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과 탈당그룹 등이 추진해온 범여권 통합신당이 결국 물건너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범여권 통합의 한축인 민주당을 이끌 새로운 당 대표로 박상천 후보가 선출됐기 때문이다.
지난 3일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박 대표는 “열린우리당과의 당대 당 통합은 없다”고 누차 공언, 범여권의 통합에 부정적 관측을 드리웠다.
그는 당 대표 당선, 수락사를 통해 “대표 당선 소식을 접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했지만 한편으론 이제 고난의 길이 시작됐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민주당의 험한 앞길을 생각할 때 이제부터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선다”고 밝혔다.
그는 “우선 당을 재정비하고 정상적·민주적 운영할 것을 다짐한다”면서 “통합문제와 관련해선 중도세력을 규합해 민주당이 중심이 되는 강력한 중도정당을 건설할 것”이라고 민주당 중심론을 내세웠다.
박 대표는 “지금 한나라당 대선 주자들이 높은 지지도를 보이고 있지만, 민주당 후보가 중도개혁주의와 경제회생 등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할 때 우리 국민의 마음은 바뀔 것”이라며 “올 12월에 이르러 통합에 있어선 단호히 배척했던 열린우리당과도 후보단일화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선 단일후보화 후통합이라는 의제를 던진 것이다.
박 대표는 “내년 4월 총선에서 호남은 물론 수도권 등에서 많은 당선자 내 민주당이 양대정당으로 도약하는 쾌거를 이룰 것”이라면서 “중도개혁정당인 민주당이 보수정당인 한나라당과 양대 정당이 된다는 것은 국론 분열이 아닌 통합과 국회의 생산적 정치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한국이 선진화로 나가는 데 가장 큰 변화라는 정치사적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천 ‘당권’ 장악, 범여권 통합 변수
‘민주당 중심의 중도정당 창당’을 강조해 온 박 대표 체제의 출범으로 범여권 통합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는데 정치권의 이견이 없다. 때문에 박 대표의 당권 장악이 범여권 통합의 범위와 속도를 다소 늦출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통합에 적극적이었던 김효석 원내대표, 이낙연 의원 등 민주당내 현역 의원들이 장상 전 대표를 전략적으로 밀었던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박 대표는 “민주당과는 이념이 다른 열린우리당과의 당대당 통합은 없다”고 못박은 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통째로 합쳐지면 민주당은 흡수돼 없어질 뿐이며, 국정실패를 심판받아야 할 열린우리당의 일원이 될 경우 대선에서 한나라당 좋은 일만 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 체제 출범 이후 민주당은 예상했던 대로 독자생존론으로 기울었고, 열린우리당과 탈당그룹 등의 통합 작업은 이렇다할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탈당그룹 내에서 독자창당론이 나오고 열린우리당에서도 ‘세력통합이 아니라 대선후보 단일화가 실현가능한 방법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
지난 1월 말 탈당 사태 전후 ‘범여권이 4~5개 정당으로 분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열린우리당 세력통합 가능성도 그리 높게 보지 않는다. 5일 지도부의 핵심관계자는 “접촉은 계속 하겠지만 민주당의 상황 등을 볼때 대통합신당이 나오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핵심관계자는 “좋은 후보를 모셔오는 일에 우선 순위를 둘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범여권의 잠재적 대권주자인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등이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히면 이들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의원들을 당 밖으로 내보내 창당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그럴 경우 지도부 등 다수가 당을 나가고 일부 친노세력과 비례대표의원 등이 당에 남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중도개혁성향의 김근태 열린우리당 전 의장과 탈당한 천정배 의원 등이 함께 창당할 가능성도 있다. ‘김 전 의장을 포함한 열린우리당 재야파+천 의원 등 탈당그룹+시민사회단체’ 형식의 조합이다. 실제로 양측은 최근 연대를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한길 의원 등 열린우리당 집단탈당 의원그룹인 통합신당모임도 창당 준비를 하고 있다. 일단 창당에 앞서 ‘중간 수준 통합’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김 의원 등은 ‘열린우리당 탈당그룹+민주당 일부+국민중심당’의 조합으로 통합교섭단체란 이름의 ‘당적에 관계없는 연대’를 꾸리자고 제안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당내 의원들의 참여에 부정적인데다, 천정배 의원 등이 중심인 탈당그룹 내에서도 “정책과 비전 중심의 연대가 아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게 걸림돌이다.
범여권의 핵심관계자는 “이렇게 되면 단일정당은 사실상 물건너가는 셈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밝힌 대로 단일후보로 가는 방식이 최선일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선 통합 신당 창당’이냐 ‘선 후보단일화 후 통합’이냐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범여권 통합 논의는 ‘선 통합 신당 창당론’과 ‘선 후보단일화 후 통합론’이라는 두 갈래로 나뉘고 있다. 선 후보단일화론은 통합 작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 때문에 나온 방안이지만 이에 반대하는 의견도 많아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선 후보단일화론은 현실론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다. 통합신당 창당이 각 정파의 이해 관계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주요 정책에 대한 이견으로 실현이 어렵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통합이 이뤄지면 내년 총선에서 공천자 숫자가 줄어들어 각 정파의 같은 지역 정치인들 간에 기득권 다툼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려했다.
열린우리당 탈당파인 통합신당모임과 민생정치모임은 통합의 돌파구 마련 차원에서 민주당, 국민중심당과 함께 통합교섭단체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움직임이 4월 중순 구체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대로 가다간 아무것도 안된다는 위기 의식에 따라 중간 단계로 부분적인 원내 통합이라도 이루자는 취지다. 또 존재감 강화를 위해 먼저 탈당파를 중심으로 독자 신당 창당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열린우리당 장영달 원내대표는 5일 민주당과의 통합 작업과 관련해 “대의를 위해 민주당이 분당 과정의 서운함을 누그러뜨릴 때가 됐다”고 밝혔다.
장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일각에서 말하는 분당의 책임자는 현재 열린우리당 1선에 있지 않다. (당시) 민주당에 아무 일이 없어서 (분당이) 일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50 대 50의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양당이 합쳐지면 민주당이 흡수된다는 우려가 있는 것 같다”며 “(열린우리당의) 기득권 포기를 통해 그 부분을 안심시키겠다”고 말했다. 구(舊)여권의 통합논의가 갈수록 지리멸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일종의 구애인 셈이다.
그는 “민주당 박상천 대표는 대단히 합리적이며 본인 생각과 달라도 논리적으로 맞는다면 수용하는 좋은 자질을 갖고 있는 분”이라며 “힘을 합치는 것이 국가와 국민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통합이) 원만히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