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플하다”, 영원한 동심 작가 장욱진
10주기 회고전, '해와 달, 나무와 장욱진' 뜨거운 호응
속에 열려
전시명: 해와 달, 나무와 장욱진
전시기간: 2001년 2월 15일까지
(전시기간 중 무휴)
전시장소: 갤러리 현대
문의전화: 02)734-6111~3
“나는 심플하다. 나는 깨끗이 살려고 고집한다. 이 말은 내가 내 일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는 의미이다. 나는 내 일에 충실한 한 스스로
떳떳한 정신생활을 하고 있다고 감히 자부하고 싶다.”
지난 1월5일부터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는 ‘해와 달, 나무와 장욱진’에 고인의 주옥같은 작품을 보기 위한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해와 달, 나무와 장욱진’은 화가로서 장욱진(1918∼90)의 흔적을 반추하는 10주기 회고전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700여점의 유작
가운데 70여점을 시대별로 엄선하여 한자리에 전시하였으며 49년작(독)부터 90년작(밤과 노인)까지 40여년에 걸쳐 그가 생산한 그림들은 고인이
평소 즐겨 쓰던 말 그대로 ‘심플’하기 이를 데 없다.
심플하지만 삶의 위로가 되어준 그림들
장욱진의 그림들은 굳이 그 장르를 분류하자면 ‘동화’나 ‘소박화’로 이름 붙일 수 있다. 처음 그의 작품을 접하면 아직 미술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어린이가 그린 그림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그만큼 해, 달 그리고 나무 같은 것들이 지극히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이 어린아이의 그것과 다른 점은 그림 속에 자기주장과 비판이 담겨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림은 심플하게 그려져 있지만 그 속에는 ‘창조적
긴장’이 들어있다.
우선 ‘자화상’(1951)을 살펴보면 논둑길에 우산을 들고 걸어가는 신사가 그려져 있다. 이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연결시켜야 온전한
감상을 할 수 있다. 다름이 아니라 피난이란 처참한 생활 후 고향에 돌아갔던 화백의 경험이 베어있다. 이것은 갱지에 물감을 가지고 그렸는데
유화기름이 없어서 석유를 섞어서 그렸다는 일화로도 유명한 작품이다. 목가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이 그림은 전생 상태에서 평화를 소망하는 화백의
심경이 담겨 있다. 그래서 전쟁이 치열했던 시기에 사람들에게 꿈을 선사하려고 했다.
전시회의 제목에서도 엿보이 듯 해, 달 그리고 나무는 화백이 즐겨 표현한 그림의 소재이다. 나무는 그림마다 빠지지 않는데 나무에 진실이
있다고 생각한 믿음을 알 수 있다. 나무는 그늘을 만들어서 사람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이며 자신이 왜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불평도 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단할 것도 없는 나무 한 그루는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었는지 반성하게 만든다. 화백은 나무 한 그루를 그리면서도
분수를 알고 결국 흙과 물로 돌아가는 나무의 미덕을 발견한 것이다.
장욱진의 그림에서는 해와 달이 동시에 존재한다. 하지만 해와 달은 같이 있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이런 의미심장한 표현을 택함으로써
표현하고자 한 것은 시간이 없는 상태, 즉 무시영원(無時永遠)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이 짧기에 더욱 오래 살고 싶어한다. 결핍이
욕망을 낳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인간이 가장 원하는 상태일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그의 작품은 그것을 보는 이의 깊은
공감을 불러온다. 이렇듯 그의 작품들은 인간들의 욕망을 꿰뚫으면서 위안을 주고 있다.
직관적인 화백 의 여유로운 세상보기
장욱진은 ‘직관’을 믿는 화가였다. 그림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과감한 생략과 절제를 통해 지극히 최소한의 정보만을 제공한다. 인물들의 이목구비는 제대로 그려져 있지 않고 어떤 그림들은
몇 개의 선과 원으로만 채워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여느 추상화처럼 그 의도를 알아보기 힘들게 하지 않고 그것이 무엇을 나타내고 있는지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면서 나머지 부분을 보는 사람들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그림을 감상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좋은 그림은 보는 사람에게 여유와 상상력을 주어야 한다는 작가의 믿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장욱진은 ‘착(着)하지 말라’고 즐겨 말했다.
붓은 화폭에서 떼기가 어렵다면서 여백과 여유가 중요하다고 일깨웠다.
까치 네 마리가 날아가는 그림이 있는데 그 의도를 물으니 ‘자신이 까치들 보고 그렇게 있으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면서 ‘화가는
화면 위에서 제왕’이므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아량을 가지라고 가르쳤다. 화백은 ‘나이로부터의 자유’와 ‘비교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고자 했다. 그래서 나이로부터 자유로운 그의 그림들은 점점 동심을 닮아가게 되었고 비교로부터의 자유는 그토록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펼치게
하지 않았나 싶다.
김형국 교수가 들려주는 장욱진
장욱진은 그림뿐만 아니라 기이한 행적으로도 유명했다. 오랜 지인이었던 김형국 서울대 교수는 장욱진을 “반가족적인 사람”이었다고 추억하면서
“술 좋아하고 평소에 당신이 미움받을 말만 했다”고 들려준다. 그게 괜한 소리는 아니어서 교수는 “친구가 화가를 하는거야 좋지만 가족 중에
화가를 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말리겠다”고 하면서 농담을 건넨다. 교수는 장욱진을 “친구가 없었으며 개인적인 고독에 파묻혀 살았다”고 회고한다.
그래서 세상물정에 어두웠으며 자유의 대가로 가족이 겪은 고생을 이제서야 웃으며 들려준다. 또 김형국 교수는 “심플한 것은 복잡다단하게 얽힌 삶을
단순화시켜주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이 누그러지고 느긋해질 수 있다. 그게 바로 장욱진 그림의 매력이다”라고 말한다. 감히 장욱진을 ‘천재’라고
부르는 교수의 말이 괜한 상찬은 아닌 것 같아서 그의 작품 곳곳에서 거장의 숨결이 느껴짐은 부인할 수가 없다.
김영창 기자 yckim@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