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의
수호신, 말 (午)
임오(壬午)년 맞아 <새 천년의 역군, 힘과 희망을 주는 말> 특별전 열려
2001년 12월,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으려는 산모들의 발길로 산부인과는 인산인해를 이루웠다. 2002년이 되기
전에 아이를 출산하기 위한 움직임은 하나같이 말띠해에 여자아이를 낳지 않기 위해서였다. 예부터 말띠 여자들이 팔자가 세다는 속설이 전해져
왔었기 때문. 국립민속박물관 학예가 구문회 씨는 속설이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확산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는 말띠 여자에 관한 속신이 없었습니다. 조선시대에만 해도 말띠 왕비가 많았지요. 이야기는 일본 도쿠가와 막부시대에
생겨났어요. 여자들 중에 극성스러운 여자들이 많았나봐요. 이후 일본에서는 말띠 여자가 시집가면 남편을 깔고 앉아 기세를 꺾기 때문에 말띠를
피하는 습속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말에 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없애고 우리문화에서 가지는 말의 의미와 모습을 찾고자 국립민속박물관은 한국마사회와 공동으로 <새 천년의
역군, 힘과 희망을 주는 말>(이하 말)특별전을 개최했다. 3월 4일까지 48일간 펼쳐지는 <말>특별전에서는 다양한 말의
모습을 사진, 그림, 유물, 책 등을 통해서 볼 수 있으며 말에 얽힌 속담과 이야기는 만화로 소개하고 있다.
신화에서 생활 속 모습까지
<말>특별전에서는 말에 관한 모든 것이 전시되어 있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말의 모습은 시대마다 말의 의미와 기능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근대시대, 말은 교통수단 및 생활수단이었다. 또한 하나의 신앙으로도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유물로 확인할 수 있다. 근대에 와서는 말의
여러 기능들이 퇴화하면서 잊혀져 갔지만 현대에 이르러 말은 여러가지 의미나 상징으로 생활 곳곳에 다시 이용되고 있다”
학예가 구 씨의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말은 아주 오래전부터 주요 교통수단으로 이용되어왔다. 말을 빌릴 수 있는 증빙으로 사용하던 ‘마패’와
말의 두수현황을 점으로 표시한 ‘각도마필분포도’는 말의 쓰임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한다. ‘편자(말발굽)’와 ‘말안장’, ‘말안장덮개’등도
말이 교통수단으로 애용되면서 나타나게된 물품들이다. 옆에는 조선시대 말과 소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간행된 ‘마의방’도 보인다.
말은 마을을 지키는 기병과 장군의 모습에 빗대어 민간신앙으로도 자리잡았다. 구 씨는 “마을사람들에게 말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을
상징한다. 말을 타고 온 장군처럼 사람들은 말이 온갖 어려움으로부터 자신들을 구제시켜줄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을 갖게 되었다”며 십이지
말 그림을 가리켰다. ‘만봉스님의 십이지 말그림’과 ‘목각 십이지 오상’, ‘전 김유신묘 십이지 오상 호석탁본’ 은 바로 이러한 믿음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말에 얽힌 신앙은 공주시에 위치한 ‘마성황당’사진과 마을 수호신이 잡귀들과 싸울 때 타고 다니는 말조각인 ‘국시말 조선’에서도
엿보인다.
말인형은
주로 무덤 속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이승에서 저승까지 말을 타고 가라는 조상들의 계세사상을 말인형에 담은 것이다. 상여의 앞뒤에 부착하는
‘시립용’이나 ‘고종 인산때 죽안마 행렬’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외에도 백제시대 풍납토성에 발견된 ‘말의 턱뼈’는 불(火)을 의미하는 말이
기우제의 희생물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말’은 교통수단과 민간신앙에서뿐만이 아니라 생활 곳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 원형 테두리 속에 쌍마를 새긴 ‘별전’이나 고려시대
성행했던 놀이 ‘격구’를 보면 돈과 놀이로 이용됐음이 확인된다. 또한 말의 꼬리로 만든 ‘망건’, ‘탕건’, ‘사모’, ‘갓’ 등도 전시돼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오늘날에 말은 상징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장기알의 마(馬)와 말표 브랜드, 숭실대학교 상징인 백마, 야구단과 축구단의 마스코트, 말 캐릭터
등 말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또다른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강한 힘과 역동성, 남성으로 대표되는 말의 의미는 여전히 살아있다.
만화에
담긴 말이야기
이번 전시회에서는 전해져 오는 유물과 자료로 다 보여줄 수 없는 말에 관한 이야기를 정동희 씨의 만화를 통해 전해주고 있다. 다른 전시회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발상이다.
만화를 살펴보면 말에 얽힌 이야기와 속담, 신화 등이 가득하다. 말은 어떻게 잘까? 말은 힘줄로 근육에너지의 소모를 억제하면서 서서 잔다고
한다. 맹수가 가까이 오면 쉽게 도망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기다란 목 또한 힘줄이 있어 고개를 곧게 세우고 자도 지치지
않게 도와준다. 그래서 예부터 말이 누워 있으면 어딘가 아픈 거라고 알려져 있다.
‘말날’이라는 것도 있다. 우리 조상들은 ‘말날이 좋은날’이라 하여 정월 상오일(上午日)에 간단히 제사를 지내고 찬을 주어 말을 숭상하였다.
또한 말날 장을 담그면 맛이 좋아진다고 한다. 말이 좋아하는 콩으로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맛있다의 ‘맛’과 ‘말’의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등 이에 대한 해석도 가지각색이다.
말띠 여자가 팔자가 세다고 잘못 전해지고 있는 이야기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져 있다. 결혼식에 얽힌 이야기도 많다. 옛날에는 결혼을 할 때
꼭 흰말을 탔다고 한다. 흰 말이 순결과 광명을 나타내 결혼식이 신성하고 부부의 앞날이 길해지기를 바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 말이 신부집에
크게 울면 첫아들을 낳고 결혼식날 비가 와 말발이 비에 젖으면 잘 산다고 전해진다.
만화로 된 말이야기는 특히 아이들에게 인기다. 겨울방학을 맞아 국립민속박물관에는 아이들의 관람이 끊이지 않았다. <말>특별전을
찾은 아이들은 만화로 그려진 말이야기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아이와 함께 전시회를 찾은 한 관람객은 “만화로 보는 말에 관한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말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된 계기가 되었다”며 관람평을 전했다.
만화전시회 말고도 눈길을 끄는 또하나의 장이 있다. 바로 말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말타기같은 직접적인 체험은 아니지만 고구려의 수렵도를
사람크기로 제작한 세트장을 마련해 말을 타고 있는 장군이 되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물론 사진촬영이 가능하다. 설날 전후로는 말
스탬프를 준비하여 연하장을 만들어 주므로 이 시기에 맞춰 관람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말>특별전은 130여점의 자료와 만화, 체험의 장을 마련해 말에 대한 모든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이번 전시회는 매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는 띠에 관한 특별전의 연장으로 우리 문화에 대해 올바른 인식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말을 떠올리면 경마와 승마가 먼저 떠오르고
말띠여자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해프닝이 벌어지는 요즘이다. <말>특별전을 통해 말이 2002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자 희망을 안고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문의 : 02) 734-1346
이혜선 기자 hyesu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