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墨香)은 지지않는 나의석양(夕陽)”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 초대작가’ 홍형표씨의 ‘사군자 사랑’
도심에서
사군자 화실을 만나는 건 이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일’ 만큼 귀해졌다. ‘매(梅)·난(蘭)·국(菊)·죽(竹)’. 매화와 난초, 국화와
대나무로 대변되는 이 묵향(墨香) 그득한 사군자는 이제 ‘TV 진품명품’에서나 현싯가를 논할 뿐, 현실속에 좀체로 뿌리내리지 못해온게 사실이다.
궤변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군자는 늘 우리곁에 익숙한 단어다. 현대미술의 화려한 장르들만큼 입안에서 쌀·보리 나뉘듯 ‘또글’거리지도
않고, 문외한(門外漢)마저 서당 훈장선생님의 ‘하늘천 따지’ 따라읽듯 낯설지않게 그렇게 사군자는 우리들 가슴속에 자리를 내주기 마련이다.
선봉사군자실의 ‘사군자 파수꾼’
좋은것만 하면서 살수없는게 인생이지만, 오늘처럼 ‘좋은걸 하면서 사는 사람’을 만나는건 유쾌한 일이다.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 ‘선봉사군자실’(T.031)248-2828)의
홍형표(43)씨. 그는 2001년 올해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분 초대작가’란 의미깊은 ‘졸업장’을 받았다. 굳이 홍작가가 초대작가의
의미를 ‘졸업장’으로 가슴에 담는 이유는 자신이 지난 80년이래 이제껏 사군자와 함께했던 긴 여정을 마무리하고 비로소 ‘세상밖으로’ 사군자의
전령이 되어 나간다는 생각에서다.
프로작가로의 가슴벅찬 첫출발을 내딛는 홍형표씨에게선 벌써부터 사군자작가로서의 완숙함이 엿보이는 듯 하다.
“사군자를 좋아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갈 겁니다. 더 이상 사군자가 몇몇 순수서예가만의 전유물일 수 없다고 봅니다. 대중화가 전제되지
못하면 사군자는 언제까지나 답보상태를 면치 못할테지요.”
홍형표씨는 남천 정연교(55·원광대 서예학과 교수)선생의 수제자다. 20여년 사군자와 함께한 시간동안 홍씨는 남천선생으로부터 “서예는
지는 석양처럼 떨어질 때 비로소 아름답다”는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왔다. 20년을 넘게 사군자와 함께했지만 홍씨는 세월이 흐를수록 스승의
말씀이 더욱 새롭게 다가드는 느낌이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지요. 그런데 디자인의 수명이란게 알다시피 너무 순간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전주대 산업미술과를 졸업하고 남천선생을
만나 사군자를 배우게 되었지요. 그리고 동 대학원 미술과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후배들에게 사군자강의도 하면서 꾸준히 국전에 응모한 결과 이제
비로소 초대작가란 이름표를 달고 프로작가의 반열에 들어섰다고나 할까요?”
홍씨는 지난해 4월부터 수원 지금의 선봉화실에 조그마한 사군자 세상을 열었다. 개인 사군자 화실이란 찾아볼 수 없는 척박한 불모지에 대중속으로
파고드는 사군자의 파수꾼이 되고자 화실을 차리고 차분히 개인전도 준비해나갈 생각이다.
물론 자신의 작은 화실에서뿐만 아니라 그의 말대로 사군자를 널리 알리기위한 강의활동도 활발히 진행중이다. 경기도 여성회관과 경기 도립중앙
도서관 서예교실에서 매주 열리는 홍씨의 강의는 인기가 매우높다. 자칫 사회생활에 소극적인 주부들이나 학생들 정도가 사군자를 배우려 한다는
착각을 일으키겠지만 실제 사군자를 배우려는 사고를 지닌 사람들만큼 능동적이고 활발한 사고를 지닌이들이 드물다는게 홍씨의 생각이다. 그렇기에
그의 강의는 결코 전문가들만의 사군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사군자와 함께한 20년, 함께할 20년…
“사군자를 포괄적으로 전시하고 또 대중과 함께 사군자를 집대성한다는게 제가 몸담고 있는 ‘남천사군자회’의 기본방침입니다. 지난 99년
사군자로는 첫 인터넷사이트(www.Namchun.pe.kr)를 개설하면서 이같은 생각을 넓혀나가기 시작했지요.”
스승인 남천선생을 중심으로 60여명의 핵심제자들이 사군자의 대중화를 모토로 지난 99년에 치른 전시회도 성황이었지만 홍형표씨등은 무엇보다
올 11월 다시열 예정인 전시회에 전심전력할 계획이다.
“먹을 쓰면 정신이 맑아지죠. 묵향(墨香)의 매력을 많이 느낍니다. 사군자는 난이 기초이자 또 마지막이라 볼수 있지요. 2~3년 난을
접하다 보면 비로소 사군자의 묘미를 느끼게 된다고나 할까요.”
사군자와 함께한 20년의 얘기도 짧지않지만 앞으로도 긴시간을 사군자와 함께할 것이라는 홍형표씨의 ‘사군자담론’은 도심에서 사라져가는 사군자화실의
묵향그득한 정겨움과 함께 더욱 친근하게 다가선다.
현은미 기자 emhyu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