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감독: 박흥식 출연: 전도연 / 설경구 (2001년 1월 6일 개봉)
봉수는
아파트 단지내의 조그만 은행에서 일하는 입사 3년차 대리이다.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3년간, 아니 학교 다닐 때까지 합하면 23년 동안 지각
한번 하지 않던 그가 어느 날 무단결근을 감행한다. 이유는 단하나, 갑자기 멈춰 버린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모두들 핸드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는데 자신에겐 이럴 때 전화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걸 발견해서이다. 그러나 봉수는 아직 모른다. 자신이 근무하는 은행과 마주보는
보습학원에, 봉수를 바라보며 조그만 사랑을 키워 가는 스물 일곱의 여자, 원주가 있다는 사실을.
당돌한 여자와 썰렁한 남자가 만났다. 그리고 그 둘이 전도연과 설경구라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이 영화는 두 배우의 조합만으로도 잔뜩
기대를 하게 만든다. 전도연은 두말 할 필요가 없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이다. 그리고 설경구는 어쩌면 '제2의 한석규'가 될지도 모른다는
주위의 상찬이 아깝지 않은 배우이다. ‘해피엔드’에서 파격적인 연기변신을 선보였던 전도연은 멜로라는 몸에 착 달라붙는 옷을 입고 보기에도
자유롭게 생기가 넘친다. ‘박하사탕’의 신들린 연기에서 모처럼 힘을 뺀 설경구도 영화속 자신의 이름처럼 담백하고 어눌한 남자로 성공적인
변신을 하고 있다.
이 영화에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도 없거니와 운명의 장난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일상의 디테일이 섬세하고 밀도 있게
살아 있는 것이 영화의 미덕이다. 그래서 우리 몸에 가까운 멜로라고나 할까. ‘나도 아내가…’는 소중한 것은 멀리에 있지 않다는 소박한
깨달음을 주면서 관객들마저 아련한 행복감에 젖게 만든다.
자카르타
감독: 정초신 출연: 김상중 / 박준규 / 임창정 (12월 30일 개봉)
오광
투자 금융의 지하 맨홀에서 서로의 본명조차 알지 못하는 세 사람의 범죄자가 금고를 털기 위해 침입한다. 그리고 금고 바닥을 파 들어가 돈을
탈취한 후, 미리 준비한 시체를 금고 안에 넣고 가스폭발을 유도하는 게 그들의 계획이다. 한편 오광 투자 금융의 부사장 사현은 사장의 아들이다.
그러나 방탕한 생활로 아버지 몰래 20억의 사채를 끌어다 쓴다. 돈을 갚으라는 폭력단의 협박과 자신을 불신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진 사현은 궁리 끝에 은행직원이며 자신의 애인인 은아에게 회사 금고를 털자고 제안한다.그리고 친형제 사이인 해룡과 두산도 같은 목적을
가지고 금고에 침입해 들어간다.
우선 영화제목인 ‘자카르타’는 완전범죄를 호칭하는 국제 범죄사회의 은어라고 한다. 세 팀의 목표는 단 하나. 누가 먼저 완전범죄를 벌이며
금고의 돈을 차지하느냐이다. 그리고 영화는 금고에 이르는 중간 중간에 폭소지뢰탄을 깔아놓고 여차하면 터뜨리겠다고 잔뜩 협박하고 있는 것
같다. 일단 7명이나 되는 주연급 배우들의 면면이 흥미롭다. 그리고 ‘자카르타’를 위해 2000년 마지막 승부를 선언한 배우들은 특별한
열정을 가지고 촬영장을 후끈 달궜다는 전언이다. 그런 자부심만큼 영화가 관객들의 발길을 붙들지는 두고 볼 일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12월 30일 개봉)
거대
산업 문명이 붕괴하고 천년의 세월이 지난 후, 지구는 황폐해진 대지와 썩은 바다로 뒤덮여 있다. 설상가상으로 부해라고 불리는 유독한 독기를
내뿜는 균류의 숲이 확장되면서 제2의 인류종말을 예고하게 된다.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더불어 자연을 지배하려 들지 않고 자연과 교감하며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나우시카와 마을 사람들은 퍼져가는 부해의 숲에 위협을 느끼면서도 나름대로의 생활을 영위해 나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악명 높은 군사국인 ‘토르메키아’의 대형 비행선이 거대한 곤충들에게 습격을 당한 채 바람계곡에 추락하게 되고, 불타버린 비행선에서
괴상하게 생긴 붉은 색의 거대한 알을 발견하게 된다.
미래의 디스토피아가 잔뜩 깔려있는 이 영화는 1984년에 만들어진 걸작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그 동안 몇 편의 일본 애니메이션이 개봉과
함께 고배의 쓴잔을 마셔야 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를 수 있다. 이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애니메이션을 거부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감독이 만드는 애니메이션이 다른 애니메이션과 가장 다른 것은 자연에 대한 깊은 관찰과 연구가 영상에 베어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배경이 현실에 버금갈 만큼 리얼하게 표현되어 있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강인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풍성한 캐릭터를 창출하고
있으며 공동체사회를 통하며 대안적 이상향을 보여준다. 그 동안 말랑말랑한 디즈니만화를 보면서 체증에 시달렸던 관객들에게 모처럼 아주 쿨한
애니메이션을 만날 기회가 될 것이다.
십이야
감독: 임애화 출연: 장백지 / 진혁신 (12월 30일 개봉)
지니는
성탄파티를 하던 중 신점을 보는 친구에게서 불행한 점괘를 받는다. 지니와 그녀의 애인 조니 중 한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고 둘은 결국
헤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때마침 다른 친구에게서 조니가 어떤 여자와 함께 있는 걸 봤다는 얘기를 듣는다. 파티가 끝난 후 우울한 심정으로
혼자 택시에 오르는 지니를 위해, 친구는 자신의 남자 친구 알란에게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라고 한다. 그리고 지니는 알란을 보자마자 묘한
흥분에 휩싸이게 된다.
요즘 홍콩영화는 확실히 멜로가 더 볼만 한다. 작품성에 있어서 후한 점수를 주기는 힘들어도 ‘그’와 ‘그녀’의 연애담은 항상 관객들을
유혹하기 좋은 소재이다. 그리고 요새 홍콩멜로는 영악하게도 뻔한 이야기를 감각적인 영상으로 만회하고 있다. 이 영화에는 작년 이맘때 개봉되어
많은 관객들의 손수건을 적셨던 ‘성원’의 장백지가 여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녀가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영화에 혹하는 관객이 있을 법도
하다. 그 외에도 장백지의 상대역을 맡은 가수 출신의 배우 진혁신을 비롯해서 현재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미남 배우 사정봉이 실연당한
남자 역할로 출연하여 영화의 재미를 더해준다.
김영창 기자 yckim@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