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개혁 마지막 승부수, ‘금융지주회사’
너? 부실은행, 나? 부실정부, “우리 하나 됐어요”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병을 위한 실무작업에 한창이다. 정부는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우량은행간 합병, 그리고 부실은행들을 |
정부가 금융지주회사 출범을 앞두고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11일 정부주도의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위한 설립준비사무국을 예금보험공사(예보)
안에 설치하고 사무국장에 양원근 예보 금융분석부장을 선임한 것이다. 설립사무국은 지주회사 설립 이전에 전분야에 걸쳐 금융지주회사의 밑그림을
짜게 된다. 양 사무국장은 “금융지주회사에는 일단 한빛, 평화, 경남, 광주 은행과 하나로종금이 편입될 것”이라며 보험사 편입 여부는 아직
유보중이라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정부가 한빛은행이 금융지주회사에 편입하는 조건으로 1조 1000억원 규모의 공적자금을 추가 지원해주기로 은행측과 이면합의한
사실이 불거져 나왔다. 금융감독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금감위는 지난해 12월 16일 회의를 열어 당초 생존전략을 추진하던 한빛은행에 금융지주회사
편입조건으로 이같은 액수의 공적자금을 추가 지원해주기로 서면 결의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정부가 금융지주회사 설립에 얼마나 애타있는지알 수
있는 증거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금융개혁의 완성’이라고 자부하는 금융지주회사는 과연 정부의 바람대로 금융개혁의 쾌속행진을 보장해줄 수 있을까?
정부, 금융지주회사에 장미빛 기대 품고 있어
금융지주회사란 ‘은행, 보험, 증권회사를 자회사로 두고 금융기관의 주식을 소유함으로써 경영권을 행사하는 회사’를 말한다. 이번에 금융지주회사가
설립되면 정부가 대주주로 참여하게 된다. 그래서 정부의 말대로라면 총자산 104조원에 세계 84위의 대형은행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2단계 금융구조조정을 추진함에 있어 과거의 부실을 털어냄으로써 금융산업의 기능을 회복하고, 치열해지는 국제금융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제도적 기반마련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해 왔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금융지주회사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고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금융지주회사는 합병과는 또다른 차이점를 가진다. 합병이란 두 은행 중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나 금융지주회사는 두 금융기관이 모두 존재하게
된다. 다만 독립적으로 경영을 하지만 전략결정, 자원배분 등은 상당한 연관성을 가지게 된다. 금융지주회사의 경우도 몇개의 은행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와 보험과 증권 등 다른 업종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 등 다양한 형태가 있을 수 있다. 이번에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것은 전자에
속한다. 일단 정부는 금융지주회사의 긍정적인 측면을 홍보하기에 바쁘다.
정부는 “금융지주회사의 도입은 기업조직의 형태를 선택할수 있는 폭이 넓어짐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겸업화를 확대하여 수익성을
높이고 소비자의 편리성을 높일수 있고 기업의 부실이 바로 은행으로 전가되지 않으므로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일수 있다는 측면을 거듭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금융지주회사를 도입하면 경영관리를 한곳으로 통합시킴으로써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절감효과도 클 것으로 예상한다며 자신감을 피력한다.
관치금융의 덫에 빠질 수 있어
반면에 금융노조는 금융지주회사를 다소 불안하게 바라본다. 노조에서는 금융기관이 부실에 처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관치금융’에서 찾는다.
따라서 또다른 관치금융으로의 재편을 서두르는 정부의 금융지주회사에 마땅치 않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현재와 같이 부실이 정리되지
못하고 금융시장과 경제의 불안전성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한번에 커다란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낸다. 하지만 정부는
“관치금융이란 정부가 경영에 개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기로 한 정부의 속내를 이해못하는 바 아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부실은행들을 합병시켜 놓았더니 그 은행이 또 부실은행이
되는 악순환을 지켜보면서 뭔가 다른 돌파구를 찾아봐야겠다는 절박감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막대한 공적자금을 탕진한 것에 대한 여론도
좋지 않았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부실은행들을 휘하에 두고 직접 관리하겠다고 발벗고 나선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우리 금융부문에 일차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부실의 치유와 신용경색의 해소” 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정부는 금융지주회사나
대형은행 설립이라는 가시적 성과에 집착해 본질적인 문제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충고한다. 왜냐하면 대형은행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
금융부문이 이렇게 엉망이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금융시장의 문제는 과다한 부실여신과 전문성 부족이다. 또한 정부의 지나친 개입으로 자율경영의 관행이 정착되지 못한 데 문제의 원인이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발벗고 나서 은행들을 통합시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비켜가는 일이다. 그래서 ‘대형화
보다는 민영화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부실은행 뒤에 부실기업 있다
막대한 공적자금이 무색하게 은행이 부실해진 원인을 은행만의 경영부실로 전가시킨다면 곤란하다. 왜냐하면 부실은행 뒤에는 분명 부실기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나라 금융시장구조는 부채 위주로 작동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오히려 금융개혁을 서두르기보다는 은행이 위험을
무릅쓰고 대출을 하지 않아도 될만큼 기업들의 부실을 치유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금융개혁이 우선되면 모든게 해결될
것처럼 조급함을 보이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금융구조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찾고 그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 급선무이다.
엄정한 부실기업 퇴출과 구조조정 속에서 정부는 기업들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나섰다. 하지만 정부가 정경유착이라는 악습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자칫 금융지주회사가 대기업들의 곳간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금융지주회사를 만들더라도 은행 스스로 이루어 나갈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하겠다. 정부가 은행을 죄자우지하겠다는 의도로 금융지주회사를
만드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은행이 부실을 극복하고 정상적인 상태가 됐다고 판단되면 언제라도 독립시켜야 마땅하다. 그리고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 줌으로써 지방은행들의 정체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배려해야겠다.
한편 금융지주회사는 부실은행의 집합체라는 이미지를 어떻게 털어낼지가 중요한 관건이다. 체질개선 없이 단순히 덩치만 불려놓는다고 해서 우량은행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개별 은행들로 존재할 때 유연할 수 있는 대책이 통합된 경영관리 속에서 방향을 잃을 수 있는 문제이다.
이렇게 아무것도 검증된것 없이 출범하는 금융지주회사는 금융개혁의 마지막 심판대에 오르게 되었다. 또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은 파업이란 비싼
댓가를 치르면서 한 집안살림을 서두르고 있다. 다소 급작스러워 보이는 이런 자구책들이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원칙을 지켜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시한에 집착하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현재의 문제들에 접근해줄 것도 아울러 당부한다.
김영창 기자 yckim@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