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없어도 보존해라. 홍천 옥선주”
임금님께 진상했던 명인이 빚는 술
알코올 사용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BC8000년경 발효된 꿀로 만들어진 맥주의 형태로서 ‘꿀술’(mead)이 사용됨이 처음이라 기록되어 있다. (Ray, 1983)
로마인들은 포도주를 ‘생명의 약’(elixir vitae)으로 부르면서 만병통치의 약일뿐 아니라 젊음의 샘으로서 생명을 연장시켜 줄 수 있다고 믿었다. 10세기경 아리비아 의사인 Fahzes에 의해 증류과정을 통한 술이 개발되어 최고의 약으로 인식되면서 ‘생명의물’(agua vitae)로까지 불리었다.
위스키(whisky)라는 말은 ‘생명의 숨결’(breath of life)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게일(Gaelic)언어 ‘usige breath’에서 유래되었다. 우리 민족도 예로부터 예·악과 더불어 술은 궁중은 물론 각 지방이나 반가에 전승되어 오면서 그 종류만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며, 일부는 ‘본초강목’이나 ‘동의보감’에도 제조방법이 전해지고 있다.
그중에는 나랏님에게 진상되어 온 술도 있는데 강원도 홍천에도 효행과 관련하여 현재까지 맥을 이어온 전통 민속주가 있으니 ‘홍천 옥선주’(玉鮮酎)라 하는 명인주이다.
한국의 대표주라 할 명인주
인체에 유익한 발효세균을 이용한 증류식 순곡주는 우리 한국의 전통적 고유 민속주 제조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곡류를 주정발효시켜 숙성된 원액을 증류하여 이슬처럼 받아내는데 주로 사용되는 재료는 쌀을 비롯하여 옥수수·찹쌀·인동(금은화)·솔순·국화·배·진달래·머루·더덕·복분자·인삼·율무등 일반곡류로부터 자연에서 채취할 수 있는 약초나 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이러한 전통 민속주 가운데에서도 국가에서 그 분야의 달인으로 제조기능을 인정하고 뚜렷한 전승과정과 100년이상의 전수내력이 확실할 때 주는 것이 명인(名人)인데, 금년 5월 명인24호로 지정된 ‘홍천 옥선주 제조명인 임용순(42)씨’가 가장 최근에 지정받은 명인이다.
명인1호는 「을식다미방」·「농정회요」·「림원십육지」등에 전해 내려오는 ‘송화백일주’이고 그외에도 명인주로 세간에 많이 알려진 술은 전주이강주·옥천한주·김천과하주·가야곡왕주·문배주·안동소주등이 있다. 원래 홍천옥선주도 이번에 24호로 지정받은 임용순씨의 남편 이한영(작고)씨가 1996년 명인3호로 지정되었으며 전주이씨 집안에 전승되어 온 가양주였었다.
진상주 빚었던 조상의 이름에서 유래된 ‘옥선주’
조선조말엽(고종38년) 강원도 인제군 내면 미사리에 전주이씨가문의 이용필(이한영명인의 3대조)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그의 부모가 원인모를 괴질에 걸렸다. 효심이 지극했던 그는 명의를 찾아 처방도 받아보고 갖은 방법을 다해도 백약이 무효라 부모는 죽을 날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용필은 생각다 못해 단지(斷指)를 하여 나온 피를 부모에게 먹였으나 이 역시 차도가 없자 마침내 자신의 허벅지살을 도려내기에 이른다.
이것으로 국을 끓여 부모에게 봉양하니 병이 나음은 물론 장수까지 하게 되었다. 이 소문이 인근 고을을 비롯하여 사방에 퍼지게 되고 결국 임금님 귀에도 들어감에 고종은 효자포상과 함께 칙명( 勅命)으로 정3품 통정대부 벼슬을 내렸다. 뜻밖으로 황은까지 입은 이용필은 이씨 집안 가양주로 전승되어 오던 ‘옥촉서약소주’를 정성껏 빚어 나랏님에게 진상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오늘의 옥선주로 전승되어 온 것이다. 실로 물질만능과 도덕적 해이가 너무도 심한 요즈음 세태에 귀감이 될 수 있는 효자상이요, 부자자효(父慈子孝)의 미담이 아닐 수 없다.
’옥촉서약소주(玉蜀黍藥燒酒)’가 이름이 바뀐 것은 당시 임금께 진상할 술을 빚은 이가 4대조 조모님으로 김해김씨 집안에서 시집을 왔는데 술빚는 재주가 뛰어났다하며 그분의 이름을 따서 ‘옥선주(玉鮮酎)’라 부르게 되었다.
홍천은 예로부터 산수가 깊고 험하며 농사짓기에는 척박한 땅으로 옥수수·감자 등의 밭곡물이 화전등을 이용하여 많이 재배되었기에 오늘날에도 이지역 특산물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옥선주 역시 이렇게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옥수수를 이용함은 당연한 귀결이고 하늘에 제를 지내던 신선한 제단의 바위틈에서 뽑아올린 지하암반수라는 천혜의 자연조건이 조화를 이루면서 화사한 미각과 청량한 향을 지니게 된다.
집안의 독자로 태어난 이한영명인은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집안 제사와 명절·잔치때면 술만드는 걸 도우면서 자연히 배우게 되었고 ‘대대로 내려온 가양주이니 나중에 그대로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컸다. 특히 그의 부친이 운명하기 전 족보와 함께 가승(家乘)을 넘겨 주면서 ‘이것은 세상 없어도 꼭 보존해야 한다’는 유언을 남겼는데, 부친 사후 2년 뒤 그 까닭을 알게 되었다 한다. 가승과 족보에 ‘옥촉서 약소주 빚는 법’을 비롯 4대조 효자포상과 관련된 봉칙·그리고 가양주를 임금께 진상했다는 기록들이 바로 그것들이었으며 이 문헌이 없었다면 전통식품 명인지정을 받을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이제는 선부(先夫)이한영 명인의 뒤를 이어 임영순씨가 명인지정을 받음으로써 그 맥을 잇게 되었는데 이 역시 당연함은 집안의 음식이나 술을 빚는 것은 시어머니로부터 며느리에게 전해지는 것이 통례이며 임영순 명인 역시 시집와서 20년 가까이 시어머니로부터 가양주빚는 법을 전수받았다.
옥선주의 유래 및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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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