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 따라 걸어라”
마이스터 플로리스트 방식 씨
플로리스트는 아직까지도
낯선 이름이다. 꽃이라는 자연에 사람의 마음을 담아주는 직업. 그 직업의 우듬지에 있는 방식 씨(57)의 갈라진 손은 농부의 그것처럼 우직하다.
그가 오랜 세월을 두고 몸으로 터득한 것은 손을 이용하는 직업은 부지런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꽃을 다듬는 그의 갈라진 손
틈에 낀 것은 더러운 흙때가 아니라 그가 항상 강조하는 자연이고 우주며 세월의 더께다.
그의 명함에는 ‘방식꽃예술원’이라는 상호가 달랑 하나 들어 있을 뿐이다. ‘전국 꽃 장식대회 심사위원장’, ‘MBC 전속 무대 담당’,
‘올림픽 꽃 디자이너’라고 자신을 수식하는 직함을 그는 꺼린다.
“회원들을 가르치는 선생 하나면 족하죠.”
한국전쟁 때 피난을 간 목포 이모 집에서 본 투명한 보랏빛의 옥잠화 한 송이가 꽃의 길을 가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그 꽃을 뿌리
채 뽑아서 마당에 심었다. 할머니가 ‘사내자식이 꽃을 좋아하면 자식이 없다’며 나무라는 것은 들리지도 않았다.
그래서인가 방식 씨는 아직 혼자다. 독일인 의사와 결혼해버린 첫사랑을 찾아 독일 광부를 지원한 1970년. 광부 생활을 한지 15개월이
지났을 때, 그는 독일 본 원예 조경 연합 회장인 칼 라이를 만났다. 마구간에서 지내며 풀 뽑는 일에서부터 시작해 가지치기, 뿌리자르기에 녹초가
된 몸을 쉬게 할 틈도 없이 밤늦게 라틴어 학명 외우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원칙만을 고집하고 깐깐하기로 소문난 독일인에게 인정을 받아
꽃의 거장이라 불리는 마이스터 플로리스트가 되었다.
“3년 동안의 플로리스트 과정과 다시 3년 동안의 마이스터 과정을 밟는 동안 ‘내일은 돌아가자, 내일은 꼭 우리나라로 가자’며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방식 씨는 1996년에는 한국 제자들과 함께 700년 된 독일 성당에서 전시회도 가졌고, 주정부 꽃꽂이 조경 전시회에도 참가했다. 독일
정부 초청으로 대통령이 주관하는 분데스가든사워 전시회에서는 단체 부문 은메달, 개인 부문 금메달을, 어머니날 주제 꽃꽂이 경진 대회에서는 금메달을
수상했다. 본 정부로부터 마이스터 공로 메달을 받기도 했다.
이번 7월에 방독할 때는 그린베르크 마이스터 학교에서 전시회도 갖고, 에센 국제 꽃 박람회장에서 25명 회원들과 전시회를, 베를린 근교에서
초청 전시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렇게 왕성한 전시 활동을 하는 것도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고 그는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서는 후배 교육과 재료
재배에만 전념하려고 한다.
“앞으로 10년 동안은 전문인을 길러내는 교육에만 전념하고 싶어요. 그 다음에는 자연에 묻혀 재료 재배에만 힘을 쏟을 계획입니다. 미래의
재배지에는 한 폭의 수채 풍경화처럼 색깔별, 계절별, 품종별로 다양한 수종과 화훼를 심어 견학 장소로도 활용할 생각이에요”
그는 인생을 마무리하는 작업 한 가지는 꼭 이루려 한다. 그것은 우리 자연을 닮은 정원을 만드는 것이다. 그가 꿈꾸는 정원은 우리가 잃어버린
‘마당’과 같은 것이다.
“어느 것 하나 특별히 도드라지지 않고 기죽지도 않으면서 1년 내내 교대로 꽃이 피고 지는 황토마당. 불러들이지 않아도 나비와 새가 저절로
찾아와 꿀을 따고 둥지를 트는 아름다운 마당에 각 식물의 생태에 맞는 질서를 부여해 후배들이 찾아와 여가도 즐기고 공부할 수도 있는 공간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자연 속에 있는 잎이든 이끼든 돌맹이든 다 있는 그 자리가 아름답다는 그는 플로리스트가 되려는 후배들에게 충고 한 마디를 잊지 않는다.
“자연 그대로의 개성을 존중하라. 그리고 돈과 편리를 좇으려 하지 말과 꽃길만 따라 걸어라. 그곳에 행복이 있더라.”
김동옥 기자 dokim@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