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호의 세 선장 MK, MH, MJ
왕회장 사후, 소그룹체제로 전환되는 현대그룹의 운명
‘맨주먹의
신화’ 정주영 전 현대명예회장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이로써 한국의 경제성장과 함께한 재벌 창업자들의 무대가 막을 내렸다. 현대그룹의
구심점이었던 왕회장이 사라지게 됨에 따라 정주영 전 회장의 형제들과 아들들이 맡고 있는 계열사간의 분리와 해체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하지만
정 전 회장은 이미 계열사들을 법적으로 분할하여 자식들에게 맡겼고, 현대가의 2세들도 아버지가 짜준 큰 틀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구축해 왔기
때문에, 그룹내 주도권 장악을 위한 내분이나 홍역없이, 소그룹으로 분열하여 각기 독자노선을 걸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인 잃은 현대호의 방향
왕회장으로 통했던 정주영 전 현대명예회장의 타계로 이미 진행중인 현대가의 분가는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장남 정몽구(MK) 회장이 이끄는 자동차 소그룹은 이
미 그룹에서 떨어져 나갔고, 6남 정몽준(MJ) 의원이 고문으로 있는 현대중공업도 계열분리
를 앞두고 있어, 현대그룹은 5남 정몽헌(MH) 회장 체제의 건설, 전자, 상선 등이 주축이 되
어 명맥을 이어갈 전망이다.
자동차. 중공업 소그룹은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으며, 재무구조도 안정을 이루었다. 하지만
현대의 전통을 이어갈 건설, 전자, 상선그룹은 출발부터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안고 있는 듯 불안하기 짝이 없다. 현대의 창업주인 정 전 명예회장의
타계로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된 이들 3개 소그룹은 독자노선을 걸어 가면서, 선의의 경쟁
을 벌여야 하는 파트너이자 경쟁자관계를 이루게 되었다.
MH, 현대의 모체를 살려라!
3개 소그룹 중 MH의 건설, 상선, 전자 소그룹이 가장 어려운 문제를 많이 안고 있다. 정주
영 전 회장의 적통을 이어받은 MH의 소그룹은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하나도 아닌 몇개
씩을 안고 있다. 몽헌 소그룹의 최우선 과제는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현대건설의 정상
화이다. 현대그룹의 모체라는 점과 아버지의 분신이라는 점 때문에 형인 MK와 동생 MJ도
현대건설의 정상화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
현대건설은 채권단으로부터 회사채 신속인수 1조900억원, 차입금 만기연장 1조원, 지급보증
4억달러 등 특혜 시비를 불러킬 정도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유동성 위기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올해 자구계획 이행실적도 미진, 목표 7458억원중 1~2월 두달간 자구실적은 343억원
에 그쳤다.
여기에 현대아산의 자금난은 현대가 공을 들여 추진하고 있는 대북사업의 추진력을 급속히
떨어뜨리고 있다. 북한에 금강산 입산료로 내는 지불금을 일부 밖에 보내지 못해, 금강산 관
광사업이 일대 고비를 맞고 있고, 개성공단 조성 사업도 합의된지 6개월이 지나도록 착공조
차 못하고 있다. 작년 5월에는 십시일반으로 계열사들이 돈을 모아 현대아산의 자금위기를
막았지만, 정 전 명예회장이 타계하고 계열분리가 가속화되는 지금 계열사들의 지원은 예전
같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직 MH의 품에 남아있는 현대전자는 현대그룹이 가지고 있는 가장 뜨러운 감자중에 하나
이다. 국가경제를 흔들어 놓을 만큼 엄청난 파장을 지닌 현대전자문제는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현대전자가 올해 차입금 상환에 필요한 현금의 부족분은 1조 5천억원에
이른다. 자산매각 1조, 해외자본 유치 10억달러 등 2조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했지만 추진 실
적은 거의 없다.
겹겹이 쌓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MH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상당히 좁다. 철저한 구조조
정과 자구계획의 이행, 그리고 전문경영인 체제의 확립만이 그가 소그룹을 살릴 수 있는 길
이다. 특히 현대건설의 임원 42%, 직원 23%를 줄이는 인원감축을 실시하면서 현 위기에 책
임이 있는 가신그룹이 온전하게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한 비난을 면키 어렵다. 현대
의 위기극복을 위해서는 정부의 측면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대북사업에서 현대가 요구하는 카지노, 면세점 허가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다른 대기
업의 참여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 경제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잘 나갑니다. 현대차, 기아차
지난해는 `현대,기아의 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정몽구 회장의 자동차 소그룹은 국 내외에서 두각을 보였다. 내수와 수출이 급증,
창사이래 최대의 이익을 냈다.
특히 미국과 서유럽 시장에서의 약진은 자동차 전문경영인으로서의 MK의 위상을 확고하게 했다는 평가를 낳게 했다. 규모면에서도 현대,기아차는
자산 35조 7천억원으로 분리 후 현 대그룹을 제치고 재계 4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MK 자동차 소그룹의 갈길이 멀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다. 선진국 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지금의 가격 경쟁력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으며, 품질과 디자인 경쟁력을 겸비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 다.
특히 세계 자동차산업이 주요 업체들간의 전략적 제휴와 인수,합병을 통해 재편되고 있는 상황에서 선진국 업체들에 비해 기술력이 약한 현대,기아차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르노와 포드가 국내시장에 진출하여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함에 따라 국내
시장점유율에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핫코일 공급을 둘 러싼 포항제철과의 분쟁, 인천제철과 강원산업의 갑작스런 합병, 현대하이스코의 부실
등 철강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철강 소재의 자체 조달에만 신경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좀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철강사업전략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업하랴 정치하랴 공차랴 바쁘다 바뻐!
MJ의 현대중공업은 한국에서 몇 안되는 세계 1위업체다. 현대중공업 1개 업체만으로 세계
조선시장의 20% 이상을 차지하며, 계열사인 현대미포조선과 위탁경영중인 삼호중공업을 합
치면 30%를 가뿐히 넘어선다. 조선 전문가들은 현대중공업의 아성이 최소한 10년 동안은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수주 1위 현대중공업이 ‘기술의 1위’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가스운반선, 원
유개발선, 대형 여객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가 전체 수주의 30%를 넘지 못하고 ‘조선
기술의 꽃’이라 불리는 호화유람선(크루즈선)은 아직 한척도 수주하지 못했다.
조선 전문가들은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이나 기타 국가들이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며, “고부가가치 선박 중심으로 사업재편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습경영을 놓고
많은 말들이 오고가는 시점에서, 현대가의 빅3로 불리우는 이들이 아버지와 같은 탁월한 경
영능력을 보여줄지, 세습경영의 폐해를 보여줄지…, 지금 선장을 잃은 현대호는 세명의 항해
사에게 키를 맞긴채 표류중인게 사실이다.
고병현 기자 bhgoh@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