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부각되었다가 작년 부인의 공천헌금 비리문제로 정계은퇴 직전까지 가 주변을 안타깝게 했던 김덕룡(金德龍66)의원이 지난 4월11일 10개월만에 한나라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 모습을 드러내 주목된데다 뒤이어 18일에는 「2007년 대선, 재외국민 참정권 어떻게 할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개최, 정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열린우리당의 김성곤 최고위원과 공동제의로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는 임채정 국회의장(격려사)을 비롯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정세균 열린우리당 당의장이 축사를 했고 20여명의 한나라당 의원과 10여명의 해외교포 대표 그리고 5백여명의 청중이 참석 했으며 특히 스케줄에 없던 박근혜 전 대표가 축사를 해 눈길을 모았지만 이는 김 의원의 10개월만의 정치활동이 어떻게 평가되고 받아들여 졌는가를 가늠하는 바로메이터로 볼수 있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김 의원이 정치재기의 모멘트를 “유신체제가 박탈한 헌법적 권리인 제외국민 참정권을 정상으로 돌려야한다”는데 두었다는데 큰 의의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일석이조의 효과 거둘 토론회
이는 재외국민의 참정권을 되돌려준다는 국가적 과업인데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에게 많은 플러스요인이 되게한다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거둘것으로 보이는 만큼 김 의원의 원려(遠慮)는 높이 평가할 일이다.
한편 정치권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벌이고 있는 대선 후보경합에서 그동안 철저하게 중립을 엄수하고 있는 김 의원의 향방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모우고 있다. 특히 김 의원이 한나라당의 취약지구로 일컬어지는 호남권에서 큰 영향을 발휘하고 있음을 잘 아는 대권후보 경합자들로서는 김 의원의 지지획득에 큰 비중을 들 수 밖에 없는 입장인 것이다.
그러나 김 의원은 표면상 이런 당내현황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는듯이 보인다.
토론회에서의 인사에서도 “그간 참정권회복에 대한 재외국민의 간절한 기대와 꾸준한 요구가 있어왔고 더욱이 올 연말에는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기에 지금 이 시점이 재외국민 참정권문제에 대한 돌파구를 찾을수 있는 최적거리라 판단한다”면서 “이에 진정으로 국가와 재외동포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재외국민 참정권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고 말해 일체 당내 정치문제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한때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각인
김 의원은 토론회에서의 발제에서 “정부 당국은 그동안 700만 재외동포사회의 최대 현안인 재외국민 참정권의 실현을 외면한 채 「영주권자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며 재외국민에게 투표할 경우 외국과의 마찰이 예상된다」는 그릇된 인식과 무관심으로 일관해 왔다”고 단정하고 “그러나 재외국민 중에는 한국 국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감내해야만 하는 수많은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거주국가에 귀환하거나 시민권을 획득하지 않은 채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동포들이 상당수에 달한다”고 지적 외국의 예를 들면서 “참정권 부여”를 강조하였다. “단기적인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초월해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자산인 재외국민들에게 국민의 기본 권리인 투표권을 하루빨리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의원은 명실공히 반독재,철저한 민주주의 신봉자로서 흔들림 없는 생활을 해 왔다. 서울대문리대 학생회장 시절인 1964년 「한일국교정상화」를 반대하는 6·3시위를 주도하였고 1970년,1980년대에 민주화 투쟁을 하다가 4번이나 트옥되는 고초를 겪었다. 그의 정계입문은 1979년 김영삼 신민당 총재 비서실장에 취임하면서 부터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민주계 실세로 정무제1장관과 여당의 사무총장을 지냈으며 호남출신의 개혁 이미지가 돋보여 한나라당 차기 대통령 후보로 각인되었다.
그가 첫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서기는 1997년 신한국당 때다. 그러나 이회창총재에게 패했다. 이때에 돋보이는 일이 경선 결과에 철저하게 승복했던 일. 뿐만 아니라 이 총재와는 고비때마다 경쟁과 협력을 반복하다가 2000년 5월 한나라당 총재에 다시 출마했으나 이 총재에 이어 2위에 머물렀고 2002년 대선 때에는 중앙선대위 공동의장으로서 이 총재를 적극 도왔다.
이·박 대통령 후보경합에서 엄정중립
그런 전력이 있고보니 이명박·박근혜 양씨의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엄정중립을 지키고 있다. 어찌면 대선 후보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중재에 나서는 중진 역할을 하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관측들이 많다.
한편 김 의원은 양측에 매우 조심스레 대하고 있다. 엄정중립적이면서 가능한한 자극적인 용어나 태도를 피하려하고 있다.
일례로 앞서 쓴 토론회 인사말에서 「우리는 이미 1967년 대통령 선거와 1971년 총선에서 해외일시 체류자에게 투표권을 준적이 있는데 유신체제 때 중단됐다」는 처음 표현을 “지난 1972년 국내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에 의해”라는 표현으로 바꿔 박 전대표에게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사실을 들수 있다.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론자이며 산전수전 다 겪은 5선 중진인 김 의원이 이제 성공적인 정치적 부활을 달성한 만큼 앞으로 어떤 태도를 취해갈지 궁금증과 기대를 걸게하고 있다.
학력 및 경력
서울대학생회장, 김영삼총재 비서실장, 민추협 기획실장, (사)세계한인상공인 총연합회 이사장, (사)한국경영·컨설턴트협회장, 한·중의원 외교협의회장, 민화협 상임의장, 한나라당원내대표·부총재. 5선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