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우리들의 모습이야”
<콘트라베이스와 플룻>, <연극이 끝나고 난 뒤>로 보는
‘예술가의 일상’
누구나 책을 읽고 슬픔에 젖어 눈물을 흘렸던 경험이 있다. 이 뿐인가? 사람들은 배우의 코믹연기에 박장대소하고 아름다운 음악에
사랑을 느끼기도 한다. 이처럼 예술은 사람들의 희노애락을 만들어내는 신기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작품을 창조하는 예술가를 향한 사람들의
눈은 경이로움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예술가에 대한 환상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 점을 알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예술가에 대한 환상을 쉽게 깨지 못한다. 이상적인 모습의 예술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또다른 자신과도 같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의 자아도취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연주자와
배우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다
극단 동숭무대는 화려한 예술가의 모습이 아닌 이들의 일상에 초점을 맞춘 두 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콘트라베이스와 플룻>과
<연극이 끝나고 난 뒤>가 그것이다.
<콘트라베이스와 플룻>은 제2회 2인극 페스티벌 참가작으로 콘트라베이스와 플룻연주자가 동거생활을 하며 겪게되는 우여곡절의 이야기다.
콘트라베이스와 플룻의 연주로 시작되는 첫 장면. 배우들의 손에는 악기가 없지만 익살스런 표정과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에 관객들은 이들이 인형과도
같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독특하고 우스꽝스러운 첫 장면은 마지막에도 반복되어 연극의 주인공이 연주자임을 관객들에게 각인시킨다.
콘(콘트라베이스 연주자)과 플룻이 같은 방을 살게 된 이유를 연출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콘과 플룻은 예술가이기 때문에 잘 살 수 있다고
서로 자기생각에 빠져 있었던 거죠.” 그러나 연극에서는 이 점이 정확히 표현되지 못하고 있다. 예술가이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동거를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아무튼 연극은 동거의 계기보다 콘과 플룻의 동거생활에 주목하고 있다.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도 다툴 정도로 이들은 서로에게 잘 맞는 상대가
아니다.
“콘, 난 항상 셰익스피어를 읽고 자요” “뭐요? 한심한 섹스피어의 소설들을 읽는다구요?” “섹스피어가 아니라 셰익스피어예요”
악기의 크기와 소리가 너무도 상반되는 콘트라베이스와 플룻의 설정이 의도였음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들의 동거가 끝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는 것은 플룻의 꿈이다. 사탄의 옷을 두른 플룻이 콘에게 욕설을 퍼붓는 장면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이들의
마음 속에 이해가 아닌 시기와 불신만이 남았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콘트라베이스와 플룻>은 인형기법을 이용한 연주장면과 레고 장난감을 이용한 무대장치 등 연출자의 각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러나
연출자의 각색에도 불구하고 연극의도는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자아도취에 빠진 예술가의 일상을 그려내기에는 동거계기 등의 개연성이
부족하다.
이에 비해 <연극이 끝나고 난 뒤>는 독특한 연출 없이도 예술가의 일상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극중 배우인 로제와
마샤의 고통과 꿈, 기분에 휩쓸리는 방탕함.
“로제, 권총이 필요해. 우리 그거 없잖아” “맞다. 연극하는데 필요한 권총도 사야지? 여주인공의 멋진 옷과 기타도 있었음 좋겠다.”
일정한 수입도 없는 로제와 마샤는 간만에 받은 공연 수익으로 그동안 갖고 싶었던 물건들을 살 생각으로 행복에 젖어 있다. 그러나 첫 장면에
나오는 이들의 행복한 꿈은 허영을 가리킨다. 충동적인 말과 행동은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는 술집에서 나누는 로제와 마샤의 대화를 통해 연극계의 뒷얘기를 거침없이 드러낸다.
“우리가 왜 이 꼴인줄 알아? 바로 돈 때문이야. 돈!” “여기서 벗어나려면 공동출자를 해야해. 그러면 우리는 하고 싶은 연극을 할 수
있는데.” “우리가 무슨 인형이야?” “나쁜 놈” “쪼다” “병신”
100년전에 쓰여진 단편이지만 지금 연극의 현실과 너무도 비슷하다. 극단의 꼭두각시인 배우, 재정이 열악한 연극계 상황, 제작자에 대한
험담 등은 보는 이에게도 가슴 아픈 얘기다.
이 연극에서 ‘술’은 무절제함을 상징한다. 맥주에서 포도주, 최고급 양주까지 주문하는 이들의 모습은 허영과 방탕함의 절정에 다다른다. 현실을
원망하는 로제와 마샤는 술을 통해 자신들의 꿈과 성공에 다가가려 하고 있다. 연극계의 뒷얘기를 늘어놓던 이들에게 잠깐 가졌던 동정의 시선은
싸늘해지고 만다.
그렇지만 그들은 연극에 대한 순수한 꿈을 간직하고 있다.
“넌 어떤 연극을 하고 싶어?” 마샤가 묻는다. 로제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한다. “나의 연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이렇게 말하며 그들은 또 술잔을 부딪히지만 방탕한 삶보다는 진지한 삶이 부각된다. 시종일관 삐딱했던 시선이 좀 누그러진 느낌이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는 <콘트라베이스와 플룻>보다 더욱 직설적이다. 이 작품에 배우로 참여하는 한 여우의 “고해성사와도
같았다”는 말에서 이 연극이 배우들의 일상을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이 잘 표현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예술가의
일상에 비친 우리의 모습
‘예술가의 일상전’이라 불릴 만한 <콘트라베이스와 플룻>과 <연극이 끝나고 난 뒤>는 안톤 체홉의 단편 꽁트를 각색한
것이다. 안톤 체홉의 두 단편은 관객들을 웃고 울리는 예술가들이 실제 생활에서는 시기, 질투와 방탕을 일삼고 있다고 고발하고 있다. 각색과
연출을 맡은 하일화 씨는 “안톤 체홉은 풍자를 넘어 그들을 혐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색과정에서 ‘혐오’는 많이 사라진 듯 하지만 비딱한
시선은 여전했다.
무대 위에 올려진 이들의 일상은 사건이 중심이 아닌 평소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래서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예술가들의 일상에 웃음보다는 씁쓸함이
앞선다.
예술가들의 일상이 과연 그들만의 모습일까? 연출자의 말에 그 대답이 들어 있었다.
“IMF때 실직자와 술을 먹은 적이 있어요. 그들이 하는 말이 ‘잘나가게 되면 무엇을 하겠다’, ‘나의 능력보다 대우를 못 받는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더군요. 똑같은 내용을 연극에 담았습니다.”
예술가들의 일상에서 우리의 모습이 보였던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연극 내내 예술가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흐름의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대사와 표정 하나하나에 거울을 보듯 우리가 보인다. 두 편의 연극은 관객들이 예술가에 대한 환상을 깨고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일시: 2월 3일까지
장소: 대학로 강강술래 소극장
문의: 02)941-7042
이혜선 기자 hyesu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