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우동석 기자] 한국은행이 '달러화 강세'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한은을 압박해왔다. 한 마디로 기준금리를 내리라는 요구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 달 29일 호주에서 G-20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 회의 때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를 만난 뒤 "금리의 '금'자도 얘기 안 했지만 척하면 척이다"라고 말했다. 알아서 금리를 내려달라는 압박이었다.
한은은 이런 요구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표시했다. 이주열 한은총재는 "성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정책을 했지만 재정·통화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무엇보다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맞받아쳤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 경제가 견조한 회복세를 보이자 달러화도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원·달러 환율은 어느새 달러당 1060원을 넘어섰다. 원·달러 환율이 지난 7월 3일 1008.5원까지 떨어졌던 것을 감안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이처럼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금리 인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정책 카드다. 금리 인하는 원화가치 하락을 부추겨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을 가속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달러화 강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미국이 양적 완화조치 마무리 수순에 들어간 데 이어 머지않아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3일 "보통 미국의 금리가 상승할 때 글로벌 금리도 올라가고 우리도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미국의 금리 인상은 국내 금리 상승요인"이라고 말했다.
최근의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하는 적절치 않다는 뜻이다.
미국이 이르면 내년 초부터 금리를 다시 올릴 경우 한·미 양국의 정책 금리 차이는 줄어든다. 이는 해외 투자자들의 국내 시장 이탈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한은 관계자는 "미국과 한국의 금리가 비슷한 수준이라면 투자자들이 과연 어느 쪽에 투자하겠나"라며 "외국인의 주식 보유 비중은 40%에 가깝고, 채권 보유 비중도 29%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조만간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큰 데 우리가 금리를 인하하면 국내 증시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더욱이 원·달러 환율 상승은 디플레이션 우려를 줄이는 데도 기여할 전망이다. 원화 가치 하락은 수입 물가 상승을 가져와 일정한 시차를 두고 소비자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편 한은에서는 '엔저(低) 위협론'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기류가 엿보인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 환변동 보험 등을 통해 대비했어야 하는 데 금리 카드로 대응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한은 관계자는 "엔저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다양한 헤징 수단이 시장에는 이미 있지 않느냐"며 "엔저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면 위안화가 평가절하되도 금리를 끌어내려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