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는 삼키지 않은 건가, 삼킬 수 없던 걸까. 노무현 대통령이 내 논 ‘한나라당 주도 대연정 구성 제안’이 9월7일 열린 청와대 ‘노-박 회담’에서 ‘결렬’ 종지부를 찍었다. ‘대통령은 정권을 내놓고, 한나라당은 지역주의를 포기하는’연정제안. 말 끝나기 무섭게 거절당한 대통령, 표정하나 없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사이에 흐른 ‘뜨거운 감자’대연정. 교육, 부동산, 세금, 선거구제…. 하나부터 열까지 첨예하게 ‘당 대 당’으로 대립되는 단어들 속에서 “민생경제를 위한 거국내각, 초당내각을 해보자”는 대통령의 제안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대로 끝나버린 것일까.
민생경제 위기극복을 위해서 민생경제를 위한 거국내각, 초당내각을 해 보자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 한나라당은 너무 다르다. 연정은 합의의 국정운영이다. 이렇게 달라서야 되겠는가. 비슷하고, 평소 노선이 있고, 한마디로 친화력이 있어야지 연정을 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에 얼마나 많은 혼란이 있겠는가.” -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노-박회담, ‘벽 Vs 벽’이 나눈 얘기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연정이 뭔 소리’인가 반문했다면 정작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회담내용은 뭔가 이상하다. 차라리 TV회담이라도 했다면 연정따로, 민생따로 임을 떠들어대는 여론의 진위를 회담을 지켜보며 확인이라도 했었을 텐데. 민생경제를 위해 초당내각을 제안한 대통령의 얘기는 “너무 다른 한나라당으로선 노선이 달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절로 되돌아왔다.
9.7 노-박회담을 지켜본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에 의하면 이날 두 사람의 대화는 ‘벽’과 또 다른 ‘벽’의 만남이었다.
회담은 박 대표가 민생경제 위기를 설명하며 “정부가 세금을 내리고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 한나라당의 감세법안대로면 7조원을 줄일 수 있다”며 시작됐다. 노 대통령이 “금년 세수부족액만 4조인데 7조를 더 줄이면 10조가 된다.
한나라당이 깍을 예산의 조목을 알려달라”고 하자 박대표는 “정부의 공공기금에서 21조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맞받았고 노 대통령은 “정부혁신에 공을 들이고 있다. 감사조차 안되던 것을 철저히 감사, 공개하고 있다”고 답했다.
주고받는 공은 분명 ‘국민’을 위함인데 대화는 좀체로 일치되지 않았다. 급기야 노 대통령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인식의 벽이 두터운 것은 국회에서 토론으로 풀어나가면 된다. 제발 맡아서 서로의 이해를 높이면서 하자”고. 하지만 다시 되돌아 온 답변은 “그보다는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대로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은가”였고 이어 나온 대답은 “맡으면 보는 것이 달라지니까 한나라당이 맡아보자는 것”으로 귀결됐다.
‘제발 맡아달라 Vs 권력은 국민이 부여하는 것’
어는 인터넷 포탈은 대통령의 연정 제안을‘외사랑’으로 정의 내렸다. 짝사랑보다 처참하게 상대방이 알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좋아해주지 않는 사랑이라고. 대통령이 권력을 다 내놓고 “맡으면 보는 것이 달라지니 맡아보라”했지만 “권력이란 국민이 부여하는 것. 누구도 권력을 나눈다고 말할수 없다. 대통령은 경제를 살려보고 야당은 야당대로 할 일이 있다”는 냉혹한 야당대표의 답변이 한 인터넷 포탈에겐 ‘외사랑 대연정’으로 비춰진 셈이다.
2시간여에 걸친 회담 내내 야당대표는 민생고를 대통령은 권력을 통째로 내놓는 대연정을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 헌법은 대통령이 누구라도 총리지명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며 “야당이 국정을 위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여야협력을 하자는 것이고, 합당하자는 것이 아니라 내각만 함께 만들어 보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박 대표의 대답은 회담에 앞서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모아졌던 의견대로 “연정의 한 형태가 아니냐. 말씀을 거둬달라”며 “앞으로 연정 얘기는 더 이상 말씀을 하지 말아달라”는 쪽으로 귀결됐다.
“연정? 추락하는 배에 누가 올라타나”
노-박회담 불발이후 8일부터 오는 17일까지 해외순방에 들어간 노 대통령에 대해 야당은 ‘더이상 연정은 없다’는 일축이다. “추락하는 배에 누가 올라타나. 연정은 그런 것이다”, “대통령의 연정발언에 국민들은 신경을 안쓴다. 소용돌이 정치를 그만 접고 국민여론을 귀담아 듣고 말을 줄여야 한다”고….
영남 대통령 후보에 호남 지지기반이라는 이중적 성격 속에서 박빙의 승부를 통해 당선된 노 대통령. 취임초부터 이라크 파병과 김대중 정부시 대북정책에 대한 특검수용으로 지지기반을 잃은데다 이로인해 노사모, 개혁당 그룹의 상당수 마저 민노당으로 이탈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그가 90년대 후반 IMF체제 이후 계속된 경제 불안정 속에서 절박하게 던진 대연정 제안은 과연 끝난 것일까.
연정 제2라운드는 남북관계 탕평
한 역사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당파에 관계없이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려던 정조의 탕평정책은 실패했다. 연정론은 정조의 탕평정책의 새로운 모델이었다. 박근혜 대표에게 통일부 장관을 제안한 것은 바로 그 예다. 참여정부는 한나라당의 연정거부를 이미 알고 있었다. 앞으로의 일은 참여정부가 탕평의 모습을 다른 형태로 유지하며 남북관계의 탕평을 유도할 것이라 본다.”
남북관계의 연정. 그 아이러니컬한 지적이 새삼 궁금하다.
노 대통령 대연정 구성 뭘 담았나
노 대통령의 대연정 구성의 핵심은 한마디로 ‘대통령은 정권을 내놓고, 한나라당은 지역주의를 포기하는 것’에 맞춰졌다. 지난 7월28일 ‘지역구도 등 정치구조 개혁을 위한 제언’이라는 서신을 통해 노대통령은 “대연정이라면 당연히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열린우리당이 참여하는 것이고 다른 야당도 함께 참여하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노 대통령의 서신대로면 “연정은 대통령 권력하의 내각이 아니라 내각제 수준의 권력을 가지는 연정이라야 성립이 가능하고 따라서 이 제안은 두 차례의 권력이양, 첫째는 대통령이 권력을 열린우리당에 이양하고, 둘째는 동시에 열린우리당은 다시 이 권력을 한나라당에 이양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권력이양의 조건은 하지만 지역구도를 제도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선거제도 개편에 모아진다. “굳이 중대선거구제가 아니라도 지역구도를 해소할 수 있다면 합의가 가능할 것”이라 밝힌 노 대통령은 “정치적 합의만 이뤄지면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대연정을 구성하고 그 여정에 대통령의 권력을 이양한 후 선거법은 여야가 힘을 합해 만들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노 대통령의 연정 뒤엔 그래서 여야의 결단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무가 따라붙는다. "이 일을 하자면 우리 모두가 기득권을 포기하는 결단을 해야 한다"며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정권을 내놓고 한나라당은 지역주의라는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