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성폐기물처리장(핵폐기장) 유치 선정 작업에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11월2일 4개 시.군(경북 경주.포항.영덕, 전북 군산)에서 실시되는 방폐장 유치 찬.반 주민투표를 앞두고 지난 10월8일 마감된 주민부재자 신고에 금.관권이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방폐장 유치는 주민투표에서 찬성이 많은 쪽이 유리하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 쪽에서는 방폐장 유치 찬.반 투표의 공정성에 많은 우려를 해 왔다.
그러던 차에 지난 10월10일 녹색연합과 참여연대 등 41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반핵국민행동’은 “방폐장 유치 찬반 주민투표가 돈과 공조직이 판친 사상 유례없는 부정선거로 드러났다”고 폭로했다. 이들은 여러 차례 방폐장 유치 찬반투표가 사전에 금권, 관권 개입으로 공정성을 상실했다고 지적해왔다.
시민단체, “방폐장 유치 발의 이전부터 금·관권 개입”
10월4일부터 8일까지 신고된 유효 투표자 대비 부재자 비율은 경북 포항시 21.9%, 경주시 38.0%, 영덕군 27.4%, 군산 39.3%. 이 같은 부재자 비율은 기존 부재자 투표에 비해 20~30배 높은 수치다.
일반적으로 부재자 투표의 비율은 2~3%를 유지하는 것이 보통이나, 방폐장 주민투표의 경우 평소보다 훨씬 많은 부재자 신고가 이뤄졌다는 것은 불법적 관권 개입이 자행됐다는 점을 방증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군산의 부재자 비율도 2002년 기초단체장 선거시 2.6%, 17대 총선의 2.8%에 불과했다.
특히 방폐장 유치 찬·반 투표에서 읍면동 단위의 부재자 신고 현황을 보면 행정구역에 따라서는 50%를 넘는 곳도 발견(군산 5개, 경주 2개)되고 있으며, 군산시 서수면의 경우 60%를 넘어 사상 최대의 부재자 신고를 기록했다.
‘반핵국민행동’은 읍면동 단위의 부재자신고인수를 보면 포항시 청하면(4.4%), 영덕군 남정면(18.7%) 등 과거 핵 폐기장 반대운동이 거셌던 지역은 그 비중이 낮아 사실상 부재자 신고인 모집이 찬성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 시민단체들은 방폐장 유치가 발의 이전부터 금.관권의 개입으로 이미 공정성을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방폐장 유치 신청지로 11월2일 주민투표를 앞두고 있는 군산, 경주, 영덕, 포항 지자체들은 이미 산업자원부의 주민투표 실시 요구가 있기 이전부터 방폐장 유치 홍보비로 쓰일 국책사업추진비를 지자체 예산에서 책정했고, 국책사업 추진을 위한 공무원 모임을 결성했다.
특히 군산은 방폐장 유치를 위해 민간단체지원 및 군산시 자체추진비로 3억6,500만원과 9억1,400만원의 예산을 편성해 유치찬성운동을 지원했다. 또 군산시청에 국책사업추진단을 구성하고 유치찬성단체인 (사)국책사업추진단을 군산시장 권한대행이 공개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경주의 경우 지난 7월8일 국책사업유치활동비 명목으로 12억 원을 편성해 유치 찬성단체에 지원하고 있다.
부재자 신고 전면 무효 증거자료 있다
여기에 강현욱 전북도지사는 전북도가 방폐장을 유치한 시.군에 300억 원씩의 특별지원비를 지원하고 군산시의 찬성률 높은 지역에 30억 원을 주겠다고 한 바 있다. 이에 주민투표법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선거관리위원회가 철회를 요구한 상태이다.
반핵국민행동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금권과 관권을 동원해 불법적으로 강제한 부재자 신고는 원천 무효”라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폭거이자 주민자치를 짓밟은 방폐장 부정선거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반핵국민행동은 “이번 방폐장 찬반 주민투표 부재자 신고는 실적경쟁에 내몰린 공무원과 통·반장들이 호별방문을 하면서 직접 투표가 가능한 주민들에게 불법으로 부재자 신고를 강권해서 빚어진 결과”라면서 “중앙정부의 비호하에 지자체가 공무원을 내세워 주민투표법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번 방폐장 유치 찬·반 주민투표의 실상”이라고 꼬집었다.
시민단체는 공무원 주민투표 불법 개입과 부재자 신고 전면무효 증거자료집을 배포했다. 증거자료집에 따르면 지침을 통해 할당을 받은 공무원과 통반장들이 10월4일 이전부터 부재자 신고를 진행하고 불법 향응을 제공했으며,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수급자들에게 부재자 신고를 강요했다. 지난 9월30일 오후 4시경 M동사무소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으로부터 박 모씨가 부재자 투표를 권유받아 거부했다. 10월5일 저녁 9시 통장이 집에 찾아와 부재자 투표를 권유해 거부하자, 통장이 “할당된 수가 있다. 도움받은 사람이 도움을 줘야지”라고 했다. 그리고 이틀 후 다시 통장장이 전화를 걸어와 “투표해도 상관없다”면서 “그냥 부재자 투표를 하라”고 했다.
심지어 유권자가 직접 작성한 것이 아니라 대필로 부재자 신고서를 대량으로 작성한 사례까지 있다. 1인 공무원의 동일필체로 41건 작성됐고 통장이 집단적으로 동일필체 부재자 신고서를 작성했다는 증거자료를 제시했다.
특히 군산시는 핵폐기장 유치를 위해 찬성단체에 13억의 자금을 지원해 주고 1,300여명에 달하는 공무원을 이용하는 등 금.관권 개입이 난무했다. 9월 말경에는 타 시도에 사는 공무원을 무더기 위장전입 시킨 과정이 발각되기도 했다. 군산시는 전 공무원과 통반장을 동원해 찬성하는 사람들을 선별, 4일이 되기도 전에 호별 방문해 부재자 투표 접수를 받고 다녔다는 사실도 폭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