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울고 웃었다. 헌재는 1개 신문사가 시장 점유율 30% 이상, 상위 3개사 60% 이상일 때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한 신문법 17조와, 이 규정에 해당하는 신문사들에 대해 신문발전 기금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한 동법 34조 2항에 대해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발행부수가 많은 신문사업자를 차별하는 것이므로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업계 매출 1∼3위를 다투는 이들 3대 신문들도 신문발전 기금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사실, 시장지배적 사업자 규정의 경우 그 기준을 발행부수로 할 것인지 매출액이나 유가 판매부수를 할 것인지 등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었다. 헌재의 결정은 발행부수만으로 점유율을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이야기다.
또, 헌재는 신문법의 ‘신문사 복수소유 금지’와 ‘일간신문사 복수소유금지’에 대해서는 각각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려 눈길을 끌었다. 현실적으로는 조선일보는 스포츠조선 지분을, 중앙일보는 일간스포츠 지분을 소유하는 등 신문사의 복수소유가 많은 상황에서 헌재는 “개선입법이 있을 때까지 계속 적용”을 선고한 것이다.
그러나 헌재는 신문법과 언론중재법 등 언론관련법에 대해 입법 취지와 목적 등이 사실상 합헌이라는 점은 분명히 했다. 시장지배적사업자 관련 조항에 대해서만 위헌 결정을, 일간신문끼리의 복수소유 금지 조항에 대해서만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나머지는 대부분 ‘합헌’결정을 내린 것이다.
편집의 자유와 독립, 신문의 사회적 책임, 소유 규제, 자료신고, 신문산업 지원 등의 조항에 대해 조선·동아일보 등의 헌법소원에 대해 대부분 각하하거나 합헌 결정을 내렸다. ‘신문의 방송 겸영 금지’(15조)와 ‘경영정보공개 의무화’(16조)’도 합헌이었다. 그중 편집인, 편집위원회 설치 등 편집의 자유와 독립 조항의 위헌성 여부와 관련해 헌재는 판결문에서 “신문사 밖의 외부세력에 의한 규제·간섭으로부터 편집의 자유와 독립을 보호하는 규정으로 보아야 하므로, 신문사인 청구인들은 이 조항에 대하여 위헌여부를 물은 것은 기본권침해의 자기관련성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열린우리당 “유감” 한나라당, 조·중·동 “정부 언론정책의 패배”
이같은 헌재의 결정이 발표되자 정치권과 언론, 시민단체들의 표정은 두가지로 갈렸다. 패가 갈린 느낌까지 들 정도다. 헌재의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조선, 동아, 중앙 등은 빠르게 ‘위헌’을 강조하는 편집으로 정부에게 비판을 가했다. 특히 중앙일보는 논란의 법을 제정하고 밀어붙인 세력에 대한 책임론까지 제가하고 나섰다.
정치권도 이 사안에 대해 민감하기는 마찬가지. 신문개혁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상당한 공을 들여 추진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헌재의 결정이 나온 직후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상당히 아쉽다”고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경영정보 신고조항, 겸영금지 조항에 대한 합헌은 ‘신문이 언론의 공적 기능을 담당하는 사회적 공공매체’라는 인식은 유효하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 대변인은 “신속하게 법안 개정 작업에 들어가겠지만 언론관계법의 애초 취지는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혀 대책마련에 힘을 주었다.
또, 민주노동당과 언론시민단체 등은 헌재의 결정에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은 “일부 거대 보수언론의 독점적 지위를 합법적으로 보장해준 것이고 민주주의 발전과 언론자유 원칙에 위배되는 판결”이라며 “한마디로 헌재가 헌법정신을 왜곡하는 위헌적 결정 내린 것” 헌재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언론시민단체들은 한발 더 나아가 “헌재가 신문시장의 현실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차가운 반응.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인권센터 등 언론·시민단체는 “시장지배적사업자에 대한 규정을 좀 더 강화해 개정 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웃었다.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은 “위헌결정은 환영하지만 언론 경영신고 의무화 합헌 결정에 대해서는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열린우리당과 정반대의 논평을 내 눈길을끌었다. 이 대변인은 “신문법, 언론중재법의 위헌판결은 사필귀정”이라며 “비판 언론의 승리이고, 코드 언론 정책의 패배”라고 주장했다.
조·중·동, 최악 신문법은 피했다.
그렇다면 헌재의 결정은 누구의 승리로 봐야하는 것일까? 일단 각 단체의 표정을 보면 누구도 완승을 거두진 못했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메이저신문사들의 표정이 밝은 것만은 사실이다.
최악의 신문법만은 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재는 메이저신문사에 신문발전기금을 지원하는 조항만 위헌으로, 신문사 복수소유 금지 조항은 “개선하돼 그때까지 유지”라는 결정을 내렸다. 열린우리당 정청래 의원도 이와 관련해 “헌재의 이번 결정은 위헌을 제기했던 이들이 패배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일부 조항이 위헌결정이나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지만 (개정된 언론관계법은) 점수로 매기면 85점은 받은 것”이라고 여유있는 반응을 보인다. 실제로 헌재의 이날 판결 가운데 가장 핵심은 언론사 경영자료 신고 의무 조항이다. 이 조항이 합헌으로 결정됨에 따라 신문사들은 올해부터 경영자료를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불성실하게 신고할 경우 직권조사가 가능하게 돼 언론사로서는 세무조사에 버금가는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이럴 경우 베일에 가려져 있던 메이저 언론사의 전체 발생부수와 유가부수, 구독료 수입 등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지금까지는 해당 언론사가 공개하는 발행부수만이 알려져 있었고 이 때문에 신문 광고료에 거품이 끼어 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신문·방송 겸영 금지 조항도 ‘메이저 신문사’에 타격을 미칠 전망이다. 이들 메이저 신문사들은 변화하는 언론환경에 맞춰 방송 진출을 꾸준히 모색해 왔지만 이번 판결로 방송 진출을 통해 활로를 찾으려던 계획을 상당기간 유보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다만 ‘일간’신문 지배주주의 신문 복수소유 규제’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과 ‘시장지배적 사업자’ 규정에 대한 위헌 결정은 적지않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메이저신문사의 복수소유 규제가 풀릴 경우, 이들이 지방지 등을 대거 사들여 점유율을 얼마든지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입법을 준비해야하는 열린우리당에게 숙제가 남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