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는 서민생활과 직결된 품목 중 최근 가격이 인상되었거나 인상이 예상되는 품목들에 대하여 지난 1월 10일부터 담합 등 불공정행위 전면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품목은 음식료, 식자재, 주방용품 등 주요 생필품이다. 구체적으로 밀가루, 두유·컵커피 등 음료, 치즈, 김치, 단무지 등 반찬류 등이 포함됐다. 지난 1월 7일 대대적인 혁신인사와 ‘가격불안품목 감시·대응 T/F’구성 등 조직정비 후 신속하게 조사반을 편성하여 현장에 투입한 첫 조사이다.
설 앞두고 대대적 조사착수, 물가안정 이룰까
최근 물가불안이 가장 시급한 경제현안으로 대두되고 있어 물가안정대책이 정부적 차원에서 시행될 예정이다. 공정위는 시장개선기능을 이용하기 위해 시장가격 감시에 주력하겠다는 발표를 한 것. 단순한 1회성 조사가 아닌 연중 상시감시의 신호탄이다.
공정위 한철수 사무처장은 “공정위 본연의 업무인 경쟁촉진업무는 가격문제와 직결된다. 경쟁촉진효과는 크게 가격하락, 품질향상, 서비스 개선 3가지로 나타나는데 경쟁촉진의 결과가 가격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국민생활 밀접품목의 집중 감시에 주력할 계획”이라며 대대적인 조사착수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했다.
특히 최근과 같은 물가불안시기에는 가격의 동조적 인상이나 편승인상과정에서 사업자간 가격담합이 이루어지지 쉽기 때문에 이를 감시하여 시정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
내달 설 이전까지 1차 조사를 완료하겠다고 밝힌 공정위 측은 국무회의를 거쳐 정부가 설 성수품과 주요 개인서비스 요금 등 22개 중점 관리품목을 정한 만큼 이들 품목에 대한 주요 조사를 단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조사에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는 품목은 무와 배추, 마늘과 사과, 쇠고기와 돼지고기 등 농수축산물과 찜질방료, 목욕료, 이.미용료, 외식 삼겹살 등이다.
경제논리 엎는 정책? 실용성 있는 조사될까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처럼 대대적인 가격 및 물가 조사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공정위가 ‘물가와의 전쟁’을 수행하면 정치적인 효과는 얻을지 모르나, 물가 자체를 잡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 일부 품목의 가격을 일시적으로 인상하지 못하도록 하는 한시적인 결과는 얻을 수 있지만 가격을 더 왜곡시켜 장기적으로는 물가안정을 더 어렵게 할 여지가 다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실시되었던 ‘물가안정법’은 정부가 물가를 직접 규제하기 위해 유용한 법이었다. 이와 같은 인위적 물가조절은 살인적인 물가에 시달리는 국민들에게 당장 솔깃할 수 있는 제안이었지만 장기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상품시장에 더 큰 물가상승을 부르는 결과를 나았다. 제품가격 상승요인이 있음에도 인위적으로 억누르면 기업들은 제품 중량, 함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게 된다. 적자를 보면서 물건을 계속해서 팔 수 있는 기업은 없는 것이다. 이에 결국 시장경쟁 촉진을 통한 간접적 방식을 택하기 위해 공정위가 만들어 진 바 있다. 그러나 현 정권이 올 초 물가안정을 주력정책으로 꼽자 공정위의 본기능을 상실한 채, 정치적 목적만 가지고 위원회를 ‘물가단속반’으로 전락시킨 것이 아니냐는 의혹마저 사고있는 것.
이에 대해 바른사회시민회의 측은 “공정위가 해야 하는 일은 공정거래법 1조에 규정된 것처럼 부당한 공동행위 및 불공정거래행위를 시정하여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다. 공정위가 본연의 일을 수행하면 인위적으로 오른 가격은 떨어진다”고 전하며 “물가를 안정시키라는 역할은 공정거래법 어디에도 규정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공정위는 물가를 단속할 근거도 없다. 더욱이 지금의 물가상승은 매점매석이나 카르텔 등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이상기온으로 인한 농산물 수확과 어획량 감소, 유가 상승, 저금리 기조, 고환율 등으로 인한 외부적, 정책적 변수들이 결합되어 나타난 결과”라고 주장하며 이번 공정위의 대대적 조사의 실용성에 의문을 표했다. 시장의 정상적인 작동을 유도해야할 공정위가 물가관리라는 명목으로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또한 허 선 전 공정위 사무처장은 지난 10일 개인 페이스북을 통해 ‘공정위가 물가를 잡지 못하고 잡아서도 안 되는 이유’라는 글을 올려 공정위의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가격의 인위적, 직접적 억제는 가격의 왜곡이며 이는 시장 메커니즘에 의한 자원의 최적 배분을 방해하는 것”이라며 “억제된 가격은 큰 비용을 치르고 언젠가는 다시 솟아오르게 돼 있다”는 것이다. 이어 “공정위는 직접적으로 물가에 관련되는 정책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며 “기업에 가격을 내리라고 지시할 법적 권한도 없다”고 비판했다. 가격거품 현상과 원인을 분석해 이를 통해 사회적 공론화를 추진하겠다는 공정위에 대해 “이는 기업에 대한 명백한 공갈이자 협박이고 민간사찰”이라고 했다. 그는 “공정위의 말대로 이런 ‘공론화’ 정책이 먹히려면 최소한 기업 쪽에서는 공정위의 암묵적 압력을 듣지 않으면 공정위가 다른 무기로 공격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전제되어야 한다”며 “이는 그 자체로도 정부의 옳은 작용이 아닐뿐더러 공정거래법이 시장경제의 파수꾼에게 부여한 성스러운 제재수단을 공갈배의 주먹으로 타락시킨 것과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이와 같은 ‘물가당국’으로의 공정위 변모에 대한 비판들에 대해 김동수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조사는 과거 70~80년대 물가단속과 같은 가격의 직접 통제나 관리가 아니라 담합 등을 통한 불법 인상을 방지하고 경쟁 촉진을 통해 가격안정에 기여하려는 것”이라며 “경쟁촉진 효과가 가격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국민생활 밀접품목의 집중 감시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