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마법사’로 불리는 지도자. 두바이의 기적을 창조한 셰이크 모하메드(Sheikh Mohammed,58) 빈 라시드 알 막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총리 겸 부통령이 21일 오후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경제장관, 에너지 장관, 수전력 청장 등 주요 각료와 오바이드 알테일러 두바이 상공회의소 회장과 셰이크 타릭빈 화이잘 알카시미 에미레이트 인베스트먼트그룹 회장, 압둘라 알투리피 증권상품거래소 소장, 경제인 100여명과 함께 서울을 찾은 모하메드 총리 일행은 국내 정치, 경제 분야 지도자들과 잇따라 만나면서 한국 기업을 상대로 두바이 문호를 더욱 넓히겠다는 뜻을 밝혔고, 우리측도 두바이 개발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모하메드 총리는 이날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강덕수 STX 회장, 전윤수 성원그룹 회장, 장지종 중기중앙회 부회장 등 국내 경제인 200여명과 만찬을 함께 하면서 “양국간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 앞으로도 더욱 돈독해지도록 노력하자”고 운을 뗐다. 모하메드 총리는 이어 “두바이는 계속 발전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발전의 여지가 많고 앞으로 개발 계획도 많다”면서 “아울러 한국의 참여 기회 역시 많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만찬에는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 김호영 외교부 차관도 함께 했다.
모하메드 총리는 22일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모하메드 총리에게 중동 최대의 신흥도시인 두바이의 건설, 플랜트, 부동산, IT 등 각종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의 참여가 확대될 수 있도록 배려와 협조를 당부했으며, 모하메드 총리도 화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하메드 총리는 두바이를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시키고 낙후된 북부 도시들의 균형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에 집중된 경제관계에서 벗어나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확대해 나갈 계획임을 밝혔다고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
우리와는 에너지 외에 여타 분야 협력을 확대,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 나가기를 희망했으며, 우리 기업들의 두바이 투자 진출을 환영했다.
노 대통령과 모하메드 총리는 또 지난해 5월 노 대통령의 UAE 방문 당시 양국 경제협력 증진 방안을 담은 공동성명의 후속 조치에 대해서도 논의했고 당시 노 대통령은 두바이의 발전상이 매우 인상적이었음을 밝혔다. 예방에 이어 진행된 오찬 자리에는 우리측 기업인으로 이용구 해외건설협회장, 권홍사 건설단체총연합회장, 서영태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등이 참석했다.
모하메드 총리는 이날 오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한덕수 총리와 면담하고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만찬을 함께 했다.
모하메드 총리는 한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한-UAE 경제공동위원회 출범 등 양국간 경제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만찬 자리에는 두바이에 진출한 우리 건설사 대표인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 이상대 삼성물산 건설 부문 대표이사 사장 등이 참석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날 우리측에서는 방위산업 협력, 와이브로 기술 수출, 아랍에미리트의 제주투자 문제 등에 관심을 보였고, UAE 측에서는 IT기술 및 인력지원 등에 집중도를 보였다.
모하메드 총리는 이번 방한을 위해 자국의 경제사절단 120여명을 이끌고 왔을 정도로 경제협력에 의지를 보인 것. 이같은 그의 노력은 국내 굴지 건설기업인 성원건설이 UAE 두바이 구도심 재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결과로 이어졌으며 성원건설은 총리가 방한한 당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발주처인 ‘데이라 인베스트먼트 컴퍼니’와 총 200억달러(19조원) 규모의 두바이 인공섬 근처 데이라 지역 구도심 재개발 사업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데이라 인베스트먼트는 셰이크 모하메드 두바이 국왕의 지원 아래 두바이의 대규모 개발사업을 수행할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로 이 회사 셰이크 아메드 최고 회장은 국왕의 사촌동생이다.
이에 따라 성원건설은 두바이 항만 물류의 중심지인 데이라 지역 295만여평에 주거, 상업, 물류시설 등을 건설하게 되며 1~3차로 진행되는 전체 사업 중 사업 내용이 구체화된 1차 사업은 50억달러(4조8000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두바이 지도자 모하메드는 누구?
셰이크 모하메드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국가 지도자다. 그는 두바이라는 미지의 소국을 ‘세계의 브랜드’로 키웠다. 그는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1949년 전 두바이 지도자 셰이크 라시드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생 시절 월반(越班)했고, 17세 되던 66년엔 영국 케임브리지의 명문 어학교육기관인 벨어학스쿨에서 수학했다. 영국 몽스사관학교를 졸업할 때는 외국인 사관생도에 주어지는 ‘영예의 검’을 받았다. 그는 19세 되던 해인 68년 두바이 경찰총수로 임명돼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또 71년 12월에는 22세의 어린 나이에 세계 최연소 장관에 올라 연합방위군 설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지난해 한국에서 ‘두바이 열풍’이 불었을 때 그는 이 핵심에 있었다. ‘관광지’ ‘물류중심지’ 등 오늘의 두바이를 있게 한 장본인이다. ‘7성 호텔’로 유명한 부르즈 알-아랍 호텔과 야자수 모양의 인공섬 ‘팜 아일랜드’ 계획, 디즈니랜드 8배 규모의 ‘두바이 랜드’도 셰이크 모하메드 총리의 아이디어다. 2005년 타임지(誌)는 그를 ‘세계를 변화시킨 지도자 100명’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세상을 놀라게 한 그의 리더십의 원천은 절대군주제에선 상상할 수 없는 개방성과 합리성에 있다. 자문단의 자유로운 토론과 의견 개진을 포용할 줄 아는 넓은 도량으로 그는 두바이를 ‘아라비아의 카멜롯’으로 만들었다. 방한 직전 사재 100억달러를 중동지역 교육사업에 쾌척, 세상을 감동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