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의 ‘대보름 태기축제’ 한마당
제15회 ‘태기문화제’에 울려퍼진 회다지 소리, 어러리타령, 쥐불놀이…
우리나라의
세시 풍습에는 물질문명의 도입과 함께 국제화·세계화의 바람에 밀려 잊혀져 가고 있는 것들이 많다.
1년에 12번 있는 보름 가운데 정월에 찾아오는 첫 보름을 정월대보름이라 해서 구분하고 8월의 한가위·7월 백중과 더불어 특별한 명절로
여겼다.
이러한 정월 대보름은 한자어로 상원(上元), 즉 으뜸중의 으뜸이라 해서 달 자체가 풍요의 상징이며, 농경을 기본으로 하는 우리 민족 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문화권에서는 거의 신성시 해 오고 있다. 중국의 경우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면 한나라 이후 정월
대보름을 연중 8대축일의 하나로 삼았으며, 일본은 소정월(小正月)이라 하여 새로운 한해의 시작으로 지키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보면 대보름 또한 한해의 마지막 섣달 그믐날처럼 온 집안에 등불을 켜놓고 밤을 샌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전통 사회에서도 대보름이 실제 새해 첫날이었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정월 대보름을 기념하기 위해 지방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다양한 제의(祭儀)와 점세(占歲) 및 놀이마당이 벌어지고, 농촌에서는 대보름날 자정을 전후해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비는 마을공동제의로써
제사를 지내 오기도 했다.
아름다운 자연이 살아 숨쉬는 곳
강원도 하면 뒤늦은 개발(?)속도로 인하여 천혜의 자연환경이 훼손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대표적 휴양지로 꼽히며 태고의 신비가
살아남은 여행지들이 끊임없이 도시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횡성은 이러한 강원도 내륙의 중심부에 위치함으로써 사통팔달의 편리한 교통망과 함께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두가지 놀라움을 제공한다.
첫 번째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편리한 교통여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웅장한 기상의 치악산과 태기산, 그리고 도심을
흐르면서도 오염되지 않은 섬강은 곳곳에 예술가가 빚어 놓은듯한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 놓았으며, 최근 담수된 횡성다목적댐 주변은 때묻지
않은 풍광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는 이곳의 유구한 역사를 보여주는 문화유적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순박한 시골사람들의 넉넉한 인심과 다양한 특산물, 횡성 고유의 문화를 담은 축제들까지 이곳의 밝은 미래를 쉽게 느끼게 한다. 이러한
횡성의 대표적 축제 가운데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이 지방의 독특한 풍습을 문화제로 승화시킨 곳이 있어 찾아가 보았다.
열다섯번째 열리는 태기문화제는…
태기문화제는 횡성의 향토민속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주민화합과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정월대보름에 횡성군 우천면 정금리 문화마을에서 개최되는
지방문화축제이다.
1984년 횡성회다지소리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다음해에 강원도무형문화재4호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1986년부터
정금민속보존회(회장 이종호)를 조직하여 문화제로써의 행사가 시작되었다.
태기문화제의 첫째날에는 전야제를 시작으로 주민안녕과 한해의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태기제례가 저녁나절 열리고, 두둥실 보름달이 떠오르는 초저녁에는
달집태우기·쥐불놀이·지신밟기 등의 대보름 달맞이 놀이를 통해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생명력에 힘입어, 모든 악귀로부터 개인과 마을의 평화와
풍요를 주민 모두하나되어 빌게 된다. 이어서 둘째날에는 민속관놀이마당에서 윷놀이·고부떡만들기·그네뛰기·투호·연날리기·줄다리기 등의 다양한
민속놀이와 함께 횡성회다지시연과 국악인을 초청한 국악공연등 민속행사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상례(喪禮)에 불리우는 ‘횡성 회다지 소리’
태기문화제의
시발이 된 횡성 회다지 소리는 이 지방에 전해내려오는 민요로써 인간의 출생에서 죽음에까지 이르는 통과의례 중 상례(喪禮)시에 불리워지던
노래이다.
문화의 불모지처럼 여겨지던 강원도 영서권에서 지방무형문화가 전국민속예술대회를 제패했다는 것은 당시로 보아서 대단한 충격이었으며, 침체상태에
있던 지방문화계의 문화예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우리의 대중민속예술은 대개 민요·농악·민속무용·민속극등을 들 수 있으나, 대부분의 민속예술이 공히 다발굴 재현된 상태이므로 그동안 금기시하여
삼갔고, 또 예술적 교감을 소홀히 했던 상제례(喪祭禮) 역시 가정의례의 간소화 시책으로 인하여 그 맥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동기에서
발굴된 것이 상여의 운반중 상두꾼에 의해 불려진 ‘상여소리’, 사례(死禮)의 매장과정에 달구꾼이 부르던 ‘회다지소리’인데 이를 모아서 ‘횡성
회다지 소리’로 칭하게 된 것이다.
이는 십수년 전만 하여도 이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것으로 그야말로 민중과 함께 숨쉬어 온 민족의 얼과 한이 깃든, 그리고 애국충절의
고장 횡성 선열의 넋이 서린 대중 예술이며 민속이라 할 것이다. 이 소리의 특성은 노래와 율동이 함께 ‘늦은 가락’에서 시작하여 점차 ‘잦은
가락’이 있고 율동은 ‘두발차기’와 ‘세발차기’가 있으며, 노랫말은 망자(亡者)의 죽음을 애도하는 구성진 가락에서 시작하여 점차 산역(山役)하는
사람들의 흥을 돋구는 흥겨운 ‘메나리조’의 가락으로 변해간다.
회심곡은 망자의 한을 달래는 한편 상자(喪者)를 위로하는 기능을 하면서 점차 빨라지는 가운데 산역꾼들에게 점차적인 힘과 흥을 돋구는 복합적인
기능을 하고, 특히 잦은 가락이 나오면서 회전식 ‘세발차기’동작으로 움직이는게 이곳만의 특징이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하면서 색다른 여행으로의
설레임이 있는 곳.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애국과 충절이 살아 숨쉬고 새로운 천년을 맞으면서 내일에의 희망과 풍요로움이 함께 하는 청정 환경
속의 횡성…
“창포밭에 금잉어 놀 듯 금실금실 놀아보세 도덕군자 무지 등거 요순우왕문무주공 도덕이 과찬해도 죽엄을 못면해서” 자연의 축복이 가득한
이곳에서 그것과 하나되어 벌리는 태기문화제의 현장을 뒤로 하는 기자의 귀에 아련히 들리는 회다지 소리는, 동트는 강원의 땅에 희망의 언어들이
눈부시게 퍼져나가며 강원영서지역의 생활·문화 중심지로 다시 자리매김하는 이곳 횡성의 옛 전통이 현재와 어우러지는 소리로 들려 왔다.
정금 문화 마을은… 태기문화제가 열리는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정금문화마을은 행정구역으로 호칭할 때는 다소 서먹할지 모르나, 영동고속도로를 여행해 본 사람이면 원주 I/C를 지나면서 ‘새말휴게소’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새말휴게소에서 횡성방향으로 약10분거리에 있는 이 문화 마을은 영동·영서 문화의 복합적 영향하에 독창적 문화권을 형성해 왔으며, 태기산 자락에 16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는 전형적 농촌마을이다. 또한 이곳은 예로부터 교통이 발달하여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만 해도 서울과 강릉을 잇는 경강국도가 관통하면서 번창했던 영동문화의 교류지와 같은 곳이었다. |
김승호 기자 <강원지역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