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치솟고 있다. 숨가쁘게 오른 주가지수 1800을 휘발유값도 덩달아 따라간다. ‘주가지수의 상승’은 투자자에게 희소식이지만 ‘기름값 인상’은 서민경제의 허리를 휘게 한다는 점에서 ‘천양지차’다. 대표적인 기름값 비교사이트 ‘오일프라이스워치’에 따르면 6월20일 현재 전국 휘발유값 최고가는 리터당 1,768원/최저가는 1,439원이다. 기름값이 ‘금’값이다. 대선을 앞둔 정치인들의 싸움에 시민들은 관심이 없다. 피부로 와닿는 ‘삶’이 더 절실하기 때문이다. 폭발일로에 있는 운전자들의 불만, 꿈쩍도 않는 정부. 대한민국은 지금 ‘고유가 전쟁’ 중이다.
기름값 폭리, 국민이 ‘봉’
차량으로 ‘업(業)’을 사는 서민들의 체감은 말할 필요가 없다. 얼마 전 일어난 “돈벌이는 안되고 기름값이 너무 올라 화물차 기름을 훔쳤다”는 50대 남성의 진술은 씁쓸함마저 남겼다. “주유 미터기 눈금이 올라갈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는 한 운전자의 말은 대부분이 공감하는 바이다.
한 번 오르면 내릴 줄을 모르는 기름값에 나름대로의 ‘살 길’을 찾는 현상도 쉽게 볼 수 있다. 기름값 비교사이트는 인기 폭발이고 유가를 줄이려는 운전자들의 눈물겨운 노력엔 박수까지 절로 쳐진다. 주유할인카드는 기본, 출퇴근 대중교통이나 자전거 이용하기, 싼 주유소 찾기, 에어콘 틀지 않기, 차량 무게 줄이기 등은 ‘상식’으로 통한다. 재경부, 산자부 등 관계기관과 다음과 네이버 등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는 고유가 정책에 대한 성토의 글이 줄을 잇지만, 해결의 열쇠를 쥔 정부는 귀를 막고 있다.
‘유가’와 관련해 가장 많이 지적되는 점이 ‘불합리한 가격구조’이다. 보험설계사 최동욱 씨(38세)는 “유가 자유화 이후 불투명한 가격 책정에 문제가 많다. 지방과 서울, 시내중심가와 변두리의 유가 차이가 크고 고속도로 주변 주유소 기름값은 ‘폭리’ 수준이다. 가격차가 크다 보니 내가 주유했던 곳보다 싼 곳을 보면 마치 ‘사기’ 당한 기분이다”고 말했다.
에너지시민연대는 “정유업체 상위 5곳의 연간 매출이 2조원에 이를 정도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면서 “소비자가격이 공장도가격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것은 정유업체들이 마진을 많이 챙겼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유류세 인하 요구와 관련해 “유류세를 인하할 것이 아니라 기름 소비를 억제해야 한다”는 정부의 황당한 논리는 시민들의 마지막 인내심에 불을 지폈다. 시민들의 ‘고혈’로 고위 공무원은 관용차를 타면서 서민들의 생계와 관련 있는 유가에는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고 있는 ‘이중성’ 때문이다. ‘관용차’를 ‘경차’로 바꾸라는 성토도 이어진다.
재정경제부 홈페이지의 ‘자유발언대’에 글을 올린 한 시민은 “기름 값이 비싸야 기름소비 적어진다는 말은 고위 공무원들이 타고 다니는 차부터 경차로 바꾸고 그런 소리해라. 먼저 솔선수범하고 정책을 발표해 달라. 이러다 국민들 난동 일어날지 모르겠다”고 성토했다. 한 시민은 “세금을 내리든지, 관용차를 경차로 바꾸든지 하라”고 말했다. 성난 시민들은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우며 ‘유류세 인하’를 촉구했다.
“유류세 올리는 대신 공무원 수 절반으로 줄여라”(김정은), “서민들 쥐어짜서 배불리는 공무원들”(자영업자) “정신상태 썩어빠진 재정경제부”(울산 사는 홍길동), “망조든 썩어빠진 관리들아, 국민이 봉이냐! 어렵게 벌면 뺏아가고 국민들에게 모범부터 보이고 복지 분배하라”(서민), “유류세, 이건 날 강도짓이다. 원가의 몇 배나 받아쳐먹고 세금인 것처럼 말하는 유류세. 이건 세금이 아니라 국민들 호주머니 돈을 강제로 뜯어가는 것과 다름없다”(시민)
유가 내리면 석유소비 늘어?‘불난 집에 부채질’
기름값을 내리면 기름소비가 많아진다는 재경부의 논리는 ‘불난 집에 부채질 한 격’만 되고 말았다. 기름값이 싸진다고 안갈 길을 일부러 가는 것도 아닌데, 이는 “국민을 ‘우민’으로 본다”는 것으로 해석돼 시민들을 자극했다. 휘발유값 좀 내렸다고 기름 펑펑 쓰고 나돌아 다니는 국민이 얼마나 될 것인가. 논란이 확산되면서 ‘유가를 내리면 석유소비가 늘어날까’에 대한 연구도 진행됐다. 산업연구원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휘발유 단기 수요 탄력성은 0.167~0.209로 이는 곧 세율을 인하해도 석유 소비량에는 거의 변화가 없음을 뜻한다.
유가인하와 석유소비량 변화가 비례하지 않다는 것은 한국석유공사의 석유수급통계에서도 증명된다. 2005년 3월부터 2007년 2월까지 휘발유 가격 동향과 소비 흐름을 비교해 보면 2년간 휘발유 소비가 가장 많았던 때는 2005년 8월이고 반대로 가장 적었던 때는 2006년 2월이다. 이는 휴가철인 8월엔 차량 운행이 많아 기름 소비가 급증한 반면 소비가 가장 적은 2월은 겨울철 외출을 자제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즉 휘발유 소비는 ‘가격 변동’이 아닌 ‘계절적 요인’과 관련이 깊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유가 논란은 수년전부터 계속돼 왔지만, ‘폭리’수준인 유류세와 정유업계의 ‘백마진’ 관행 등이 밝혀지면서 시민들도 이번만큼은 참지 않을 태세다. 사이버 서명운동도 거세게 일고 있다. ‘5대거품빼기운동본부’는 사이버 서명운동을 벌여 6월20일 현재 4만여명이 참여했다. “정유업계는 가격결정 형성과 실제 판매가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부는 석유가격 결정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라”고 요구했다(6월14일). 소비자시민모임은 “불안정한 시장의 정상화를 위해 정부와 정유업계가 즉각 조치를 취하라”는 성명서(6월 16일)를 낸 데 이어,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공동대표 박인호 이승규 ) 등은 정유사 기름 값 폭리 즉각 중지와 이윤 공개를 촉구하는 항의 집회(6월 18일)를 열었다. 녹색소비자연대는 800여명의 소송인단을 꾸려 정유4사 가격담합 불법행위에 대해 소비자 피해보상을 위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 중에 있다. 재경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한 시민은 “행동으로 보여주자”며 광화문 항의 집회를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