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쉬는 신화의 세계
그리스 로마 신화 展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르고는 예술 작품을 논하기 힘들다. 철학이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신화는 2천년 전에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예술품의 모티브가 되고 있으며, 영어의
어원 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은하계의 명칭, 서양의 속담이나 세계적인 브랜드 이름에 이르기까지 신화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서양 정신사의 근원이자 인류의 영원한 테마인 것이다.
신화의 주역들이 한국에 오다.
그 동안 책이나 사진 같은 간접적 매체로밖에 접할 수 없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신화의 주역들이 2천
5백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한국에 온 것이다. 서초동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전>. ‘천지창조’ ‘올림포스
12신’ ‘영웅과 괴물’ 등 3개의 공간으로 구성되는 이번 전시는 아버지의 생식기를 자르고 세계의 지배권을 차지하는 크로노스, 신들과 인간의
아버지인 제우스를 비롯한 올림포스의 12신, 사랑의 신 에로스, 승리의 여신 나이키, 수면에 비친 자기 모습에 넋이 나가 죽고 마는 수선화
나르키소스, 인간계 최고의 영웅 헤라클레스와 괴물 미노타우르를 죽인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 등 신화 속 영웅들이 150점의 유물을 통해 재현된다.
그리스 로마시대의 유물 전시는 유럽 현지에서도 지금까지 몇몇 신에 국한되거나 일부 영웅 중심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그리스 로마
신화전>이란 타이틀 아래 체계적으로 전체를 한자리에 모은 것은 이번이 세계 최초이다. 전시회에 소개되는 모든 유물은 이탈리아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모두 그리스 로마 당시에 제작된 진품이다. 국보급 문화재들인 만큼 운송 또한 까다로웠다. 추락사고가
발생할 경우 절반의 유물만이라도 구하기 위해 두 대의 비행기로 나누어 운송되었다.
이야기가 있는 전시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뒤오니소스 제(祭) 행렬’이다. 뒤오뉘소스의 행진은 가면극, 사튀로스에 대한 그의 구애, 술취한
여성과 실렌 등이 함께 있는 재생 의식으로 ‘뒤오니소스 제 행렬’은 이것을 형상화한 대리석 부조이다. 페플로스(여성용 긴 겉옷)가 주름지며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나, 머리카락의 결, 근육의 움직임 같은 것들이 무척 섬세하게 조각된 작품이다. 인물들의 얼굴에 표정이 없는 것도
이색적인데 이것은 그리스 예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리스 시대 작품은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다. 인물 표현에 있어서도 단아함과 신성함을 중시해 인간적인 표정은 제한된다. 예술성도 로마 시대에
비해 뛰어나다. 로마 시대에 와서 종교적 의미가 퇴색하고, 상업적 목적으로 작품이 다량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예술적 가치는 다소 떨어지게
된다. 장식성과 화려함이 강조되며, 신들의 얼굴에도 인간적인 표정이 나타난다.
이밖에도 신화의 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리스 항아리’, 근육의 긴장감이 잘 나타난 ‘휴식을 취하는 헤라클레스 상’, 형상이나 음영
묘사가 훌륭한 프레스코 ‘삼미신’, 풍만한 아프로디테의 모습을 관능적으로 표현한 ‘아프로디테와 에로스’ 등 수준 높은 예술 작품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전>에는 뛰어난 예술품들 외에도 ‘이야기’가 있다. 전시회 곳곳에 신화를 설명하는 패널이 있으며, 안내원들의
친절한 해설도 들을 수 있다. 전시된 유물들은 신화를 형상화한 것들이기 때문에, 신화 이야기가 곁들여 져야 전시가 완성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큐레이터에게 설명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
인간과 인생에 대한 철학적 통찰을 신화로 다듬고, 그것을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그리스 로마인들의 미적 감각에 감탄하다보면, 첨단
물질문명의 세례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삶이 고대인의 삶보다 풍요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전시를 통해 각박한 도시에서 잠깐 벗어나,
신화의 세계에 취해보는 것도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인 터 뷰 |
“그리스 로마 유물의 근원은인간에 대한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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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옥 기자 www.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