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일진회의 실태를 고발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서울 J중학교 정 모 교사(53세)가 학교폭력 피해 학부모를 성추행하고 음란사이트 스탭으로 활동했다는 주장 등이 잇달아 제기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정 교사는 일진회의 폭력 문화를 고발하고 유명세를 떨치며 ‘학교폭력 예방 전문가’로서 활동해 왔다. 그런 그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학교폭력 피해 학부모를 상대로 성추행을 하는 등 비상식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를 해왔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학가협 “정 교사와 상담한 학부모 대부분 성희롱 당해”
학교폭력가족협의회(학가협)는 한 회원으로부터 정 교사가 학교폭력 피해 학부모에게 성추행을 했다는 제보를 받고 자체조사를 벌여 성추행 혐의 4건과 성희롱 수십건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학가협 관계자는 “정 교사는 지난해 5월부터 상담을 하러 찾아온 피해 학생 학부모에게 수차례 신체적, 언어적 성추행을 해왔다”면서 “학교 폭력 피해 학부모들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을 악용해 상습적으로 성희롱과 성추행을 시도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분개했다.
피해 학부모의 주장을 들어보면, 속된 말로 “아는 놈이 더 한다”, “세상에 믿을 놈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피해 학부모들은 정 교사가 학교폭력 상담을 하면서 소송에 이길 수 있는 자료를 주겠다고 해서 만났다가 이런 봉변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학부모 A씨는 “아이의 학교폭력 피해 소송을 준비하면서 수차례 상담을 받았지만 상담은 뒷전이고 ‘여자랑 만나면 남자로써 흥분이 된다’느니 ‘성관계를 맺고 싶다’는 등의 성적 수치심과 모욕만 당했다”고 한다.
학부모 B씨의 경우, 학교폭력 토론회 후 저녁식사를 하고 노래방을 갔는데 정 교사가 갑자기 옷 속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만지는 등 심한 신체접촉을 했고 학부모 C씨도 정 교사가 부르스를 추자고 하더니 성추행을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피해 학부모는 “정 교사가 갑자기 밤늦은 시간에 불러서 나가보니 술에 만취한 상태로 피곤해하면서 모텔로 가서 이야기하자고 했다”면서 “그 이전에 카페에서 만났을 때도 옆 자리에 앉아 키스를 하겠다고 하는 등의 말을 했다”고 말했다.
학가협은 “자체조사 결과 피해자라고 나선 사람만 4명일 뿐이지, 정 교사를 만난 대부분의 학부모가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파문이 확산되면서 학가협은 △피해 학부모들에게 공개 사과하고 △교단을 떠나며 △흥사단 교육운동본부와 서울시 학교폭력대책위원회 활동에서 일체 손을 떼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정 교사는 “일진회 아이들의 음해”라며 일각에 제기되고 있는 자신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그는 또 학부모들의 잇단 폭로에 대해 “일진회 아이들의 탈선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면서 “이로 인해 성적 수치심을 느낀 학부모가 있다면 그 점에 대해선 사과할 용의가 있지만 학부모들이 주장한 것처럼 성추행은 없었다”고 반박하고 학가협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성추행 의혹 결국 법정으로
정 교사는 또 나중에는 말을 바꿔 언론사 인터뷰에서 “학가협이 사무실 임대에 대해 도움을 요청했는데 거절한 것 때문에 자신을 모함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가협 측은 정 교사의 이런 주장에 “사무실 임대에 도움을 요청한 바도 없다”면서 분개했다.
피해 학부모들은 정 교사가 사과를 하기만 하면 조용히 끝내려고 했다고 한다. 모든 정황이 명백한데도 사과는 커녕 피해 학부모에게 협박을 가하자, 강지원 변호사에게 법률자문을 맡기고 민·형사상 고발과 손배소송을 하기로 했다.
정 교사는 이런 사실을 폭로한 피해 학부모의 집에 무단 침입해 협박과 행패를 부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내용을 집중 취재한 모 기자에 따르면 정 교사가 부인과 함께 피해 학부모의 집에 침입을 해 ‘내가 이래뵈도 힘있는 사람’이라며 ‘날 건드린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는 등 폭언을 하며 행패를 부리고, 어떤 학부모는 자꾸 전화를 걸어 협박을 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학가협 측은 정 교사가 소속돼 있는 흥사단 측의 중재로 지난 5일 정 교사를 만나 마지막 공개사과를 요구했으나, 끝내 합의하지 못해 결국 성추행 의혹은 법정에서 진위가 가려지게 됐다.
강지원 변호사는 “피해자들의 진술이 매우 구체적이고 정황증거가 뚜렷한데다, 피해 학생 학부모들도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면서 “성추행 혐의에 대한 형사 고발과 명예훼손 등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민·형사상 고소.고발과 별개로 학가협 측은 정 교사가 부적격 교사로서 교단에서 퇴출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 교육청은 “사법처리 전까지는 섣부른 징계가 어렵다”며 난감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음란사이트 스탭으로 활동?
그러나 파문은 학부모 단체와 시민단체들의 반발로 더욱 크게 확산될 조짐이다. 학가협은 지난 6일 오전 정 교사가 재직 중인 학교에서 규탄시위를 벌였다. 또한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등도 공동대책 위원회를 결성해 정 교사의 퇴진운동에 적극 가담하기로 했다. 참교육 학부모 관계자는 “진상 규명이 돼야 알겠지만 성추행이라는 것이 당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느꼈다면 어찌됐든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 아니냐”며 “공대위가 꾸려지는대로 그에 맞는 대처를 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 교사는 전화 연락은 두절하고 있으나 대외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정 교사에 대한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후, 음란사이트 스탭으로 활동했다거나 최근 성추행으로 구속된 육영재단 국토순례단 전 총대장 황 모씨와 잘 아는 사이로 문제의 국토순례단의 지도교사로도 참여한 것으로도 알려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미 음란사이트 스탭 전력은, 지난 3월9일 학교폭력 종합대책 수립 관련 브리핑에서 서울시 교육청 고위간부들이 기자들에게 배포한 자료에 정교사가 음란 사이트 관리자로 등록돼 있다는 내용이 첨부돼 있었다는 것.
모 학생이 운영하는 음란사이트를 적발해 증거물로 해당 커뮤니티를 남겨놓았다는 것이 정 교사의 당시 해명. 하지만 즉각 폐쇄조치하지 않았는지, 스탭으로 등록돼 있었다는 데 의문점을 남겼다.
한 남자 학부모는 “정 교사가 모 시민단체 회장이라는 명함을 뿌리고 다니고 ‘내 뒤에는 모 시민단체가 있다’고 했다. 그 단체에 새로운 피해자 가족협의회를 만들고 100만원씩 월급을 주겠다고 말했지만 나중에 보니 그 단체에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언론에 주장했다. 일각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 교사에 대한 의혹이 진실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학교폭력 근절을 위해 앞장서온 진정한 교육자에서 한 순간 두 얼굴을 가진 파렴치한과 성추행범으로 추락한 정 교사에 대한 일련의 의혹들을 보면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