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을 거부한다!
미군기지가 용산을 떠나야 하는 6가지 이유
100여만 평 규모의 용산 미군기지는, 작게는 용산구 전체 면적 중 중심부의 15.9%를 차지한 채 동서를 절단시켜놓고 있으며, 크게는
서울의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앉아 인구 천만이 사는 도시의 사통팔방 흐름을 막아서고 있다. 반세기 동안 꿈쩍하지 않고 버텨 온 용산 미군기지가
최근 아파트건설 논란으로 ‘미군기지 이전하라’는 여론의 파상공세를 맞고 있다.
돈 받고 셋방살이
용산기지가 미군의 주둔지가 된 것은 2차 대전의 전승국인 미국이 한반도의 남쪽을 관리하면서 부터이지만 전쟁기간 중 남한정부가 군작전권을
미국에게 넘겨준 것이 보다 실질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후 1954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으며, 이를 근거로 군주둔지 사용에 관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일명 소파)이 만들어졌다. 협정에 의해 한국은 미국이 주둔하는 부지를 무상으로 무기한 공여하는 것은 물론 주둔에 따른
재정적, 법행정적 지원을 해주고 있다.
미국이 무상으로 제공받은 땅에 세운 기지수는 90여 개에 달하며, 그 전체 면적은 1억여 평으로 서울시 전체 면적의 반에 해당한다. 1993년
국방부 발표에 의하면 미군이 사용하는 기지를 유료화하면 그 금액이 연 24억 달러(약 1조 9천억 원)에 달한다. 바뀌어 말하면 한국정부가
미군의 주둔을 위해 부동산 가격으로 연 2조 원을 부담한다는 뜻이 된다
미군의 주둔으로 전쟁억지력이 강화되었고, 한국군의 국방력 강화되었지만 동시에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영토권의 제약, 토지의 무단점유,
도시토지이용체계의 불구화, 주변 생태환경의 유기적 파괴, 미군 범죄 등과 같은 문제를 발생시켰다. 특히 미군기지 중에서도 미군사령부가 위치한
서울의 용산기지는 이 같은 문제점들이 응축되어 있다.
서울 도시계획의 걸림돌
미군의 총사령부가 있는 용산기지는 군기지 자체로서 인근의 각종 토지이용활동을 억제하고 통제하며 배제시키고 있다. 실제, 용산기지 주변 건물의
높이, 형태, 향, 창문의 방향, 용도, 통행, 도로 등은 필요 이상으로 극도로 통제를 받고 있으며, 그러한 통제는 자연스럽게 용산기지를
서울의 교통흐름이나 공간축 형성과 단절시켜 서울 대도시 공간 자체를 왜곡시키고 있다.
그것의 가장 비근한 예가 바로 동작대교이다. 한강에 걸쳐 있는 모든 다리는 서울의 남북을 잇는 목적으로 건설되어 있는 만큼, 다리의 북단은
항상 남쪽에서 올라온 방향을 그대로 타고 북으로 향하지만, 동작대교 북단에서만 길의 진행이 단절되어 있다.
또 다른 유사한 예는 지하철 4호선이다. 서울역에서 동작대교를 건너 과천으로 이어지는 4호선이 서울역에서 동작대교까지 이어지기 위해서는
으당 용산기지를 경유했었야 하지만, 이 또한 군사적 기밀시설이 많은 용산기지를 미군 당국은 아무리 지하라 해도 내주지 않았으며, 그 덕택에
4호선은 용산기지를 피하기 위해 서울역에서 삼각지와 한강로를 따라 내려와 이촌으로 꼽으라지는 해괴한 곡선 노선이 되었다.
용산기지 비즈니스 특구(特區)
용산기지는 미군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공여받은 땅이다. 하지만, 실제 기지부지는 다양한 군사외적인 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용산기지
내 골프장이 우선 그러하다. 군인들의 휴양시설이란 측면에서 골프장은 군시설의 일부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도심에 있을 긴요한 군시설은
결코 못 된다. 용산기지 내 시설의 많은 부분은 사실 군사활동과 무관한 것으로 그 중 다수는 수익시설로 운용되고 있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미군은 용산기지 내에 설치한 클럽, 양식당, 슬롯머신 6천여대, 7개의 골프장 등의 위락시설을 운영해 2천9백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는
데, 그 이용객의 80%는 한국인이었다.
또 미군은 객실규모 90개의 드레곤 랏지라는 호텔을 불법 건축하다가 해당구청에 의해 적발되어, 이를 둘러싸고 구청과 힘겨루기가 벌어졌지만,
구청장의 퇴진으로 모든 게 없었던 것으로 되었다. 또한 군사용으로 제공받은 부지의 일부를 국내 택시회사에 대여해 매년 수억 원의 부당이익을
얻어 지탄받은 바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 한국에 가면 미국법
불법과 탈법, 그리고 주권의 부정은 기지 내에서만 아니라 밖에서도 관철되고 있다. 인근지역의 유흥가에서 미군들이 살인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영내로 숨어들어 국내의 수사기관이 전혀 손을 써볼 수 없는 사건들은 용산기지와 관련해서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같은 미군 범죄에 대해
우리정부가 적절히 대응할 수 없는 것은 미군의 권익을 일방적으로 보호하도록 되어 있는 한미주둔군지위협정(소파법)의 규정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주둔군들이 다양한 경범을 저지르고도 그에 따른 주둔국의 법적 제제를 받지 않거나 이를 무시하는 경우가 너무나 비일비재하다.
그 전형이 바로 주한미군 소속 차량의 불법 주·정차에 따른 단속 및 과태료 부과를 무시하는 처사이다. 용산구의 통계에 의하면 지난 5년간
주한미군 소속 차량에 대해 3억8천5백8십8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지만 납부율은 불과 4%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소파법으로 미군은 주둔군으로서의
특권적 지위와 편익을 얻고 있지만, 이로 인해 인근 주민들은 부당한 희생·피해·비용(예, 폭력피해, 주정차공간의 박탈)을 강요받고 있다.
역사바로세우기
역사를 통해 용산은 늘 중요한 군사요지였다.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중요성으로 인해 나라가 외세에 의해 짓밟힐 때마다 용산 일대는 어김없이
주요한 주둔지가 되곤 했다. 700여년 전 고려를 침략한 몽고군은 용산을 병참기지로 사용하였으며, 임진왜란 당시에는 평양전투에서 패한 왜군
원효로 4가와 청파동 일대에 주둔한 바 있다. 1892년 임오군란 때는 청나라 오장경이 이끌던 3천 여명의 병력이 주둔하였으며, 1884년
청일전쟁이 터졌을 때는 일본의 오시마 육군소장이 지휘하던 약 6천 여명의 군대가 효창동 일대에 머물었다.
현재와 같이 외군의 주둔지가 된 것은 일제 강점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일본은 조선주둔일본군사령부와 조선총독부 관저, 그리고 20사단 사령부를
세웠다. 1945년 해방되던 9월에 미 육군 제 24사단이 서울에 진주하면서 일본군의 병영을 접수했다. 이후 미군이 반세기 동안 용산을
차지하고 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용산은 주체가 뒤바뀌어 왔고, 박탈당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문제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용산이 죽어간다
반세기 동안 미군이 차지하고 있는 용산기지는 개발의 역풍이 미치지 못했다. 이에 기지내 대규모 녹지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철저히 통제받는
군사공간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환경문제와 관련해 보호조치를 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00년 2월에 발생하고 7월에 그 전모가 드러난
포름알데히드의 불법방류사건은 기지부지가 반환경적이고 반생태적임을 여실히 증명해 주었다. 생태환경에 치명적인 손실을 끼치는 극독물을 미군책임자의
지시에 따라 불법으로 방류한 이 사건은 미군기지가 불법적인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장소이면서 국내외의 환경관련 법적제제를 받지 않는 ‘환경통제
불능지역’임을 보여주었다.
용산기지 이전과 그 활용방안에 대해 지속적인 연구와 활동을 벌이고 있는 단국대 조명래 교수(지역개발학)는 “국력이 약해 우방국의 도움을
받는 것이 불가피했던 시절에는 어떠했을지 모르지만, 세계경제 10위라고 자부하며, 자주국방을 감당할 수 있는 지금, 미군의 주둔과 그에
따른 문제들은 대등한 입장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병현 기자 sama1000@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