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와 학벌문제를 이야기하면 빠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바로 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다. 김 교수는 서울대 개방과 국공립대 통폐합 안으로 학벌문제 해결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사다. 학벌문제에 대한 문제제기, 서울대 개방을 목마르게 주장하고 있는 그를 전남대에서 만났다.
한국 사회에서 학벌의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오랜 시간 있어왔다. 한국 사회에서 학벌이 생기는 원인은 무엇인가?
어느 사회나 사회적 불평등을 만들어가는 장치는 있다. 한국에서는 그 장치가 바로 학벌이다. 한국에서 학벌이 만들어진 것은 조선시대 사대부가 사회를 지배한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또, 식민지배 시대 때부터 저장의지를 출세에 대한 욕구로 바꾸기 위해 일제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측면도 강하다.
학벌문제의 정점에는 언제나 서울대가 있다. 왜 서울대가 인가? 한국의 학벌문제를 놓고 서울대에만 돌을 던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서울대는 특혜에 의해 성장해온 학교다. 어떤 사립대, 국공립대도 서울대의 지위와는 비교할 수 없다. 오죽하면 서울대 설치령이 따로 있지 않나? 서울대는 학생 선발을 비롯한 유무형의 특혜를 수 십년 동안 받아왔다. 정부에서 학생들이 서울대를 선호할 수 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어 준거다. 마치 재벌들이 정부의 특혜를 받으며 문어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하다.
서울대를 개방하자는 주장을 오랫동안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대해 설명해 달라.
이 주장은 내가 아니라 서울대 장회익 교수가 처음 주장했다. 서울대 개방론은 한마디로 이대로 서울대와 다른 대학이 경쟁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이야기다. 국립대를 통폐합하고 서울대 학부는 개방하는 것이 대안이다. 국립대 통폐합은 거점 국립대를 평준화하고 키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대를 제외한 거점 국립대가 이미 평준화되어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구체적으로 보면, 서울대 학부 과정에서 추가로 이수한 학점은 소속 학교의 학점 취득으로 인정된다. 이는 국내외 다른 대학에서 취득한 학점과 마찬가지로 ‘타교 이수 학점’으로 인정됨을 말한다. 현재 10개 국립대학 및 몇몇 사립대학끼리는 이미 학점교환제도를 취하고 있으므로 현실적으로도 실효성이 높다.이에 따라 대학자체가 국립대 중심으로 가야하고 예외적으로 사립대가 존재하는 구조를 만들어야한다. 1/4이 국립대, 3/4이 사립대인 현실을 정반대로 바꾸자는 것이다. 공공성, 운영의 어려움, 민주성 등을 따져서 사립대들이 자연히 국립대로 편입되게끔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민감한 이야기지만 부실사립대, 부도덕한 사립대가 넘쳐나지 않나?
이에 따른 장치에는 어떤 것이 필요한가?
공직자지역할당제, 고시할당제 등이 필요하다. 그래야 지역균형이 이뤄진다. 졸업 후 부와 권력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철저하게 서울, 서울대 중심으로 가는 것이 문제 아닌가? 공직을 지방으로 분산시킨다면 굳이 서울로 대학을 다닐 이유가 없어진다. 공직사회가 이 제도를 시행한다면 민간 기업은 따라오게 되어있다. 민간 기업에게 세제혜택을 주는 등의 방식으로 지역할당제를 유도할 수도 있다. 지방대학을 나와도 공직에 나갈 수 있고, 판검사가 될 수 있는데 누가 굳이 서울대를 가겠는가? 그런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아무것도 안하면서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지 말라
서울대 학부가 개방되면 서울대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서울대 폐지가 아니라 개방이다. 서울대학교는 지금까지 축적해 놓은 학문적인 성과를 국민에게 개방해야 한다. 그 후에 자체 학부생을 선발하여 학벌권력을 구축해 가는 대신, 서울대학교의 교육 기능은 대학원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명문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인가?
아니다. 한 개의 대학이 독점하는 것이 문제지. 명문대 자체는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인위적으로 명문대학을 만들어놨기 때문에 문제라는 이야기다.
서울대가 개방되고 서울대 학벌의 독점적 지위가 사라진다고 해서 이미 사회 곳곳에 포진하고 있는 서울대 학연의 그물이 사라지겠는가? 장기적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서울대가 허물어지면 학벌도 자연히 무너진다. 고교평준화의 예를 보지 않았나. 고교평준화가 실시된 후에 소위 명문 고교 학벌도 자연스럽게 무너진 경험이 있다.
서울대가 가지는 학벌의 지위를 연세대, 고대가 이어 받게 되지 않겠냐는 지적이 많다.
지방 거점 국립대의 등록금을 동결하고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면 학생들이 연세대, 고려대를 가겠는가? 지방 국립대를 가겠는가? 굳이 연고대를 갈 이유가 없어지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그래서 지방 국립대를 키워야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하면서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지 말라. 이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한 번에 바꾸겠는가?
2008년 서울대 입시안에 대한 논란이 많다. 서울대의 발표 안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논술이라는 이름의 본고사 부활을 골자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가 안팎의 비난에 직면하자 추진하고 있는 지역할당제는 큰 의미가 없다. 지역을 할당해서 신입생을 뽑아도 서울대의 권력 독점은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대의 입시안은 한국 사회의 불행을 전혀 고치지 못하는 안이다. 수십만의 수험생들이 애를 쓰고 있는 이 불행한 일을 하루 빨리 없애야 하지 않겠는가?
서울대 개방, 학벌권력 해체는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이 사회 전체와 싸워야 할지도 모를 만큼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서울대 권력이 기득권을 스스로 내놓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쉽지 않다. 지금까지 말했던 것 모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제 곧 업그레이드 된 저항과 문제 제기가 나올 것이다. 출산률이 왜 낮은가? 아이를 낳아서 키우기 어렵기 때문에 낳지 않는 것이다. 이것도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사회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은 없어져야한다. 서울대 문제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