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기지개 펴는 녹색 그라운드
2001 프로야구 4월 5일 개막
봄이다.
여기저기서 기지개를 켜는 소리가 들려온다. 학교에선 새학기의 설레임이 있고 캠퍼 스에선 이제 막 성년이 된 새내기들의 풋풋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봄의 기운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있다. 푸릇푸릇한 잔디와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가 느껴지는 운동경기 장이 아닐까?
설레이는 기대감
겨울철이 농구와 배구 등 실내 스포츠의 계절이라면 봄, 여름은 확트인 구장에서 펼쳐지는
실외 스포츠의 계절이다. 답답한 공간을 벗어나 이제 막 새싹을 틔운 푸른 잔디를 바라보면
어느새 움추렸던 몸과 마음에 싱그러운 바람이 느껴지는 듯 하다.
지난 3월 27일, 두산 베어스와 SK 와이번즈의 프로야구 시범경기가 열렸던 잠실 야구구장.
경기장에 들어서자 비로소 열린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해방감이 눈 앞을 시원하게 했다.
시범경기이고 평일 낮 시간대이다 보니 기대만큼 많은 수의 관중은 없었지만, 그래도 1루와
3루 쪽의 내야석엔 삼삼오오 관중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관중석은 대부분 남성들로 채워졌
는데,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많았고 간혹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연인들도 눈에
띄었다. 프로스포츠 최고 인기종목인 프로야구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달라진 모습들
올시즌 프로야구가 단일리그로 치뤄지는 것이 가장 크게 달라진 모습의 하나이다. 부족한
팀수로 양대리그를 펼치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가 나오면서 양대리그로 운영되던 페넌트레이
스는 2년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외국인 선수의 보유 한도도 기존의 2명에서 3명으로 높아졌다. 보유 인원이 늘어남에 따라
출전선수 엔트리도 25명에서 26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외국인 선수의 경기당 출전인원은
2명으로 제한된다.
주말경기에 관한 룰도 바뀌었다. 주말 3연전 중 금요일과 토요일 경기가 우천등으로 인해
취소되었을 경우 종래엔 월요일로 넘어가서 경기를 치른 반면 올시즌부터는 바로 다음날 더
블헤더 경기로 진행된다. 올스타전도 한게임으로 축소되었다. 지난해까지 마산과 제주에서
각각 열렸던 올스타전은 오는 7월 1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한 경기만을 갖는다. 단일 리그
로 진행되는 시즌이니만큼, 팀구성도 동군(두산, 삼성, 롯데, SK)과 서군(현대, 해태, 한화,
LG)으로 나뉜다. 올스타전 이벤트도 풍성하게 마련된다. 올스타전 전야제를 비롯하여 포지
션별로 역대의 최고 스타들이 출전하여 경기를 갖고 관중을 위한 푸짐한 경품이 마련되는
등 프로야구 출범 20주년에 걸맞는 잔치가 될 전망이다.
‘대어’들의 이동
올 시즌 프로야구계에는 상당한 수의 선수 이동이 있었다. 팀전력의 부족분과 새로운 절략
구상의 필요에 따라 이루어지는 ‘트레이드’. 특히 이번 시즌에 새로운 이적팀에서 활동할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거물급 선수들이 많아 눈길을 끈다.
가장 먼저 주목을 받는 선수는 해태 타이거즈에서 LG 트윈스로 이적한 홍현우(29)이다. 해
태에서의 선수생활을 마무리하며 FA(자유계약선수)로 풀려난 홍현우는 LG에서 4년간 무려
18억원이라는 거금을 받는 제의를 수락했다. 이제까지 좌타자 군단 일색으로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드러냈던 LG의 라인업에 홍현우가 어느 정도의 힘을 실어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한편 이제까지 FA신분으로 풀려난 선수들 대부분이 이적 후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
지 못한데 대한 부담감도 작용할 것으로 보여 시즌이 시작되고 나서의 모습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트레이드와 함께 더욱 빛을 발하는 선수도 있다. 롯데에서 삼성으로 이적된 마해영. 프로야
구선수협의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죄(?)로 ‘방출성 트레이드’라는 말까지 나왔지
만 오히려 새 둥지에서 한층 더 성숙한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물론 본격적인 시즌 개막 전
에 시범경기 전적만으로 평가하기엔 이른감이 있지만, 시범경기 시작 후 2주동안 35타수 17
안타, 타율 0.486의 출중한 기량을 선보였다. 삼성의 김응룡 감독으로선 든든한 보루 하나를
얻은 셈이다.
갖가지 잡음으로 한화에서 LG로 이적한 로마이어도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다. 4게임 연
속 홈련등의 좋은 기록으로 코칭스텝의 마음을 안심시켰다.
기량 미달 용병
언제나 그렇듯 각 구단마다에는 갖가지 골치거리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번 시즌의 경우
외국인 용병으로 인한 문제들이 구단 관계자들의 애를 먹이고 있다. 해외전훈과 시범경기를
통해 드러난 용병들의 전력이 기대에 못미치는 일이 발생 하는 것이다. 수입 용병 중 기대
보다 떨어지는 실력을 보이는 선수는 SK의 에레라, 해태의 루이스, 롯데의 칸세코, 삼성의
토레스 등이다. 이들은 국내 야구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것과 부상, 혹은 원래의 실력 미비
로 인해 방출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더욱이 용병 보유한도와 엔트리간에 차이
가 있어 올시즌의 용병 교체는 어느해보다도 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 구성된 선수협의회
작년 한해 프로야구 중단이라는 극단적 상황까지 치달았던 프로야구 선수협의회(이하 선수
협)가 올해는 한층 더 성숙된 모습을 보일 것 같다. 그동안 선수협을 공식적인 대화창구로
인정하지 않던 구단과 KBO가 이제 선수협을 하나의 정식 조직으로 인정하고 대화할 용의
가 있음을 시사한 것은 선수협이 거둔 가장 큰 성과 중의 하나다. 물론 이는 겉으로 드러난
작은 성과의 하나지만 앞으로의 여러 산적한 문제들을 풀어나가는데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선수협 내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 송진우(한화)를 비롯하여 그동안 2기 선수협을 움직였던
현 집행부가 물러나고 이호성(해태)을 중심으로 하는 제3기 선수협이 구성되었다. 새로이 회
장직을 맡은 이호성은 그동안 선수협 문제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어용이 아니냐’는 논
란까지 있었으나 “전임 집행부가 추진해온 사업들을 끝까지 마무리하고 이전 집행부와도
자주 대화를 가져 문제해결에 참고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새로 구성된 3기 선수협의 성
향은 앞으로 더 두고 봐야 할 전망이다.
성년이 된 프로야구
올해로 출범 20년을 맞는 한국 프로야구는 그동안 양적, 질적으로 많은 성장을 보였다. 그러
나 아직까지 경기장 시설관리, 팬들에 대한 서비스 등은 다른 야구 선진국들에 비해 많이
뒤떨어진 형편이다. 20년이라면 사람의 나이로 성년에 해당한다. 외국의 경우 비시즌과 시즌
을 가릴 것 없이 팬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선수와 구단이 이에 협조하려 노력하는 자세를 볼
수 있다. 요즘 들어 국내 스포츠는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릴 것 없이 썰렁한 경기장 분위기
에 갈수록 경기 자체가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 팬이 없는 스포츠는 존재의 의미를 잃어 버
린다. 더구나 프로 스포츠라면 말할 것도 없다. 각 구단이 성장하려면 팬의 확보가 필수적이
고 KBO에서도 이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경기장을 찾는 야구팬들 또한 선진 관람의식을 지녀야 한다. 경기장은 쓰레기를 버리러 오
는 곳도 아니고 취중에 추태를 부리러 들리는 곳은 더욱 아니다. 선수와 관중 그리고 구단
과 협회가 서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서 한국 프로야구가 어엿한 성년 대접을 받을 수 있기
를 기대해 본다.
장진원 기자 jwjang@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