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 영화 ‘금발이 너무해’의 주인공은 알록달록 예쁜 거라면 사족을 못 쓴다. 악세서리나 옷은 물론이고 볼펜 한 자루, 노트 한 권도 예뻐야만 한다. 이처럼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사람의 본능은 이왕이면 다홍치마, 무엇이든지 미적인 것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이 같은 욕구는 실용품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아녀자들이 썼던 옛 보자기들은 ‘예술로 승화된 실용’의 대표적 사례다.
노동과 유희, 예술이 하나가되는 활동
옛 물건에 담긴 예술성과 삶의 이야기를 테마로 많은 전시를 가져왔던 경운박물관이 내년 경기여고 개교 백주년을 앞두고 보자기전을 연다.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 경기여고 경운박물관에서 7월19일까지 열리는 ‘보자기-예술로 승화된 실용’전은 120여점의 아름다운 보자기들이 소개되는 자리다.
보자기는 생활과 의례 속에서 긴요하고도 친숙하게 쓰이는 물품으로 여인들의 삶이 묻어있는 애틋한 일기장이자 눈부신 미술품이다. 조상들은 조각보를 제작하는 일을 ‘복(福) 짓는 행위’로 여겼다. 공을 들여 조각보를 만들고 소중한 물건을 쌀 때 그에 맞는 포장으로 보자기를 이용했다. 보자기를 만들어 싸고 풀어보는 과정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고 그 이야기들은 창조적 욕구에 의해 보자기 한 땀 한 땀에 수놓아졌다.
조각보를 모으는 것은 여성들로 하여금 창조의 기쁨을 누리게 했고 건전한 여가활용으로써 노동과 유희, 예술이 하나가 되는 활동이었다. 전시 관계자는 “기교를 앞세우는 개인주의 성향이 아니라 생활 자체에서 밀착된 풍토에서 나온 것이기에 표현이 자유롭고 신선하다”며, “무엇보다도 색조의 활용이 독특하고도 은은하고 계획적이지 않으면서 여유와 자연미를 보여준다”고 전통 보자기의 아름다움을 극찬했다.
현대 추상회화를 연상시키는 면과 색의 구성
조각 천을 이용한 알뜰함, 색채를 활용하는 감각, 기하학적인 구성, 다양한 패턴, 반복과 변용, 표현의 자유로움과 정성스러움에서 오롯하게 보자기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아녀자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조각천들의 면과 색의 구성이 현대 추상회화에서 나타나는 고도의 기하학적인 추상공간과 다를 바 없다는데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조형의 언어와 색채로 이루어진 이와 같은 추상공간은 극단적인 기하추상에 도달한 몬드리안이나 클레를 연상시킨다.
이번 전시에는 베모시보, 당채보, 판보와 더불어 특별한 보자기가 선보인다. 수덕사에서 보물처럼 간직해온 일엽스님의 가사와 바루 공양보자기가 그것. 여승들이 머물던 수덕사 견성암은 예부터 음식과 섬세한 바느질 솜씨가 유명했다. 20세기 초 손수 만든 미사포도 볼 수 있다. 100세 넘은 할머니가 지금도 만들고 있는 조각보도 아름답다. 말로만 듣던 괴나리봇짐, 채보와 회초리보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다.
전시 관계자는 보자기 예술에 대해 “유목민 문화의 자유스러운 간편함과 농경문화의 경건함을 두루 지니고 있다”며, “현대 조형예술에도 새로운 영감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