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5년간 차가운 얼음 속에 갇혀 지냈다. 온갖 오해와 편견, 적대와 보복의 두꺼운 얼음이 나를 누르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 얼음이 녹는 소리를 듣고 있다”
최근 발간된 그의 저서, ‘한라에서 백두를 보네’에 적힌 지금의 이인제를 표현한 글이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잠룡, 이인제의 목소리가 그를 가둬왔던 얼음을 뚫고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5년간 그의 목소리는 얼음속에서 감돌았을 뿐,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지만 열음이 깨지는 파열음과 함께 그의 목소리는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더이상 대권도전은 없을 것’이라는 적대적 시각에도 불구, 최근 이 의원은 대권도전 ‘3수’ 의지를 굳혀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7년부터 ‘대선주자 이인제’를 지지해온 사람들의 모임을 구성하는 한편, 차기 정권의 국정운영 구상까지 내놨다. 차기 정권에 대한 구상과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이인제 플랜은 그의 저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던 것.
이미 이 의원은 올 초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대선출마 여부에 대해 “국민의 여망에 따라”라는 단서와 함께 “내년 여름쯤”이라고 결행 시기를 밝힌 바 있다.
지난해 11월 한나라당 ‘빅3’의 연이은 교육정책 발표가 있던 시기, 이 의원도 ‘미래로 가는 교육 대혁명’을 내놨다. 유력대권주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 의원은 당시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구상안을 통해 “젊은이들을 입시지옥에 가두지 않고 꿈과 열정을 키워주기 위해 교육에 대한 일대 혁신에 나서야 한다”며 ▲교육기관 설립을 다원화, ▲3불제 폐지 등 대학 학사관리에서 자율성 ▲초등, 중등교육에 대한 지방의 교육 자치를 허용 ▲수능시험은 최소한의 자격검정시험 ▲국립, 시, 도립 대학은 서민자녀에 대한 교육서비스 우선 제공 ▲시제를 2-30년 미래에 두는 교육 실시 ▲교포들을 활용 4개 국어 이상의 언어를 생활화하는 세계인 양성 등을 제시했다.
이 의원은 우선 “획일주의를 허물고 다원주의로 가야 한다”며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은 교육의 수요에 맞춰 그 설립과 교육내용을 다원화해주어야 하며 교육의 내용도 학생들의 적성과 능력의 차이를 수용할 수 있는 다원성과 유연성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학생을 선발하고 학사를 관리하는 모든 자유와 책임을 대학에 주어야 한다”면서 “정부는 지원할 의무는 부담하나 간섭할 권리를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학교의 설립과 운영, 교원의 인사 등 권한이 지방자치로 넘겨져 보다 좋은 교육을 향한 지방간의 경쟁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중앙정부는 지방간에 건강한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재정, 교육의 내용과 수준을 조절하는 역할을 맡으면 된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돈이 부족하고 경쟁에서 밀린 학생들에게 대학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며 “국립, 시립, 도립 대학들을 폭 넓게 운영하면서 자기 지역 주민들에게 폭 넓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한다. 다만 입학은 쉬워도 공부하지 않으면 졸업할 수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육이 100년지 대계임을 감안할 때 나라를 이끌 리더가 될 심산이 아니라면 단순히 국회의원으로서 종합적인 교육구상을 내놓기는 힘든 것.
이 의원은 국정운영구상과 함께 지지세력을 모으는데도 힘을 실었다. 이인제를 지지하는 모임인 ‘비전아시아(대표 류승구)’가 같은달 충남 천안에서 공식 창립됐고, 비전아시아는 “2007년 대선에서 이 의원이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다 하겠다”고 다짐하는 등 ‘이인제 대통령 만들기’의 선봉에 선다는 계획이다.
또한 모임은 지난 97년부터 이 의원을 계속적으로 지지해온 사람들로 현재 5개 광역지자체의 지부를 창립했으며 6개 지역에서 준비위원회 형태로 활동을 하고 있다.
정치는 타이밍, 이인제가 움직인다
정치는 타이밍이다. 정치·사회적으로 이슈가 터졌을 때 그 흐름을 알고 선수를 잡아야한다는 것.
특히 대선이나 정계복귀, 탈당 등 정치적 중요 변수를 앞둔 시점에선 이것이 더욱 절실해 진다. 올초 정치권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탈당 도미노’ 현상에도 그 절실함이 묻어났다.
때를 기다려왔던 이 의원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그는 붕괴된 범여권을 중도개혁 국민대통합정당으로 건설할 복안을 세우고 있다.
이 의원은 지난 1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정계개편에 대해 “중도개혁과 국민대통합을 내세우는 새로운 정당이 창당되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기득권에 안주하지 말고 대동단결을 한다면, 나도 중도개혁·국민통합정당 창당에 헌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국민중심당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고 밝힌 이 의원인 만큼, 방향성이 같을 경우 통합신당에도 참여하겠다는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아울러 이 의원은 ‘기회’와 ‘찬스’라는 단어를 사용해 지금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거듭날 ‘때’임을 강조했다.
이 의원은 현재 진행되는 여권의 붕괴를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지는 현상에 빗대 “열린당의 붕괴는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낡은 지역패권과 이념에 매달렸기 때문”이라며 “지역패권과 낡은 기득권에 매달린 한나라당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노 정권 핵심세력들이 당의 와해를 속수무책으로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들의 책략이 상황을 더 불확실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평양이 대선을 향한 정치판에 노골적으로 발을 들여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파괴는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아름다운 창조를 위해서라면 잘못된 정치구조는 완전한 파괴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면서 “지금은 미래지향적인 양당체제로 정치권이 변화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여기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일은 붕괴 이후의 창조이다. 지진으로 붕괴되는 건물에서 탈출하는 사람들에게 ‘허술한 건물을 지었으니 그 곳에서 죽어야 한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면서도 “여권에 몸담고 있던 사람들이 그 낡은 건물과 함께 사라지는 것으로 책임을 다하는 것도 아니다. 과오를 인정하고 그릇된 노선과 결별한 후,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정치지형을 창조하는 데 헌신하는 것이 오히려 책임을 다하는 자세”라고 ‘제 3정치세력’의 태동을 강조했다.
이 의원은 이어 “새로운 정당에서 국민의 뜻을 받들어나간다면 ‘경쟁력 있는 대통령 후보’도 만들어질 것”이라며 “양대 산맥이 격돌하는 대선을 통해 ‘안정적이고 생산적인 리더십’도 창출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 의원이 주장하는 ‘붕괴 후 창조’는 무엇인가? 이 의원은 이에 대해 “크게 볼 때 양대 산맥처럼 두 개의 큰 정당이 비전과 정책을 가지고 경쟁하는 정치지형”이라며 “이번 대선을 앞두고 비전과 정책으로 정체성이 구분되는 두 개의 메이저 정당이 병립(竝立)하고 좌우로 소수 정당이 서 있으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한나라당이 보수적인 정당으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대응하는 보다 진취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큰 정당을 건설하는 일이 곧 시대의 요구”라며 “이러한 정당 건설을 위해 ‘중도개혁주의 세력의 대동단결’과 ‘국민통합정당의 건설’이 대의명분”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앞으로 정계가 개편되는 과정에서 지도자를 먼저 구한 뒤 당을 만들려 하면 때를 놓치고 말 것”이라며 “중도개혁주의 세력의 대동단결과 국민통합정당의 건설이라는 깃발 아래 모인 사람들이 기득권을 거부하고 국민의 뜻을 받들어 나가면 길이 열린다. 경쟁력 있는 대통령 후보도 국민의 마음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의원은 특히 “만일 지진으로 붕괴된 기반 위에 제대로 된 정당이 건설되지 않는다면 대통령 선거는 또다시 낡은 이념과 포퓰리즘, 지역패권의 광기에 휩싸이게 되고, 국민 분열과 국정파탄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라며 “지금이 새로운 차원의 정당을 건설하고 안정적인 양대 정당구도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거듭 역설했다.
한라에서 백두를 보네
그는 최근 자신의 정치적 결단이 실린 저서를 펴내면서 “민족의 미래를 꿈꾸고 절망과 싸우며 희망을 창조해 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적었다.
세상에 빛이 되고 자신을 통해 희망을 볼 수 있게 하겠다는 결심인 것이다. 그는 글을 시작하며 “희망으로 절망을 이긴다”고 했다. 추운 겨울밤 강물이 얼어붙는 소리에 놀라 잠을 깼던 기억을 더듬으면서 그는 “결빙은 마치 거대한 유리가 깨지는 것 같은 굉음을 내며 진행된다”고 표현했다.
지난 5년간 자신을 감싸고 있던 적대심을 얼음으로 치자면 그것들이 깨어지는 굉음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5년전을 회상하면서 “우리 사회를 갈기갈기 찢어놓던 냉혹한 광기와 함성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그 냉기류에 온 몸으로 맞서 싸웠고 소리를 질러 경고를 보냈으나 응답이 없었고, 몸을 던져 막아섰으나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이 의원은 “이렇게 5년의 세월을 나는 두꺼운 얼음 속에 갇혀 지내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시간은 위대하다. 나는 지금 얼음이 녹으며 깨지는 소리를 듣고 있다. 해빙이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며 절망을 벗어나는 대지를 응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지난해 12월 첫 눈이 내리던 날 한라산에 올랐다고 전하면서 “그 정상에서 시대의 진운을 호흡하고 미래의 지평을 바라보고 싶었다”며 “나는 이미 10년 전부터 국가경영에 뜻을 세운 사람이고, 늦었지만 지금이 곧 나를 밝힐 때라고 믿었다. 보태지도 빼지도 않고 숨김없이 나의 정치적 실체를 그대로 드러내려 노력한 결과가 이책”이라고 사실상 대권도전 선언했다.
이 의원은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 목표를 서술했고, 이제껏 쉬지 않고 우리 민족의 역사와 대화하고 미래를 향한 정치적 상상을 멈추지 않았다”며 “그 가운데 형상화된 나의 신념을 그대로 옮겨썼다”고 밝혔다.
또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서 당장 풀어나가야 할 개혁과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했다”며 “그동안 얼음 속에 갇혀 긴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한순간도 잠들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이 의원은 “새로운 시대의 소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가슴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하면서 “희망으로서만 절망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확인했다”고 서술, 연말 대선필승을 다짐했다.
이 의원은 책 초반부에 자신이 걸어온 삶에 대해 쓴 뒤 ‘경선불복’이라는 식의 자신을 향한 오해와 편견들을 해소하기 위해 힘썼다. 그는 1997년 이회창 후보와의 경선 이후 단독출마를 결심하게 되기까지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콜롬부스가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이라면 정치인은 민심을 항해하는 사람들 것”이라며 “바다가 생명을 포용하는 것처럼 민심은 새로운 희망을 갈구했고, 나는 희망을 찾아 분출하는 국민의 마음에 모든 것을 맡기고 국민신당이라는 작은 배를 만들어 항해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 열망이 있었고, 그 부름에 부응한 것이며, “세대교체를 이룬 신선한 지도력으로 새로운 비전과 목표를 세워 번영과 통일의 시대를 열겠다는 일념으로 외로운 항해의 닻을 올렸다”는 것이다.
그는 본선에서 이회창 후보와 김대중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자신에게 밀리자 각종 의혹설을 흘리며 네거티브 공방을 했다고 토로하면서 다만 자신을 끝까지 지지해준 20%의 국민과 그들이 던진 500만표의 소중함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의원은 저서에서 ‘오늘 나는 누구인가’라고 화두를 던진 뒤 “2002년 대선 경선에서 광풍에 쓰러진 지 꼭 5년의 세월이 흘렀고, 올해 다시 대선이 있는 해”라면서 “내가 국민에게 고한 대로 노 정권의 실체는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진정성을 알아줄 때가 됐다는 것.
그는 “다시 일어서서 절망하는 국민과 함께 희망을 만들기 위한 투쟁을 벌여나가려 한다”면서 “이번 대선 만큼은 반드시 이성이 승리해야 한다”고 적었다.
이 의원의 미래구상은 중반부로 가면서 구체화된다. 이 의원은 ‘어떤 나라를 만들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진 뒤 “미래사회는 지식강국이 되어야 한다”면서 이미 지식사회가 밝아오고있고,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종은 힘이 센 종족이 아닌 변화에 잘 적응하는 종이 강한 종이라는 논리를 세웠다.
또한 세계가 개방되면서 신 유목시대가 도래했으며 이 세계에서는 속력이 승패를 좌우한다는 것. 우리민족은 기마민족이었고, 그 기치아래 미래를 활짝 열어갈 저력이 있다고 그는 믿었다.
그는 지식강국의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수를 200명으로 줄이고>, <지방자치체계를 1단계로 줄여야하며>, <보통교육과 일반경찰을 지방자치로 넘겨야한다>고 했다.
또 <정부는 조직을 축소해 세부담을 줄이고>, <불필요한 위원회와 규제를 없애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용창출전략회의를 설치하고>, <민원처리 속도를 세계에서 제일 빠르게 해야한다> 면서 <공기업의 구조조정 또한 강도 높게 추진해야한다>고 했다. 국가 산림의 군더더기를 줄이고, 지방자치시대를 앞서 열어가야한다는 결론.
그는 활기찬 경제와 건전한 국가 재정을 위해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정부-대학-기업의 협력을 제도화해야한다며 그가 인도를 방문했을 때 경험했던 엔지니어들이 대접받는 사회를 그렸다.
또 금융, 자본시장을 개혁해 선진화해야하고 첨단과학기술연구개발에 국가역량을 집중하며 지식으로 농업을 재무장해야한다고 했다. 또한 경제성이 없는 선심성 대형국책사업을 축소하거나 폐기해야하며 함부로 파업할 수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건강한 삶과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양극화 극복과 복지체계의 변형, 국민이 문화를 향유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하며 성역 없는 정의로운 법치를 해야한다고 했다.
법관이자 변호사로서 인권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그는 정의법치 구현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세우고 있었다.
그는 끝으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방안을 제시하면서 포용정책의 수정과 튼튼한 안보의 틀을 새롭게 만들고 한반도 비핵화를 관철해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