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와 코미디의 새로운 배합
스페인 대표감독 페르난도 트루에바의 ‘꿈속의 여인’
요즘 영화들은 홍보에서 굳이 예술성을 숨기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상을 받았다니, 주제의식이 깊다느니 하는 카피는 지워버리는
것이 흥행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술영화라고 하면, 죄다 지루하거나 어려우리라는 선입견이 만연하다. 그점을 의식한 때문인지, 영화 ‘꿈속의 여인’의 수입사 백두대간도
마케팅에 톰크루주의 연인으로 유명한 여배우 페넬로페 크루즈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 영화가 스페인 아카데미 고야영화제를 휩쓸었다거나, 1992년
영화 ‘아름다운 시절’로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페르난도 트루에바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이 몇 년 전이라면 제법 효과 있는
홍보문구가 아니었을까.
사랑의
권력과 정치권력의 줄다리기
수상이 영화의 보증수표가 되는 것도 우습지만, 수상이 숨겨져야 하는 현실은 더욱 씁쓸한 구석이 있다. 대중문화의 시대에, 대체 예술영화와
오락영화의 이분법은 합당한 것인가. 이런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예술영화라는 타이틀이 곧 지루함을 의미하지 않음은 당연한 사실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스페인 영화 ‘꿈속의 여인’은 예술영화라는 타이틀보다는 유쾌하고 날카로운, 썩 잘 만들어진 오락영화라고 칭하는 편히 어울린다.
‘꿈속의 여인’은 제2차 세계대전의 신고를 알리던 1938년을 배경으로 한다. 히틀러는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스페인의 내노라 하는 배우와 감독을 데려와 영화를 찍게 한다. 마까레나(페넬로페 크루즈)를 비롯한 스페인의 스타 배우들은 이렇게 해서 독일
우파(UFA) 스튜디오에 오게 된다.
히틀러의 오른팔이자 문화선전부장이었던 괴벨스(요하네스 실베르쉬나이더)는 한눈에 마까레나에게 반하고, 마까레나와 내연의 관계였던 영화 감독
블라스(안토니오 레지네스)는 자신의 영화완성을 위해 마까레나를 괴벨스에게 넘긴다. 하지만 마까레나는 집시 수용소에서 촬영장의 엑스트라로
전출되어 온 레오에게 끌린다. 여배우 마까레나를 둘러싼 로맨스를 축으로 권력자와 예술가에 대한 풍자가 영화의 내용이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탄탄한 드라마
영화의 가장 돋보이는 점은 캐릭터 설정이다. 등장인물이 결코 적지 않지만, 모두 개성있고 매력적이다. 사랑과 성공 사이에서 갈등하는 블라스,
악명에 걸맞지 않게 마까레나 앞에서는 넋을 잃는 괴벨스, 허풍쟁이 훌리안, 출세욕에 불타는 루시아, 배우들의 왕엄마 로사, 게르만민족의
우월감으로 똘똘뭉친 동성애자 하인리히 등 나열하기도 벅차다. 여배우 페넬로페 크루즈는 아름다움은 물론, 노래와 춤솜씨까지 선사한다.
탄탄한 시나리오도 돋보인다. 밀고 당기는 로맨스에 후반부로 갈수록 고조되는 긴장감과 속도는 이 영화를 썩 잘만들어진 대중영화로 결론짓게
하는 이유다. 페르난도 감독 특유의 세련된 코미디 감각은 대중적 코드와 날카로운 풍자를 동시에 안고 있다.
‘꿈속의 여인’의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은 픽션과 논픽션의 만남이다. 괴벨스나 마를렌느 디트리히 등의 실존인물 재창조와 우파
스튜디오의 재현, 다큐멘터리 필름을 연상시키는 첫 장면 등이 그것. 무엇보다 로맨스와 코미디가 배합되었지만 헐리우드식 로맨틱 코미디와는
다른, 새로운 매력을 창출한 것이 이 작품의 미덕이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