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과자 파동 이후 자녀를 위한 웰빙 먹거리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성인병과 아토피 피부염 등 먹거리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들로 고생하는 아동들이 늘어나면서 가공식품에 대한 대안 찾기에 대한 고민은 세계적인 문제가 됐다. 한국의 실태 또한 그 심각성이 점점 더해지는 현실에서 국내 가공식품에도 규제가 강화될 전망이다.
설탕 소비랑 20년 사이 2배 증가
서구식 식생활로 인한 가장 눈에 띄는 문제는 비만이다. 대한소아과학회의 보고에 의하면 1981년 1.4%에 불과하던 국내 남자 아동 비만율은 2001년에는 17.9%에 이르게 됐다. 이에 따른 성인병 빈도도 높아졌는데, 당뇨병의 경우 1980년대에 비해 10배 이상 증가했다.
아동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근본적 이유는 잘못된 식습관이다. 과자, 탄산음료, 빵, 라면을다수의 아동들이 1일 1회 이상 섭취하고 있었으며, 햄버거와 피자 등도 3일에 한번 꼴로 섭취한다고 답한 어린이가 많았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들에게 특히 나쁜 3대 해로운 음식은 가공식품에 주로 들어있는 당, 트랜스지방, 나트륨이라 할 수 있다. 과자에는 ‘독’이라 할만한 각종 화학물질도 많지만 대체로 이 세 가지는 가공음식의 대표 성분이라 할만하다. 문제는 현대인의 식습관에서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에는 이런 나쁜 성분들이 대거 들어있다는 것이다. 식약청 영양평가팀의 조사에 따르면 특히 설탕 소비량이 최근 20년 사이에 2배 이상 증가하고 어린이 기호식품에서 당 및 트랜스지방 함량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과자 한 봉지만 먹어도 기준치 이상
당은 탄수화물의 일종으로 과잉 섭취할 경우 영양 불균형을 초래해 심혈관 질환과 암, 당뇨병, 비만 등을 야기할 수 있다. 만병의 근원인 비만도 당 섭취의 제한으로 개선되거나 예방할 수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WHO의 만성질환을 위한 1일 당 섭취 목표량은 총열량의 10%미만으로 섭취할 것을 권고(2000kcal 기준시 200kcal, 약 50g에 해당)하고 있지만 많은 현대인들이 과다 섭취하고 있다.
나트륨은 한국인들이 과다 섭취하는 나쁜 음식 중 1순위다. 시중에 파는 과자들은 고염분이 많은데 이런 것들은 한 봉지만 먹어도 기준치 이상이 된다. 염분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비만은 물론, 고혈압과 심장마비 등의 위험에 노출되게 된다.
성미경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나트륨 섭취량은 뇌혈관 및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과 상관관계가 있으며 과도한 양의 나트륨 섭취는 위암, 위궤양 및 골다공증의 발생과도 연관성이 있다는 연구보고가 여러 차례 나왔다”며 “최근 어린이 뇌졸중 발생 사례가 늘고 있는데 특히 비만아동이 소금을 과다 섭취해 혈압이 상승할 경우 혈관질환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트랜스 지방은 치킨, 햄버거, 피자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가공식품에 유독 많이 들어있는 나쁜 지방이다. 트랜스 지방은 자연계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지방인데 20세기에 들어오면서부터 식용유의 공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발생됐다. 트랜스지방은 좋은 콜레스테롤(HDL)을 떨어뜨리고, 나쁜 콜레스테롤(LDL)을 상승시키며 혈관 산화를 촉진시켜 동맥경화를 일으킨다. 문제는 맛이 좋고 중독성도 있어서 끊기 힘들다는 점이다. 특히 아동기 식습관은 성인이 돼서도 바꾸기 힘든데 트랜스 지방처럼 중독성 있는 음식은 더욱 그렇다.
미국 10여개 주 탄산음료 판매 제한이 같은 불량 식품들의 폐해가 늘어나자 1990년대 들어 시작된 인류의 음식에 대한 각성과 대안 찾기는 최근 세계적으로 더욱 확장되는 추세다. 1992년 WHO와 FAO 공동으로 주최한 세계영양총회에서는 세계영양선언을 채택하며, 전 인류의 영양상태개선을 위해 국가별로 영양행동계획을 추진했다. 2004년 세계보건기구는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각국 정부가 비만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효율적이고 통합된 농업 및 보건정책을 수립하여 국민을 교육할 것을 권고한 것이다.
비만과의 전쟁을 가장 절박하게 진행시키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3명 중 2명이 비만인 최대 비만국이다. 최근 비만은 전체 미국인 건강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해 레스토랑 및 패스트푸드에 대한 영양표시의무화 법안 상정하고 10여개 주에서 탄산음료와 간식류의 판매를 제한했다. 보건부(HHS), 식품의약품국(FDA),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립보건원(NIH) 등 관련 정부기관들이 10여년 전부터 아동 비만에 대한 공동 대처 중이기도 하다.
미국의 음식 문화는 세계 최악이지만 정부의 정책은 한국보다 훨씬 앞섰다. 1980년대부터 정부차원에서 나트륨 과잉섭취에 대한 교육 홍보 및 식품업체의 소금 사용 감소 유도 정책 추진했으며 캐나다, 호주 등과 함께 ‘당’이 의무표시항목으로 전 가공식품에 그 함량을 표시하도록 돼 있다.
캐나다 또한 탄산음료수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며 인도도 탄산음료 캔에 ‘어린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는 경고문 삽입 규정 신설했다. 프랑스는 어린이 비만 조장 TV광고에 대한 자율 규제 단행했다. 영국 스위스 등은 비만 인구의 급증을 억제하기 위한 대책으로 ‘비만세’ 도입을 추진 중이다. 영국은 최근 국가적차원에서 나트륨 관리 정책을 가장 활발히 추진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2008년까지 소금 섭취 목표량 6g 달성을 위해 가공식품의 식품군별 소금 목표량을 설정하고 식품산업체의 자율적 저감화 정책을 진행 중이다.
선진국에서는 트랜스 지방에 대한 규제도 몇 년 전부터 시작했다. WHO는 하루 섭취열량 중 트랜스지방에서 기인되는 열량이 1%를 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는데 덴마크는 2004년 가공식품에 함유된 지방 중 트랜스 지방 함량이 2%이상인 경우 유통판매 금지하는 강력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캐나다나 미국은 영양표시항목에 트랜스지방 함량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국내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식약청은 ‘어린이 먹거리 건강 안전 위원회’를 구성해 금년 말까지 안전한 어린이 먹거리를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과제를 발굴해 중점과제로 향후 5년간 추진할 계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이렇다할 규제가 없거나 미약한 수준이다. 법적 바탕이 마련되기까지는 여전히 아이들의 건강은 엄마들의 치열한 관리가 필요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