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국제남성과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 중국 대만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4개국 중 한국의 발기부전 유병률은 나머지 3개국가 보다 2배 높았지만, 치료받는 비율은 절반수준이었다. 최근 대한남성과학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발기부전 환자 중 스스로 환자라 인정한 경우는 13.4%에 불과했으며, 치료를 받는 사람은 이중 5%도 되지 않았다.
그 많은 발기부전 환자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얼마나 많은 남성질환자들이 근거 없는 민간요법 등에 매달리며 속앓이를 하고 있을까? 이 같은 문제적 상황을 개선하고 그들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기 위해 비뇨기과 의사들이 연극 무대에 섰다.
학회와 연극의 행복한 만남
대학로 상명아트홀에서 16일부터 5일간 공연하는 ‘배꼽 아래, 이상無!’는 캠페인과 의학강의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연극이다. 대한남성과학회가 주관, 대한비뇨기과학회가 주최하며 9개의 제약회사가 공식 후원하는 등 의학계 관계자들이 총출동하고, 정통 연극인들이 팔 걷어 부치고 극으로 엮었다.
‘인당수 사랑가’의 박새봄이 극작을, ‘우루왕’ ‘마지막 바다’의 최성신이 연출을 맡았고, ‘지하철 1호선’ ‘의형제’의 연극과 영화 ‘하류인생’ ‘공공의적2’로도 얼굴을 알린 남문철, ‘흉가에 볕들어라’ ‘라이어’의 백지원, ‘즐거운 인생’의 김상천, ‘스탬프’ ‘청산에 나빌레라’의 조주현, ‘그림자의 눈물’의 최정화,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의 장정애가 출연해 유쾌한 시트콤 형식으로 연극을 풀어나간다.
이번 연극은 작년 공연한 ‘다시 서는 남자 이야기’에 이은, 남성학회와 공연기획사 파임커뮤니케이션즈의 남성건강 캠페인 2탄 격에 해당한다. 중년남성의 발기부전에 초점이 맞춰졌던 작년에 비해 이번에는 대상 질환과 인물이 더 넓어졌다. 한지붕 아래 사는 신혼 중년 노년의 세 부부가 겪는 다양한 남성질환이 등장한다.
다정다감한 성격의 남편과 순진한 아내인 신혼부부는 첫날밤부터 조루로 고생한다. 매일밤 초시계로 재보고 별의별 노력을 다하지만 역경은 그들끼리의 이불속 대담으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소녀 같은 아줌마와 소심한 허풍쟁이 아저씨인 중년부부에게는 권태기가 찾아온다. 발기부전으로 남편은 잠자리를 피하기만 하고 의심스럽기만 한 아내의 속은 답답하다. 마지막으로 오지랖이 넓어 동네일에 사사건건 관여하는 할아버지와 터프한 동네할머니인 노년부부. 부부금실은 좋지만 같이 등산가기 조차 힘든 남자만의 고통으로 끙끙 앓는다. 이 세 부부를 중심으로 연극은 무대라는 공개적 장소와 극이라는 재현적 구조를 통해 생활 속에 흔한 ‘이불 속 고민’을 시원하게 나누고 의학정보도 재미있게 전달한다.
“연극 본 환자들 태도 바뀌었다”
남성질환에 대한 뿌리 깊은 저급한 사고 때문에 가족해체에까지 이르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상황에서 남성질환은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비뇨기과 전문의들이 공연에 출연한 것은 이 같은 사태를 방관만 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엿보인다. ‘배꼽아래, 이상無!’는 전북대학 박종관 교수, 카톨릭의대 김세웅 교수, 인제대학 민권식 교수, 충남대학 김흥식 교수, 부산대학 박현준 교수 등 5일간 5명의 비뇨기과 전문의 돌아가면서 출연한다. 이들은 연극 제작에도 적극 참여해 전문의들의 진료경험과 자료들이 대본에 깊이 반영되기도 했다.
작년 ‘다시 서는 남자 이야기’에서 이미 한차례 무대경험이 있는 전문의들은 이 같은 공연이 남성질환의 의식 개선에 큰 도움이 됐다고 평가한다. 11월16일 첫 공연에 출연하는 전북의대 박종관 교수는 “작년에 연극을 보고 온 환자들의 경우에는 좀 더 당당하게 자신의 증상을 털어놓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러한 캠페인이 지속돼 좀 더 많은 서람들이 남성질환의 예방을 위한 생활습관과 치료방법, 치료 후 건강한 생활을 위해 부부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메시지를 얻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며, “의사와 환자의 거리를 더욱 좁히고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바로 이와 같은 연극이어야 하며 다른 영역에서도 연극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11월18일에 출연하는 인제대 부산백병원의 민권식 교수 또한 “작년에 처음 이 공연을 출연하게 됐을 때는 연극 속에서 관객에게 어떻게 얘기를 전달할지 많은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차츰 해나가면서 자신감도 들고, 배우들과 함께하는 재미도 컸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나 또한 환자들의 입장에서 좀 더 고민하게 됐고, 공연을 본 환자들이 의사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는 것을 보면서 이번에도 출연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좀 더 친숙한 모습으로 다가가고 싶다”고 말했다.
지속적 캠페인으로 이어갈 것
남성질환에 대한 연극은 일회성 기획이 아닌 지속적 캠페인으로 이어나갈 계획이다. 이번 연극을 주관한 대한남성과학회 김제종 회장은 “지난해 처음 ‘다시 서는 남자이야기’를 올렸을 때 관객들의 호응이 무척 높았다. 연극을 즐기면서 정보를 얻어갈 수 있도록 한 것이 효과적이었고, 환자들과도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됐다”며, 이 같은 성과가 ‘배꼽아래, 이상 無!’로 이어졌음을 밝혔다.
작년의 경우 8개 지역의 투어를 통해 약 5,000명의 관객을 만났는데 이 같은 뜨거운 성원이 연작 캠페인 컨셉으로 연극을 제작하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학회와 공연제작사가 연극기획단계에서부터 함께 공연물을 제작하는 경우도 드문 일이지만, 이렇게 연이어 같은 캠페인을 진행하고 새로운 공연물을 제작하는 것은 매우 드문 사례다. 이것은 남성의학계에도 획기적인 대안이지만, 연극계에도 ‘기능성연극’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실험하고 연극의 다양한 효용성을 모색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
김 회장은 “비뇨기관련 질환들은 중년 이상의 남성들이 찾는다는 통념을 깨고 이번에는 예비부부와 젊은 부부들의 사례도 포함시켰다”고 이번 공연에 대한 기대를 드러내며 “이 공연이 많은 부부들이 적극적으로 남성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삶의 질을 좀 더 높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