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는 떨어져도 유류세 올라가는 이상한 계산법
고유가 논란의 쟁점은 ‘세금’이다. 물론 기름값 폭등은 비단 우리나라 사정만은 아니다. 1차적인 원인은 국제 유가의 인상에 있다. 하지만 원유가 인상과 별개로 국내 유류세의 비중이 높고, 석유 가격결정에 투명성이 없다는 점이 논란의 불씨를 당겼다. 97년 국내 석유제품 가격 자유화 이후, 시장을 감시하고 규제해야 할 정부는 사실상 정유사와 주유소의 폭리를 방관했고 정부는 비싼 세수를 거둬들인 셈이다. 어찌 보면 서로가 ‘윈-윈’관계로 휘발유 값 폭등은 정부, 정유사, 주유소의 합작품인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책임은 없단다. 기름 값의 60%에 달하는 유류세를 인하하라는 국민의 소리에 정부는 “절대 불가”로 못을 박고, 정유사는 주유소를, 주유소는 정유사에 책임이 있다며 서로 ‘네 탓’ 공방만 계속하고 있다. 대안 없는 논쟁만 오가면서 정부는 선심성 정책을 내놓지만 전혀 국민적 공감을 끌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무능력한 정부’라는 비난만 돌아올 뿐. 과연 석유가격 결정은 어떻게 이뤄지며, 가격의 실체는 무엇일까.
‘귀막은 정부’… 말바꾸기의 명수
현재 국제원유가는 사상 최고치인 배럴당 70달러 선을 넘나들고 있다. 국내 휘발유가는 리터당 1600원대로 땅값이 비싼 강남 등지에선 1800원대를 육박한다. 유가가 오를 때마다 정부는 국제 원유가 인상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진실이 왜곡돼 있었다. 국제 원유가격이 떨어져도 일반 휘발유 값은 찔끔 내리는 수준인 반면, 유가 상승 시엔 ‘기회’로 삼고 가격을 크게 올렸다.
2004년 8월에도 고유가 전쟁을 치른 적이 있다. 당시에도 ‘유류세 인하’ 목소리가 높았는데, 이종규 재경부 세제실장(당시)은 “국내 유가는 국제유가 상승과 달리 정유사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인상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었다. 이 같은 발언 직후 공정거래위원회의 유가 담합인상 조사가 착수되자, 정유사들이 유류가를 인하하더니 한 달도 못가 국제 유가인상을 이유로 휘발유가를 또다시 큰 폭으로 올렸다.
더구나 걸핏하면 ‘말 바꾸기’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도 더 이상 국민의 신뢰성을 얻기 힘들어졌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2004년 국제유가(두바이유)가 배럴당 32달러에 달하면 석유수입 부과금 인하, 32~35달러 수준이면 관세 인하, 35달러 이상이면 교통세 등에 탄력세율을 적용해 유류세를 인하한다는 방침을 내렸다. 하지만 2007년 현재 국제유가가 사상최고치를 넘나들면서 3년 전에 비해 두 배가 올랐음에도 유류세 인하는 ‘절대 불가’를 외치고 있다.
국내 유류세 비중, 선진국보다 높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휘발유 가격을 리터당 1,496.4원이라고 가정할 때 세전 가격은 616.07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유류세가 880.33원(교통세 526원, 주행세 139.39원, 부가가치세 136.04원 등)으로 전체의 약 58%를 차지한다. 경유가격의 세금도 50% 수준에 달한다.
국제적으로 휘발유 값에서 유류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12.9%), 캐나다(29.5%), 일본(40.9%) 등으로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에도 14위로 높은 유류세를 차지하고 있다.
경제적인 수준을 감안해도 국내 유류세의 비중은 엄청나게 높은 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국민총소득(GNI)을 고려해 우리나라 휘발유 가격을 100으로 가정할 때 일본(31), 호주(29), 캐나다(28), 미국(17) 정도다. 휘발유 세금 수준도 일본(23). 호주(19), 캐나다(15), 미국(4) 등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부는 “유류세 비중을 국민총소득에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론한다.
잘사는 나라는 국민소득 대비 세 부담이 낮고 못사는 나라는 세 부담이 높아지는데 단순히 소득대비 유류세 비중을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에 허덕이는 서민들로선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에 불과하다.
정부가 이런 저런 이유로 유류세 인하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지만, 사실 속내는 ‘세수 목적’이라는 시각이 많다. 우리나라처럼 단일품목에 유류관세, 수입부과금, 교육세, 교통세, 주행세, 판매부과금, 부가가치세 등 무려 7개의 세금을 붙이는 나라는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해 정부가 휘발유, 경유, 등유 등 유류를 통해 거둬들인 세금은 총 25조9,3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전체 세수 139조4,000억원의 16.9%(일본은 9.6%)이다. 국민 1명당 48만6,600원. 4인 가족 기준 194만6,400원의 유류세를 냈다는 얘기다.
더욱 아이러니 한 것은 석유 소비량은 줄어도 유류세는 해마다 조 단위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유업계에 따르면 최근 수 년 동안 석유 소비량 증가율은 1% 내외에 그쳤다. 하지만 유류세 총액의 증가율은 6~8%의 신장률을 보인 것. 특히 2004년 석유 소비량은 7억5,233만 배럴로 전년의 7억 6294만 배럴에 비해 감소했으나, 유류세는 1조4,100억원이 늘어난 22조3,500억 원을 기록했다.
백 마진의 ‘함정’
유류에 붙는 교통세 교육세 주행세 등은 ‘종량세’여서 유가상승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부가가치세는 기름 값이 오르면 세금 부담이 커져 정부의 유류세수는 늘게 된다. 바로 여기서 ‘백마진의 함정’에 빠져든다.
먼저 주유소에서 파는 휘발유값은 세전 공장도 가격에 리터당 526원의 교통세가 붙는다. 여기에 교통세의 15%와 26.5%가 교육세와 주행세로 가산된다. 여기에 공장도 가격과 세금합계의 10%의 부가세가 추가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출하가격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부가세 산출의 근거가 되는 공장도 가격이 실제 거래가격보다 30~60원 정도 높은 ‘백마진’이 적용돼 결과적으로 리터당 3~6원 정도의 부가세가 더 걷혔다는 얘기가 된다.
휘발유와 경유의 경우 지난해 소비량이 각각 95억 3,000만 리터와 227억 리터였던 점을 감안하면 한 해 동안 각각 572억 원과 1,362억 원의 부당한 가격을 소비자가 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재경부는 오래 전부터 정유사들이 석유공사에 공시하는 정유제품 공장도 가격을 높게 보고하는 것을 알 수 있었음에도 이를 모른 척하고 부가세를 더 거둬들인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정부를 정면 비판했다.
국내 기름소비의 상당부분이 산업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가격상승에 따른 세금부담은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현재 휘발유에 붙는 세금은 리터당 869원에 달한 반면, 기업들이 사용하는 중유에 붙는 세금은 리터당 60원에 불과해 거의 ‘면세’수준이다. 석유세금에 있어 소비자는 봉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 5월 발간한 ‘2006년 한국 에너지정책평가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석유소비에서 산업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43%(2004년 기준)이다. 이는 IEA 평균치의 2배에 이르는 것으로 한국은 IEA 회원국에 비해 산업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임 떠넘기기와 ‘땜질’식 대책
IEA는 “휘발유등 석유제품과 원유 사이에 다르게 적용되는 관세를 동일하게 할 것”을 권고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원유에 1%, 석유제품은 5%의 관세가 차등 적용되고 있다. 사실상 국내 대형 정유사들은 직영 주유소를 갖고 있는데, ‘차등화된 관세’는 수입제품에 비해 국내 정제제품에 이익을 주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작은 주유소나 정유사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유류세 과비중에 대해, 국회에선 ‘유류세를 10% 인하’ 법안이 발의(박재완 의원)됐다. 하지만 유류세 인하를 당론으로 정한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 10명을 제외하곤 대체로 부정적인 의견이 많아 현실성이 없다는 평가다. 세수를 거둬들여야 목적을 이루는 입장에서 정부와 국회의원을 뜻을 같이 했다고 볼 수 있다.
유류세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7%를 차지하는데, 유류세 인하분을 다른 세원에서 마련할 구체적 대안이 없다는 것이 궁극적인 반대 이유다.
정부가 유류세를 10%로 인하할 경우 전체 세수는 1조9,000억원 정도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재경부는 “유류세를 10% 내려도 소비자 가격의 변동은 크지 않기 때문에 기름값 인하를 체감할 정도는 아닐 것”이라며 “또 주유소 가격 자율화 등으로 기름값이 내릴지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여전히 유류세 인하에 부정적이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 등의 단기적 대책보다 “시장원리로 대처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이라는 것이 유류세 인하 요구에 대한 ‘땜질’식 대책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
정부는 7월부터 휘발유와 경유에 적용되는 관세율을 5%에서 3%로 인하한다고 했지만 실상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가격수준이 아니다. “기름값 부담되면 안 쓰면 그만”이라던 정부가 내놓은 경차 사용의 확대 지원 등은 “정부의 관용차부터 경차로 바꿔라”, “세금 때문에 차를 바꾸라는 얘기냐”며 가뜩이나 성난 시민들의 감정에 불을 지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