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빛도 달콤한 향수도 담고 있지는 않지만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움의 때가 묻어나는 전통도자기는 추억속의 과거로 연결한다.
마음과 행동을 영혼속에 담아 흙과 물 그리고 공기와 조화되면서 창조적인 예술품으로 태어나 세상과 연결해주는 도공 김지원씨의 작품이 그러하다.
‘흙으로 도자기를 만들고 도자기로 행복을 찾는다.’는 김지원씨는 도예기술을 노인종합복지관에 정성을 드린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도예수업이 흙을 통한 참다운 삶의 길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다.
도예를 하게 된 계기는 ?
“도자기를 접한 것은 고교시절부터이지만 부친의 영향이 컸다.
진도가 고향인 나는 부친과 함께 목포에 위치한 도자기 생산업체에 자주 들르곤 했다. 지금은 도자기 산업의 대표주자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행남자기가 목포에서 소규모로 시작 할 때이다.
이때 행남자기의 사장이 부친의 친구였던 탓에 도자기에 대한 만남은 쉽게 이루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친이 이곳을 데리고 간 것은 숨겨진 뜻이 있었다.
부친은 평소 자녀들이 예술가로서의 삶을 원했다. 그래서 언니는 화가로, 나는 도예인의 삶을 걸어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했던 것이다.
본격적인 도예공부는 대학시절이다. 직장생활을 겸해 대학을 다녔던 나는 틈틈이 각종 공모전에 출품도 했다.
그러나 직장을 다니면서 도예공부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 대학을 졸업했지만 인생의 진로에 대한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래서 5년 동안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인류문화을 수료했지만 도예에 대한 미련은 떨칠 수가 없어 일본에서도 도자기 공부는 계속됐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1997년 귀국과 함께 서울 구로구에 조그만 도예 공방을 열었지만 IMF를 맞이하면서 공방운영에 차질이 생겼다.
2004년 지금의 공방인 강화군 선원면으로 오기전 까지 지인의 소개로 구로 노인종합복지관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도예수업을 시작했다.
이때는 단순히 공방을 이끌어 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지만 도예수업을 계기로 흙 속에서 삶의 진주를 얻었다. 도예인생의 목표가 정해진 것이다.”
노인종합복지관에서 하는 도예수업은 ?
“복지관의 도예수업은 ‘나의 존재감을 깨닫게 해주었다. 복지관 노인들이 원하는 것을 조금이나마 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공방을 강화로 옮기면서 강화요양원, 보호센터, 노인종합복지관 등에서 도예수업도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우울증과 치매치료에 따른 대체 효과를 얻기 위해 도예와 접목시킨 도예수업에 보람을 느낀다.
치매노인들은 시시각각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곤 한다. 어떤 분은 자신이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분도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도자기를 만드는 수업이 아닌 흙과 친근감을 가질 수 있도록 놀이를 중심으로 시작한다.
흙으로 여러 모양을 만들어 이곳저곳에 붙였다 떼었다 하는 것으로 흥미를 갖도록 유도한다. 그렇게 한 달여 가까이 수업을 하다보면 노인들은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보이곤 한다.
도예수업의 마지막 과정은 자화상을 만드는 수업이다. 노인들이 여러 형태의 자화상을 만들어 보일 때면 어느새 얼굴에는 희망과 즐거움이 가득 차있다. 마치 해맑은 어린이처럼 말이다.”
도예수업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복지관 노인들의 작품은 비록 명품 도자기는 아니지만 그 작품속에는 도예명장도 흉내 낼 수 없는 명품 이야기가 담겨있다.
노인들은 자화상을 만들 때 가끔은 자신만의 창작품을 만들어 보이곤 하는데 그 중 유골함을 만들어 보이던 어느 노인의 작품이 가슴에 와 닿는다.
노인은 유골함을 내게 보이며 ‘내가 죽으면 내가 만든 유골함에 뼈를 갈아서 넣어 두고 싶다’며 죽음에 대한 준비를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도자기로 표현했던 분이 기억에 남는다.”
주된 작품 활동은 ?
“분청작업이 주된 작품 활동이다. ‘나는 도자기를 통해 향수를 느낀다. 다른 도예인들 처럼 청자나 백자 그리고 달 항아리 같은 대단한 명품 도자기를 만들지 않는다. 토속적인 작품을 통해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생활도자기 만을 굽는다.’
그 중에서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 가는 것만을 골라 분청화 시킨다. 예를 들면 아주 작은 고무신부터 큰 고무신, 굴뚝, 도깨비 형상, 음식을 담는 접시나 항아리 등 토속적인 전통 생활 도자기다.”
앞으로 계획된 것이 있다면 ?
“해마다 노인들의 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행복한 실버 도자기 전시회다.’
늦깎이 실버도예학생들의 작품이지만 명품 못지않은 작품이 출품되면서 복지관 노인들이 매년 기다리는 실버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올해로 5년째를 맞이한 전시회는 오는 8월에 개최될 예정이다.
‘청춘이 영원한 것은 아니다.’ 나도 언젠가는 노인종합복지관의 노인들처럼 복지관에 의탁 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노후에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복지관에서 도예수업을 이어가고 싶은 것이 바램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요즘 사찰음식과 그림공부를 시작했다. 음식전문가도 화가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노인들에게 최고의 건강 식단으로 각광받고 있는 사찰음식을 배워 내가 만든 도자기에 그림을 넣고 음식을 담아 대접하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