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34곳 기초단체장들의 반란(본지 261호 ‘기초가 봉인가’커버스토리 보도)에 이어 이번에는 3,496명의 기초의원들이 ‘기초선거가 돈선거’가 된데 항의(본지 262호 보도)하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모였다.
8월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1층 대회의실은 전국에서 몰려든 전국시·군·자치구의회 의원들로 초만원을 이뤘다. 이날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실이 마련한 ‘기초의원 선거제도 개정을 위한 공청회’장은 패널 한마디, 한마디마다 댓말 함성이 오가는 등 팽팽한 긴장과 분노가 함께했다.
동네마다 혼란, 지방자치는 환란?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지난 6월30일 전국시장군수구청장을 비롯해 시군자치구의회 의원들에게까지 정당공천을 허용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자 이들 기초의원들은 그야말로 동네마다 아우성이라며‘풀뿌리 지방자치’시계를 거꾸로 돌린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정식 반기를 들었다.
300여명은 족히 넘을 듯 빼곡히 자리를 메운 이들 기초의원들은 시·군·자치구의원 정당공천폐지를 위한 결의문을 통해 △시·군·자치구의회 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 △현재의 소선거구제 유지 및 중선거구제 폐지 △시·군·자치구의회 의원정수의 축소 최소화를 적극 촉구했다.
“자기네들이 통과시켜 놓고 국회의원들은 왜 이리 많이 온거야?” “내려와, 당신이 그런말 할 자격 있어?” “이건 지방의원에 대한 중앙의원의 폭거라고.”
공청회 시작 전 앞좌석을 빼곡히 채운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한명씩 단상에 올라 “이건 교각살우다. 소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이는 꼴이다” “죽은 소는 못살려도 죽은 법은 다시 살리자” “사람 숫자 줄여 예우한다는 건 조삼모사다” “국회농성이라도 해서 막았어야 했는데 지금 동네마다 우왕좌왕 정말 너무나 죄송하게 됐다”는 발언들을 토해 놓자 듣던 중 어이없다는 등 좌중은 한바탕 웅성,고성,함성이 터져 나왔다.
선거구 범위 선관위도 ‘모르쇠’
“문제는 시·군·자치구의회 의원 후보에 대해 정당공천을 하게 된 데 있다. 지역구 시·군·자치구의회 의원 선거구를 2인이상 4인 이하의 범위 안에서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로 바꾸고, 시·군·자치구의원선거에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며 기초의원 정수를 현재의 3.496명에서 2,922명으로 16.4%를 축소한 조항이 문제이다.”
주제발제에 나선 정세욱 한국공공자치연구원장의 지적대로면 개정 공직선거법은 동네마다 1명 선출하던 기초의원은 2~3동을 한데 묶어 2~3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로 바뀐다. 따라서 후보들은 내동네 뿐 아니라 2~3동네를 돌며 선거운동을 해야하고, 늘어난 선거기간중 명함배포도 가능해져 선거비용 역시 만만찮게 된다. 여기에 유권자가 받아보는 선거전단은 기초,광역,비례까지 총 30장이상 예견되다 보니 앞자리 정당공천 번호라도 받지 못하면 ‘어느 유권자가 9번,10번 후보를 기억하겠는가’라는 탄성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없다. 하물며 선거구 설명에 나서야 할 선관위조차 아리송하기 짝이 없다는 데에야.
“자, 그럼 이렇게 하는건 어떻습니까. 정당공천은 그냥 가고, 중선거구제는 기존 소선거구제로, 또 의원정수는 안줄이는 개정안을 9월국회에 내는 것으로 말이죠.”
공청회를 주최한 이재오 의원이 마침내 내논 ‘대안’. 하지만 장내는 말그대로 ‘썰렁~’함도 잠시, “장난치나. 국회의원은 어쩔 수 없다니까” “6월국회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에이 가자고, 더 들을게 없네”등등 삽시간에 아수라장을 연상시켜 놓고 말았다.
예정시간을 훨씬 넘어 진행된 마라톤 공청회는 “시간이 문제냐, 끝까지 할 말이나 다 해보자”던 풀뿌리 의원들의 아쉬움만 뒤로 한 채 마침내 끝이 나고.
“어떡하겠소. 그나마 그중 2개라도 개정되는 안이 가을국회때 나와주면 다행아닌가벼~”절이 싫으면 승이 절을 떠나는게 맞는 속담일까. ‘정당공천 못받을 바엔 탈당이 대수냐’며 총총히 국회를 빠져나간 기초들의 어깨가 무거운 가방에 가위눌린 듯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