 7월22일자 사설 ‘권력재벌언론의 유착, MBC 용기 내야’에서 “권언경 복합체가 어떻게 구축되었으며, 어떻게 작동해왔고, 오늘날 어떤 기능을 하는지 이제는 우리 모두 분명히 알 권리가 있다”며 “테이프의 내용을 숨김없이 다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 역시 녹취록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도하면서 적극적인 수사를 촉구했다. 한겨레는 7월25일 3면 기사 ‘일류기업 삼성, 불법자금 제공도 일류’, 같은 날 5면 기사 ‘언론 사유화 이회창 후보 참모노릇’ 등에서 녹취록에 담긴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자기 성찰 없는 언론
민언련은 “이번 사건은 ‘정경언 유착’ 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점에서 언론이 겸허히 자기비판부터 해야 할 사건이었다”며 “하지만 사건의 당사자인 중앙일보는 말할 나위도 없고, 녹취록에서 그 이름이 거명된 조선일보를 비롯한 거대 언론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들은 진지한 자기 성찰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민언련에 따르면 변명과 ‘협박성’ 기사로 일관한 중앙일보는 물론 조선일보도 자신들이 ‘X파일’에 언급 되어있음을 숨겼다. 23일 기사 ‘이회창 이미지 만드는데 11억 소요 …도와달라’ ‘그러지요’에서 녹취록에 언급된 자사의 이름은 숨겼다. 조선일보가 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건강문제를 제기해 낙선시키려 했다는 내용이 드러난 것인데, 조선일보는 이 내용을 전하며 “이 언론사는 이에 대해 사실과 다른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는 인터뷰 내용을 덧붙여 다른 언론사의 얘기인 양 썼다는 것이다.
민어련은 이번 X파일 관련 신문보도 분석이 지난 7월21일부터 28일 사이에 진행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