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
경제불황 반영한 숫자달력 제작에 한창, 환경친화적 달력 인기
벽에 말없이 걸려있는 달력은 어느덧 한장 남아있다. 소리없이 있으면서 시간의 흐름을 가장 정직하게 표시하는 달력은 항상 말없이 함께 하는
묵묵한 친구처럼 변화하는 시대를 조용히 담고 있기에 정감 어리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새해는 분명 2001년 1월 0시에 시작하지만 준비는 12월 둘째주에 대개 완료된다. 인쇄업체가 몰려있는 신당동이나 을지로, 충무로에서
인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더욱 빠른 손놀림을 한다.
기업체 고유달력(order made)과 이미 제작하고 상호란을 비워둔채 주문을 받는 기성달력(ready made)과 판매용달력을 기호에
맞게 만드려면 약속시간뿐 아니라 디자인과 색상에서도 손색이 없어야 한다. 기성달력의 경우 인쇄회사의 디자이너가 직접 그림이나 디자인을 고안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유명한 그림이나 디자인의 사용료를 빌려 달력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샘플제작비만 해도 연간 5억원이 넘어 매우 고가의 지출을 요하는 부분이지만 자사제품이라는 자부심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유혹이다. 기성달력은
원가에 맞은 가격을 요구할 수 있어 인쇄업체에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보통 그림이나 사진이 없이 숫자만을 넣은 달력같은 경우 단가가 카드
한장의 가격으로 밖에 평가되지 못한다니 기성달력에 쏟는 열의가 느껴진다.
영하의 기온과는 다르게 작업으로 뜨겁게 달궈진 인쇄기계는 24시간 쉴틈이 없다. 영업과 관리실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이 밤 12시까지 근무하는
것은 기본이고 인쇄와 제본을 맞은 직원들은 24시간 풀가동이다. 1일 2교대를 한다니 새해를 맞이는 인쇄소는 시끌벅적하다.
10월 말부터 시작되는 달력제작은 매년 바쁜시간을 되풀이 하고 있지만 한해를 아쉬워(?)하는 이들로 인해 한해의 끝무렵에 가서야 주문과
생산이 동시에 이뤄진다. 우리나라 달력생산 업체가 제작 협력을 받고 있는 일본의 경우 제작업체와 판매업체가 엄격하게 분리되어 비교적 안정된
환경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판매업체가 8월말까지 선주문을 받아 업체간 공동으로 제작된 달력을 적정수량만 생산하여 공급하기 때문에 재고의 위험도 없고 날짜에 쫓겨
제작하는 일이 없다. 이를 두고 우리나라의 달력제작업체들은 일본이나 미국처럼 달력을 8월말까지 주문할 것을 권유하나 급하게 주문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 수요자로 인해 인쇄업체의 겨울은 땀이 난다.
달력을 찾는 사람들
달력은 시대상황을 반영한다. 볼링이 한창 유행하던 80년 초에는 볼링용품이나 볼링경기 사진을 담은 달력이 인기를 끌었다. TV매체가 활발하지
않던 시절에는 인기연예인의 사진을 담은 달력이 진열되기 무섭게 팔렸다.
달력의 주문과 생산이 항상 새해의 몇달을 앞두고 제작 판매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달력은 유행을 예감을 한다.
때문에 달력제작은 우리나라 자체에서만 고안해내는 것이 아닌 일본이나 독일등의 달력제작업체와 끊임없는 교류로 이루어진다. 달력제작이 마무리되는
12월이 지나면 당장 새해 1월 부터는 2002년 달력을 제작하는 준비가 이뤄진다.
달력은 당시의 경제도 담고 있다. 사진이나 회화 또는 숫자로 구성되는 달력중 올 2001년에 단연코 많이 제작하는 것이 숫자달력이다.
올해 일년처럼 내년 2001년도 경제불황이 계속될것으로 얘기되는 것을 이미 제작된 달력들은 말해준다.
그림과 회화가 없는 대신 약간의 포인트만을 살린채 종이의 대부분을 메운 숫자달력은 경제불황기때 유행한다. 호황기때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분위기와는 반대로 달력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숫자를 알려주는 소박한 역할이다. 숫자달력은 자칫 사무실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제작비와 필름제작비가 적게 들어 불황기때 안성맞춤이다.
달력이 담은 열두달처럼 각 가정에 걸린 달력의 그림에는 여러가지 사연이 있는 듯하다. 달력구매자가 보통 40대 이상인 점을 감안해 달력에는
‘한국’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많다. 또한 명화가 들어간 그림은 주문자의 수준이 평가되기에 일류화가의 그림은 언제나 말없이 고즈넉하게 자리한다.
틈새에 자리잡은 아날로그 달력
중·장년층이 찾는 달력은 매년 마다 새로운 희망을 간직한 채 만들어 진다. 그 때문인지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대도시에 위치한 달력인쇄업은
불황을 잠시 잊고 있다. 항상 자리하고 있는 필수품이기에 종이마다 새해를 알리고 있다. 예전보다 달력주문은 많이 줄었지만 그리 큰 차이는
없다. 불황기에 강한 필수품의 특성이 아닌가 싶다.
소형화 되고 개인화되어가는 이 시대에 달력은 단순히 한가지 기능만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 하다. 인테리어를 겸비한 장식성과 메모가 가능하며
열압착을 이용하여 환경친화적인 소형의 ‘탤런트기질’ 2001년 탁상달력을 보며 새해의 희망을 빌어본다.
디지털 시대를 알리는 아날로그 달력“전자시대에도 달력은 영원할 것”… 2대째 가업 이어30여명의 사원으로 구성된 신당동의 홍일문화인쇄사는 창업 30년을 맞고 있다. 이 곳 신당동에 자리할 당시 매입한 건물이 일제 12월 중순이면 달력생산을 마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후의 움직임은. 1월에 일본에 있는 달력전시회에 참가하여 2002년 달력을 구상한다. 또한 3월에는 미국과 일본의 교민을 상대로 달력수출을 교민들은 어떤 달력을 선호하는가. 달력 구매자가 중·장년층이상이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므로 우리나라 전통의 모습을 담은 사진달력을 선호한다. 특히 한복을 환경친화적인 달력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든 것으로 아는데 반응은 어떠한가. 열압착을 이용해 만든 달력은 가공시간과 인건비가 많이 들지만 반응이 좋아 보람있는 작업이었다. 10여종의 샘플을 만들어 30만부를 달력의 주문과 생산이 후반부에 몰려있다. 특별한 이유라도. 일본이나 미국은 8월까지 주문을 받고 생산작업에 들어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주문을 할때 여유를 두지 않는다. 그래서 제작업체들은 전자화된 시대에 달력의 의미는. 디지털문화와 아날로그문화는 공존한다. 달력은 영원히 인쇄지의 형태로 존재할 것이다. |
조정희 기자 jhcho@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