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왜곡, 과장된 인간들의 모습
20세기 거장들의 조각을 한자리에 <현대조각과 인체>展
고대부터 현대까지 예술가들이 가장 많이 표현한 소재를 꼽는다면 바로 인체를 들 수 있다. 예술가들 뿐만이 아니라 이를 감상하는
이들에게도 ‘인체’는 친근하고 익숙한 소재다.
이 점에 착안한 로댕갤러리는 겨울방학을 맞아 지난 12월 14일부터 <현대조각과 인체>전을 열었다.
전시회를 기획한 태현선 연구원은 “그림과 같은 미술작품들과는 달리 조각은 대중들과 가깝지 않은 까닭에 모두가 이해할 만한 ‘인체’를 주제로
조각전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조각은 사실적인 표현을 거부하고 인체를 이탈하기 위해 다양하게 표현되는데 이
변화와 흐름을 보여주기 위함도 하나의 목적이라고 태 주임은 덧붙여 설명했다.
이번 조각전에서는 로댕갤러리의 대표적 작품인 로댕의 <지옥의 문>, <깔레의 시민>을 포함해 모딜리아니, 미로, 마이욜,
부르주아 등 20세기 거장들의 조각작품 22여점을 전시했다. 몇몇 개인소장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호암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을
전시해 놓은 것이다.
로댕에서부터
루이즈 부르주아까지
이번 전시는 갤러리 입구에 전시되어 있는 로댕의 <지옥의 문>과 <칼레의 시민>으로 시작된다. 전통에서 현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근대조각은 로댕, 부르델, 마이욜의 3대 거장들의 작품으로 대표된다. 이 중 기존의 전통양식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독창적이라
평가받고 있는 로댕의 <지옥의 문>은 단테의 <지옥편>을 소재로 한 것으로 거대한 문의 형태다.
인간의 희노애락을 나타내는 군상들로 이루어진 <지옥의 문>은 윗 부분은 지옥에 떨어지기 전 인간의 모습을, 아랫 부분은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앙트완느 부르델의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와 아리스티드 마이욜의 <드뷔시를 위한 기념비>는 로댕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사실주의 표현에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부르델의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는 고대 그리스 인물인 헤라클레스를 주인공으로 삼았으나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표현하며 절대적인 미에서 벗어나려 한다. 쭉 벌어진 다리와 강조된 근육, 하늘을 향한 눈과 활시위는 긴장감을 그대로 전해준다.
초현실주의 작가들로 불리우는 알베르토 자코메티와 헨리 무어, 세자르는 전통에서 벗어나 인체를 독창적으로 변형시켰다.
알베르트 자코메티의 작품으로는 <거대한 여인Ⅲ>과 <베니스의 여인Ⅶ>이 전시되었는데그의 작품은 길고 야윈 것이 특징이다.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감축했다는 그는 여인들의 신체를 길게 늘려 어깨 아래부분은 거친 터치로 대신하고 있다. 그가 인체의 외형보다는
인간의 정신적인 면을 전달하는데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외에 헨리 무어의 <모자상>과 고철들로 이루어진 세자르의 <브리짓 나딘>이 전시되어 있다.
데이빗 스미스, 이사무 노구치, 조엘 샤피로에 오면 언뜻 보아서는 인체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데이빗 스미스의 <세 개의 원과 판들>은 둥근 철판과 네모난 철판을 용접하여 인체의 모습을 연상케할 뿐이다. 조엘 샤피로 또한
마찬가지다. 나무토막을 재구성해 청동으로 주조한 <무제>는 마치 인물이 앞으로 혹은 뒤로 쓰러질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로 인한 긴장감은 작가의 물질성에 대한 관심과 불안정한 현대인의 모습을 시사한다고 한다.
20세기 현대조각의 끝을 보여주고 있는 루이즈 부르주아의 <밀실>. 벽이나 철망으로 이루어진 공간 안에는 세 개의 머리모양 오브제와
거울이 설치되어 있다. 파편화시킨 신체를 통해 인간의 사고와 심리를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부르즈아의 전형적인 작품으로 고립된 공간인
밀실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인간의 얼굴을 날카로운 코, 길고 작은 눈, 조그만 입으로 단순화시킨 모딜리아니의 <무제>와 2미터가 넘는 거대한
조각에 갈퀴, 조개 껍질 등을 이용해 청동 조각한 호안 미로의 <여인>이 눈에 띈다.
인체는
영원한 영감의 원천
이번 현대조각전은 무엇보다 20세기 거장들의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태현선 연구원은 “교과에서만 보던
유명한 조각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전시하므로 학생들이 조각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댕부터 부르주아까지 현대조각을 대표하는 이들의 작품에서 관람객들은 20세기 조각에서 인체들의 모습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는 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인체로부터 이탈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이들의 노력은 인체를 단순화하고 왜곡, 과장함으로써 다양한 조각형식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의 모습 속에서도 작품들은 결국 인체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태 연구원은 강조했다.
“20세기 조각에서 인체는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체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작가들의 새로운 시도들은 결국 인체로부터 시작해
추상화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태 주임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대가 바뀌고 새로운 창조기법이 등장해도 인체는 전통과 현대조각을 아우를 수 있는 주제임을 보여준다.
인간들의 내면에 인체에 대한 애착이 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0세기 현대조각을 정리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전시회지만 한국조각들이 빠진채 외국조각들로만 전시되었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로댕갤러리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조각과 같은 예술품 관람이 어렵고 지루하다라는 기존 인식을 바꾸기 위해 여러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관람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여러 조각작품들을 드로잉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제출된 드로잉들 중 몇 점을 선정하여 기념품을 제공하고
홈페이지에 전시한다.
또한 문화자원봉사 도슨트의 전시작품 설명회와 가족의 날 행사, 로댕갤러리 음악회도 함께 진행되어 이번 전시회는 어느 전시회보다도 알차고
풍성하다.
문의: 로댕갤러리 02)2259-7781~2
이혜선 기자 hyesu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