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를 통해 본 국제사회 힘의 역학
‘세계대통령선거’라는 미국민의 프라이드에 ‘찬물’ 망신살…
직·간접선거 혼용한 선거인단선거의 대선방식 제고케 돼
최근 세계적으로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사건은 다름 아닌 미국 대통령선거의 혼돈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최 일선에서 종주국으로 세계경영을
해 온 미국이 민주주의를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토대인 최고 통치권력 만들기. 대통령선거에서 혼란에 빠졌다는 것은 진실로 웃음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어떠한 권력도 완전한 것은 없고 반드시 그 내홍(內訌)이 있기 마련이지만 전혀 뜻밖에 대통령선거에서 그것이 드러나리라고는 누구도 쉽게 생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미국의 내홍(內訌)
4년마다 한번씩 돌아오는 선거철만 되면 세계 언론으로부터 미국의 국민적 축제로 부각되었던, 또는 미국의 응집력을 과시하고 미국의 풍요와
페어플레이 정신을 대내외에 보여주었던, 아니 세계대통령을 뽑는 것으로 미국민들의 프라이드가 되었던 미국대통령선거는 이번에 크게 망신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풍요한 정치행사가 되어야 할 대통령선거가 자칫하면 미국 법정에서 대통령을 가려야 하는, 매우 어글리한 모습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직접선거와 간접선거를 혼용한, 선거인단 선거를 통한 대통령선거 방식은 그 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인식되어 왔지만 이제 큰 문제점을
안고 있음을 드러낸 셈이다. 또 부시와 고어, 두 후보의 대권에 대한 집착은 아무리 아름답고 훌륭한 말로 위장한다고 하더라도 역시 권력욕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주었다. 구 소련의 붕괴로 미국은 지금 혼자서 초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정치-경제질서를 거의 자신들의
국익과 계속적인 세계경영에 유리하게 이끌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이는 미국의 횡포와 오만을 지적하기도 한다. 특히 미국의 덤핑판정의
남발은 후진국의 원성을 사고 있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가장 큰 절대권력, 절대제국이었던 로마가 내부적 모순, 즉 내부의 부정부패와 사치와 퇴폐로 인해 망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자신들의 강력한 적이 없어진 미국은 스스로 내부의 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로마와 마찬가지로 레이건 대통령
당시 소련과의 체제우위 경쟁에서 군비경쟁을 유도하여 전쟁을 하지 않고 승리하여 정치적으로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최근 미국 경제의 융성에 힘입어
더더욱 안하무인격이 되었던 게 사실이다. 누가 감히 미국을 상대하고 나서겠는가. 누가 감히 미국의 말에 거역을 하겠는가.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으로 중국을 떠올리는 학자들도 많아지고 있다. 이는 미국 독주에 대한 새로운 견제세력을 필요로 하는 세계인들의 기대일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보편적 힘의 원리, 힘의 역학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둘은 언제나 하나가 되려고 하지만 하나는 반드시 둘로 나뉘어지는’
그 역학 말이다. 미국과 소련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양극체제를 이루면서 누가 세계를 통합하는가를 경쟁하였다. 거기서 미국은 실지로 세계통합을
이루었다. 하나를 이룬 것이다. 그런데 하나를 이룬 미국은 내부적 분열조짐을 보이면서 은연중에 국제적으로 새로운 라이벌 세력이 부상하는 것을
키우고 있거나 방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세계는 다시 둘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세계인들은 바로 미국 독주체제에 염증과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의 혼란은 바로 대내외적으로 다시 양극체제를 이루려는 조짐과 역학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독주체제보다는 양극체제는
오히려 건강한 정치체제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크든 작든 견제 없는 정치세력은 언제나 자체 모순을 드러내고 붕괴되어온 정치사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여러 가지 점에서, 다시 말하면 법의 준수, 건강한 노동세력의 유지, 창조적 두뇌의 개발 등을 통해 볼 때 앞으로 상당한 기간동안(짧게는
50년, 길게는 백년) 세계를 경영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만약 그것에 대한 방해요인을 들 때 마약이나 성적 퇴폐 등과 함께 바로 작금의
혼란에 처한 대통령 선거와 같은 정치적 혼란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세계경영의 방해요인이 될 43대 미대선
권력은 본질적으로 경쟁하게 되어 있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하게 되어 있다. 미국이라고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 미국은 ‘초강국의 나라’,
‘풍요의 나라’, 그리고 종합적으로 ‘선진의 나라’라고 할 수 있지만 반드시 우리가 흔히 인식하고 있는 ‘선량한 나라’, ‘도덕의 나라’,
‘인권의 나라’인 것은 아니다. 전자의 경우는 객관적으로 드러나지만 후자의 경우 감추어진 측면이 많은 것이다. 이번에 흑인선거 방해나 투개표부정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개연성과 함께 전반적으로 ‘돈선거’라는 부정적인 측면이 노출되었다. 미국은 ‘악랄한 나라’이고 ‘타락의 나라’이고
‘반인권의 나라’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 미국은 심한 분열상을 보이면서 그 동안 구축해왔던 좋은 이미지를 잃었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나쁜 이미지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정책은 언제나 세계평화를 위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 속에는 언제나 미국 국익을 표방하고 있다. 미국은 어쩌면
민주주의나 인권이나 기독교적 사랑마저도 미국의 세계제패나 세계경영에 이용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미국은 지금 전쟁을 하지 않고서도 세계금융시장
개방과 세계 정보통제력을 통해 이익이 있는 곳이면 세계 어느 곳이라도 달려가서 들락거리면서 이익을 사냥하고 있다. 라이벌이 나타나면 가차없이
해를 가하거나 심하면 죽일 수도 있다. 미국은 어떻게 보면 가장 비정한 나라일 수도 있다. 미국의 선량한 이미지의 신화는 차츰차츰 어그러지고
있다.
미국은 지금 최고의 절정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서히 내리막길로 들어서고 있는 지도 모른다. 미국은 스스로 반성하지 않으면 단지 그
망함을 단축하거나 빠르게 할뿐이다. 만약 미국민들이 슬기롭게 그 위기를 극복한다면 그 망함을 연장하거나 느리게 할 뿐 인 것이다. 지금 미국은
밖에 마땅한, 긴장하게 하는 적이 없기 때문에 안으로 분열의 기운에 휩싸여 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한때 영화를 구가하였던 영국은
오늘날 매우 왜소한 나라로 전락해 있다. 그나마도 영국의 적자(嫡子)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여러 가지 배려로 지금의 지위나마 유지하고 있다고
하는 편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오늘의 미국이 내일의 영국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세계 권력의 판도는 어떻게 변할까? 이에 미리 대처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현명한 자세일 것이다. 한국은 미국을 맹방(盟邦)이니
혈맹(血盟)이니 하면서 마치 수호천사처럼 신봉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미국은 절대선의 나라도 아니며 절대적으로 의지할 나라도 아니다. 구한말
종주국이었던 청(淸)나라가 망하니까 결국 우리도 따라 망했던 전철을 다시는 밟아서는 안될 것이다. 미국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위의내용은 본지의 주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박 정진 (문화평론가, 전세계일보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