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흔히 ‘투수 놀음’이라는 얘기를 한다. 그만큼 경기에서 투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의미다. 올해 한국 메이저리그들은 전성기를 구사하고 있다. 이번 시즌에는 박찬호 김병헌 서재응 김선우 등 무려 4명의 투수가 선발로 활약하고 있어 어느 때보다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 ‘컨트롤 아티스트‘로 평가받는 뉴욕매츠의 서재응의 위력이 가장 돋보인다.
제구력이 볼 스피드 보다 중요
서재응이 연이은 호투를 하면서 그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코칭스태프들도 그를 최고의 선수로 평가하고 있다. 그동안 서재응이 속앓이를 한 것은 빼어난 컨트롤에도 불구하고 정상급 선수에 비해 볼 스피드가 떨어지고 결정적인 승부가 없고 구질이 단조롭다는 게 문제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윌리 랜돌프 감독의 신임을 받는데 실패했다.
이후 마이너리그 트리플A로 내려가 경험을 쌓다가 8월 선발진이 붕괴되면서 메이저리그에 재입성 했다.
서재응이 이 같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다소 의외다. 그가 구사하는 구질은 143㎞의 평범한 직구에 132㎞ SF볼과 127㎞의 슬라이더. 여기에 최근 배운 138㎞의 컷패스트볼에 121㎞의 커브를 던진다. 이런 구질은 국내 프로야구 선수들 대부분이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이러한 공에 제대로 배트를 휘두르지 못한다.
그는 다른 선수들이 갖고 있지 않은 자로 잰 듯한 제구력과 투구에 속도를 가하거나 빼주는 완급조절능력이 탁월하다. 이는 타자로 하여금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도록 하는데 적격이다. 여기에 갖고 있는 구질을 연속적으로 던지지 않아 상대타자들로서는 빠르지도 않고, 평범한 것 같은 공에 제대로 대처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서재응은 득점권에서 피안타율이 1할5푼4리에 불과하다.
서재응의 이러한 능력은 5일 돌핀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플로리다와의 원정경기에서 보여줬다. 상대는 167㎞를 던져 스피드건 고장여부로 논란을 몰고온 우완 정통파 A.J. 버넷. 평균 구속이 155~156㎞의 광속구를 던지는 그에 비해 서재응은 142~143㎞의 느린볼(?)을 던졌다. 서재응은 이날 경기에서 최고 구속이 148㎞에 불과했지만, 스트라이크 존을 걸치는 코너워크로 7이닝동안 5안타 1실점으로 틀어막았다. 특히, 총 110개의 투구 가운데 스트라이크가 70개로 뛰어난 컨트롤 소유자임을 재확인 시켰다. 또 3회와 7회를 제외하곤 득점권 주자를 내보내면서 위태로운 경기를 펼쳤지만, 실점은 4회 2사 3루 상황에서 폭투로 내준 것이 유일하다. 버넷은 5이닝 동안 삼진 9개를 잡아내며 강속구의 위력을 보여줬지만, 7안타 5실점하면서 컨트롤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했다.
마르티네스와 함께 에이스 떠올라
코칭스테프의 마음까지 돌려세운 서재응의 활약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지만, 복귀 후의 활약은 가히 충격적이다.
야구에서 투수를 판단하는 기준은 승수와 방어율, 탈삼진으로 평가한다. 이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운이 아닌 본인의 실력이 가장 크게 좌우되는 것이 방어율이다.
투수가 한 경기에서 많은 점수를 주더라도 우리팀이 한 점만 더 내주면 승리투수가 된다. 그러나 방어율은 다르다. 비록 야수들의 수비가 도움이 돼야 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의 상당부분은 투수에게 돌아간다. 삼성의 선동열 감독도 선수시절 “방어율 타이틀이 가장 욕심난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트리플A 노포크 타이즈에서 올라온 서재응은 6번의 선발등판에서 5승 무패 방어률 1.70을 기록중이다. 42와 3분의 1이닝 동안 피안타 35개, 29탈삼진을 마크중이고 피안타율은 2할2푼7리에 불과하다. 특히, 1점대의 방어율은 국내 프로야구는 물론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2~3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하는 기록으로 올시즌 휴스턴의 로저클레멘스(1.57)가 유일하다. 비록 규정이닝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지난해 선발로테이션에 합류해 타자들에게 노출된 상태에서 1점대 방어율의 의미는 남다르다.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 칼럼니스트 존 도노반은 7일 “내셔널 리그에서 가장 돋보이는 투수는 서재응”이라면서 “서재응이 다음 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돼야 메츠가 와일드카드 경쟁에서 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그의 가치를 인정했다.
랜돌프 감독은 “우리가 의지해야 할 에이스들(Aces)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우리는 요즘 서재응이 등판할 때 승리를 위해 그에게 의지한다”고 밝혔다. 이는 서재응을 페드로 마르티네스와 함께 원투 펀치로 평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탈삼진도 직접적인 투수의 가치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탈삼진이 많다는 것은 확실한 승부구를 갖고 있다는 것이고, 타자는 그에 대한 부담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나 탈삼진이 많을 경우 투구수가 늘어나 오랜 이닝을 소화하지 못하는 단점을 갖고 있다.
결정구·집중력 보완 필요
그러나, 확실한 결정구가 없다는 것과 2사후 집중력이 흩으러 진다는 부분은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쉽게 늘어나지 않는 구속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확실한 결정구를 찾아야 한다. 투수가 확실한 결정구를 갖고 있는냐 없느냐의 차이는 크다. 결정구가 있는 투수에게는 타자들이 그 공이 언제 날아올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결정구에 대한 중요성을 보여준 것이 지난 8월31일 필라델피아와의 홈경기. 서재응은 5이닝동안 10피안타 6탈삼진 4실점으로 부진했다. 이날 경기에서 서재응이 곤혹을 치뤘던 가장 큰 이유는 결정구의 문제였다.
1회 필라델피아 선두타자인 지미롤린스와의 승부에서 무려 11개의 공을 던졌다. 이로 인해 후속타자에게 연속 홈런을 맞는 등 1회에만 홈런 두 방을 포함해 3피안타 3실점했다. 투구수는 무려 36개에 달했다. 서재응은 5회 교체될 때까지 무려 92개의 공을 던졌다. 컨트롤 위주의 투수는 강속구 투수보다 힘 의존도가 낮아 더욱 많은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결정구 문제가 선행된다면 보다 확실한 투수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2사후에 피안타율이 높다는 부분도 개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서재응의 피안타율은 2할6리로 수준급이지만, 2사후에는 2할5푼으로 치솟는다. 2사후 주자를 내보낸다는 것은 투구수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추가실점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데 문제가 있다. 다행히 2사후 주자가 득점권에 있을 때 1할5푼8리로 낮다는 것이 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