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P연합 이뤄 15대 대선의 승리끌어낸 산파역
노사정 위원장으로 극적인 노·사 대타협 끌어내 화제.
대표 취임후 복잡다단했던 당 수습해 위상 점고
본래 말이 많기로 정평이
나 있는 정가이지만 요즈음의 한광옥대표(59)추진협회의 잦은 「대외행보」를 두고 민주당내 각파는 결코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는가 하면 「관리자」가
아닌 「큰 뜻」을 품은 행보가 아니냐는 의심을 보이고 있다.
이는 10·25 재·보선 완패로 시끄러웠던 당내분이 일단 수습단계로 접어 들면서 한 대표의 언행이 돋보인데 기인하고 있는 듯하다.
한 대표는 당직자 인선을 마친 직후인 지난 11월16일 경기 안양시의 한 택시회사를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대외행보」에 나섰다. 이어 20일
대표 취임이후 처음으로 경기도 기흥소재 강남대학교에서 “변환시대의 국가발전 과제”라는 주제강연을 통해 자신의 정치철학, 당대표로서의 역할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지금은 조화 이루는 코디네이터의 시대”
한 대표는 강연을 통해 “많은 변화속에 다양성을 기본으로 한 수평시대는 앞에서 이끄는 「리더의 시대」가 아니라 조화를 바탕으로 갈등조정과
가치배분을 하는 「코디네이터의 시대」라며 시대가 변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람과 정책을 판단하는데 동전의 양면만을 볼 것이 아니라 세 번째 면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의 「리더십론」을 피력한 뒤 “정국을 운영하는 정치철학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일련의 언행은 여러 가지 억측을 낳게 했으며 심지어 당 일각에서는 차기 당권에 뜻을 두고 있다는 말로 퍼져 일부의 비판을 자아냈다.
한 대표의 기용을 두고서는 찬반 양론이 높았다. 한 대표는 청와대 비서실장 재직시부터 「한실장, 당 외곽의 권노갑, 당내의 김옥두, 정균환의원
등 삼각 축이 당을 관리·운용해 왔다」고 일컬어졌을 만큼 당내 비중이 높았으므로 환영하는 측에서는 「대통령이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 것」이라며 「한 대표가 당을 원만하게 이끌어 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찬의를 표명했다.
대표 기용 반발의 소리는 사그러져
그러나 당내 소장파들은 강력히 불만을 표시하였다. 특히 김성호 정범구 이호웅의원등 초선의원 10여명으로 구성된 「새벽 21」은 공개적으로
성토했으나 크게 매아리 치지는 않았다. 그것은 이훈평 의원의 말마따나 “4선의원에 구 야당 사무총장 경선 최고위원을 역임해 당의 정통성을
갖고 있어 비서실장에서 당으로 곧바로 온 것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또 경선에 출마하지 않으므로 당내 경선관리를 잘할 것”이라는 평에 반박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애당초 청와대가 민주당 신임대표로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을 예정을 4일이나 앞당겨 서둘러 내정사실을 밝힌 것은 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여권내
갈등이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는 것을 조기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대표에게는 처음부터 「관리형」이라는 꼬리가 붙어 다닌다.
차기주자 경선등 복잡다단한 일을 앞두고 있는 집권당을 관리할 적임자라는 뜻에서 붙은 꼬리표이나 점차 퇴색하면서 「무게중심을 잡아 나간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일부 최고위원들의 반발적 회의 불참의 고비도 잘 넘겼다. 「화합, 조정의 명수」로서의 역량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한 대표는 취임 한달 만에 가진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관리형」이라는 말과 관련 “여기와서 당내 여러 의견을 조화시키면서 정권 재창출을
앞둔 집권당의 면모를 어떻게 갖추고 당을 어떻게 운영할지 신경을 쓴다”면서 “그게 무슨 관리냐 그런 말 자체가 경선을 조기 과열시키려고
나오는 얘기가 아닌가 싶다”고 말하고 있다. 관리운운한데 대해 못마땅해 하고 있는 것이다.
화합·조정의 명수로서 역량 발휘
아무튼 많은 사람이 가졌던 “한대표가 당을 원만하게 이끌어 갈 것으로 본다”는 기대는 날이 갈수록 충만해져 가고 있으며 동시에 위상과 비중은
더욱 높아져 가고 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 대표는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당선의 결정적 계기를 만든 이른바 「DJP」연합을 성사시켰고 이어 노사정 위원장으로써 거의 가망이
없어 보였던 재계와 노동계의 대타협을 이끌어 낸 혁혁한 공적을 세운 바 있다.
두가지 일 모두가 해결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 지난사(至難事)였다. 그러나 그는 기어히 해냈다. 이로인해 그의 위상은 매우 높아졌다.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이 사퇴했을 때에 그 후임1호로 당시 15대의원이었던 한의원이 물망에 오른 것은 오히려 당연했다. 실장에 취임한 후의
청와대 비서실은 그야말로 일사불란 총력을 모아 김대중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뒷받침하였다. 그의 인화 통솔력이 돋보인 기간이라 할 수있다.
그러나 고민은 있었다. 그것은 그가 성취시킨 DJP가 결별의 징조를 보였을 때였다. 재결합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으나 보람없이 끝난 것은
비록 어쩔수 없는 추세라지만 못내 아쉬었으리라는 추측이 갈만하다.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의 당 대표최고위원으로의 기용은 앞서의 두가지 지난사(至難事)를 해결한 실적과 실력이 임명권자인 김대중총재의 결단을
추출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측이 가지만 그 인사가 적중했다는 실증이 이어지고 있다.
과연 그가 당대표로써 유종의 미를 거두어 2대 공적위에 하나를 더한 3대 공적을 쌓을지는 머지않아 판별이 날 것으로 보인다.
전북 전주 출생 서울대학교 영문과 졸업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대한학생 정치외교협회회장 제 11, 13, 14, 15대 국회의원 제68차 IPU한국대표 민주화 추진협의회 대변인 국회노동위원장 제 1대 노사정 위원장 제 22대 대통령 비서실장, 새천년민주당대표 최고위원(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