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세계경제는 날개가 없다!
테러 여파로 내년 세계경제 성장률 2%미만의 불황 예상…
우리 기업 채산성도 더 악화될 것
미국의 랜드 연구소는
이번 테러를 ‘뉴테러리즘’의 전형으로 해석했다. 과거의 테러가 세인의 관심을 끌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존재확인이 목적인 반면, 뉴테러리즘은
구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최대한 타격을 입히는 신종 테러를 말한다. 한마디로 테러라기 보다는 전쟁 선언에
가깝다. 이번 사태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와 아프카니스탄 등 이슬람 세력의 가치체계간 충돌로 비화돼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이에 따라 겨우 테러 충격에서 벗어나나 싶던 세계 경제는 또 한 번 홍역을 앓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테러발생 하루만에 국제금융시장과 원자재값이 안정되는 등 회복기미를 보이다가, 미국의 보복공격을 앞두고 불안감이 다시 확산되었다.
세계경제, 동아시아 외환위기 때보다 좋지 않다
각국 주식시장은 무력충돌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하락세로 반전했고, 외환시장에서 주요 통화에 대한 달러가치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FRB(연방준비은행)의
금리인하 조치에도 불구하고 9월 17일 거래가 재개된 뉴욕 증시는 다우지수가 9월 10일 대비 7.13% 하락한 8,290.70, 나스닥은
6.83% 하락한 1,579.55로 마감됐다.
자국내 테러에는 완벽을 자랑하던 미국에서 테러가 발생하자 안전통화 역할을 담당했던 달러에 대한 신뢰도도 더불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달러화의 가치 추락은 경기회복의 지연과 경상수지 적자 등 기초여건의 불안에 있다. 그러나 미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인하하면 달러화의
가치 하락은 심화되고 이에 따라 자본 유출이 더욱 증가하게 된다.
이렇게 미국 시장이 흔들리는 요즘, 경제전문가들은 현 세계경제 여건이 1997∼98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당시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세계 GDP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선진국 경제가 모두 침체일로를 걸음에 따라 세계
교역 및 투자흐름이 크게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세계경제 성장이 2.5% 미만일 때 불황으로 정의하는데 지금 추세라면 2002년
중 세계 경제는 2% 미만의 성장으로 불황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한다.
미
보복 공격 정도와 시점에 따른 경제 시나리오
미국이 보복공격을 천명함에 따라 향후 전개 방향을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조기 수습되는 것과 강력한 보복공격 후 불안이 지속되는
것, 그리고 무력충돌장기화로 테러위험성이 고조되는 것과 걸프전처럼 불안이 지속되다가 단기 전면전을 승리와 함께 회복세로 돌아서는 것이 그것이다.
첫 번째 조기 수습의 가능성은 현재 상황으로서는 지극히 낮다고 할 수 있다. 아프카니스탄이 오사마 빈 라덴을 넘겨줄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하고 있고, 미국도 이번 테러와의 전쟁을 천천히 이끌어 나갈 것임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조기에 사태가 진정이 된다면 미국이
테러 배후세력에 한정하여 극히 제한적인 보복을 실시한 후, 사태 복구 및 경기부양 정책 등으로 미국경기가 비교적 빠르게 회복되고 세계경제도
회복 기조로 전환할 것이 예상된다.
두 번째 미국이 강력한 보복을 감행하고, 이에 대해 빈 라덴 추종세력과 아프칸이 항전을 할 경우 경제의 불안이 지속될 것이다. 소비위축과
투자침체가 초래되고 미국경제의 불황이 심화되어서 국제유가 및 금값이 상승하고 달러화 가치 하락 등으로 세계경제의 동반 침체를 가져올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 있다.
세 번째 미국의 강력한 보복이 아랍권의 단결을 유도함으로써 서방권과 회교권의 무력충돌이 계속되고 보복 테러 등으로 사태가 더욱 악화될 경우이다.
이 때는 소비자들이 심리적 공황에 빠지게 되고 기업들은 투자활동을 자제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세계경제는 심각한 불황에
진입하게 된다. 원자재의 무기화와 함께 세계경제 활동이 상당부분 마비될 우려가 높다.
네 번째는 1990년 걸프전처럼 초기 충격으로 경기 회복이 지연되는 양상을 보이다가, 단기 전면전에서 서방의 승리가 확실해지면서 경제심리가
서서히 안정되는 형태로 진행되는 경우이다. 걸프전 개전 초기에는 생산 감소, 물가상승, 소비심리 냉각 등 실물경제가 침체되었고 금융시장도
불안했지만, 이라크 공습 이후 불확실성이 제거되면서 미국 등 각국 경제가 상승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우리 기업 채산성 현재보다 더 악화될 것
LG경제연구원은 미국테러와 보복공격 선언 영향으로 우리 기업의 기업채산성이 현재보다 더 악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수출도 당초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하반기에 회복세로 돌아서기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4%나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20일 LG경제연구원이 ‘미 테러사태가 상장제조업체들의 매출 및 채산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상장제조업체들의 매출액증가율은 올
상반기 5.4%에서 하반기에는 마이너스 3%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또 기업의 채산성 지표인 매출액영업이익률(영업이익을 매출액으로 나눈값)도
상반기에는 8.1%였으나 하반기에는 6.1%에 머물 것으로 추정됐다. 만일 미국과 테러지원국간의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매출액영업이익률은
4.6%로 더욱 낮아질 전망이다.
내수도 수출과 함께 감소하고 유가가 급등하면서 크게 위축돼 올 하반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상반기보다 더 부진한 1.7%에 머물고
유가는 최악의 경우 배럴당 40달러선까지 치솟아 기업 채산성악화를 더욱 가중시킬 것으로 우려했다. 연구원은 반도체, 컴퓨터 등 정보기술(IT)업종의
하반기 매출액증가율은 상반기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매출액영업이익률은 3%포인트 이상 낮아지고 IT경기 회복이 당초 예상보다 늦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동차업종도 대미수출부진과 유가급등이라는 악재 속에서 매출액증가율과 매출액영업이익률이 각각 14%포인트와
1%포인트 가량 하락할 것으로 추정했다.
금년 1∼7월중, 중동에서의 원유수입 물량은 전체물량중 79.4%를 차지(408백만 배럴), 금액기준으로도 80%수준에 이른다. 거의 전적으로
원유 수입에 의존하는 만큼 유가급등이라는 악재는 기업채산성을 악화시켜 두바이산 원유기준 국제원유가가 배럴당 10%상승할 경우 우리 상장제조업체들의
수익성은 0.2%포인트 하락하고 특히 화학업종의 수익성은 0.9%포인트나 악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대부분 산업들이 어려움에 직면하는 반면 전쟁특수를 타고 성장 가능성이 풍부한 사업분야도 있다. 안전성에 대한 인식 제고로 보안ㆍ방위,
안전관련 시스템, 소프트웨어 산업, 보험업 등은 제 물을 만난 것처럼 상대적으로 호조를 띠고 있다.
김동옥 기자 dokim@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