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극장가를 점령한 트렌드를 두 아이콘으로 잘라 말한다면 ‘메디컬 공포’와 ‘로봇 로망’이다. 포르말린 냄새가 코를 찌르는 으스스한 병원 괴담과 남성들의 장난감에 대한 향수가 영화팬들을 자극하고 있는 것.
‘하얀거탑’ 흥행 호러영화까지 번졌다
여름마다 쏟아지는 공포영화의 봇물 속에서 올해는 특히 병원과 의학을 소재로 한 호러물이 유독 많다. 올해 초부터 흥행몰이를 했던 드라마 ‘하얀거탑’ ‘외과의사 봉달희’ 등의 기세가 드라마에도 연결되는 분위기.
상영 중인 ‘검은집’은 1920년에 독일 학자 슈나이더에 의해 처음 소개된 의학용어인 ‘싸이코패스’를 소재로 삼았다. 보험금을 둘러싼 ‘싸이코패스’의 대결을 공포로 그려낸 이 영화는 완성도 유무를 떠나 제작초기부터 한국영화에서 사용되지 않았던 독특한 소재로 관심을 끌었다.
12일 개봉하는 한지민 주연의 ‘해부학교실’은 의대생들이 해부실습을 통해 겪는 공포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카데바’(해부용시체)를 소재로 미스터리와 핏빛 공포를 적절히 배합한다. 해부라는 가장 전형적인 병원 괴담을 다룬 본격 호러물이다.
샴쌍둥이’를 소재로 한 공포영화 ‘샴’이 17일 개봉해 의학소재 공포영화의 붐을 이어갈 예정이다. 신체의 일부가 붙은 채 태어나는 쌍둥이인 ‘샴쌍둥이’가 분리수술로 한 명이 죽고 한 명만 살았을 때, 몸은 떼어냈지만 절대 떠나지 않는 죽은 자의 영혼 때문에 남겨진 자가 겪어야 하는 공포를 그린다.
인체 훼손과 죽음의 공포
아예 병원을 배경으로 한 공포영화도 기다리고 있다. 다음달 1일 개봉예정인 ‘기담’은 1942년 경성의 한 병원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펼쳐낸 공포를 담고 있다. 1942년 경성의 현대식 병원이라는 배경 자체가 신선한 호러 감각을 담고 있는데다 억압받는 일제시대, 독립운동의 절정기라는 두 가지 모습을 하고 있는 1940년대의 특성은 독특한 공포를 자아낼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한다.
실제 1940년대의 경성은 서구 문명의 도입에 의한 혼란으로 애정의 도피 행각이나 자살, 엽기적 살인 등 기묘한 사건과 스캔들이 종종 일어났다. 자신의 간통을 숨기기 위해 조선인 하녀를 살해한 일본 간부 부인, 종기를 치료하기 위해 갓난아기의 뇌수를 먹은 남자 등 괴담이 많이 떠돌았는데 영화는 이 같은 혼란기의 분위기를 반영할 예정이다.
이 같은 메디컬 호러의 열풍은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메디컬 드라마는 오랜 시간 반복해 유행하는 인기 장르다. 특히 호러와 병원의 관계는 밀접하다. 인체 훼손과 죽음은 공포의 근원인데 병원은 이 근원적 공포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공간이다. 충무로의 경우 ‘닥터 K’ 등의 메디컬 공포물이 시도된바 있는데 실패하고 침체의 늪에 빠졌다가 드라마의 성공 등으로 부활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이들 영화가 자칫 소재주의에 빠지기 싶다는 점. 괴담적 감수성을 진부한 틀 안에서 반복하는 상투성을 넘어 얼마나 통찰력 있게 심리적 공포를 담아내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꿈의 공장에서 만든 변신 로봇의 추억
‘검은집’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있긴 하지만 본격 의학 호러들이 관객에게 어떤 반응을 얻을지는 아직 미지수. 그에 반해 남자들의 로망을 자극한 ‘트랜스포머’는 확실히 먹혀들고 있다.
개봉 첫날 31만 명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트랜스포머’는 마이클 베이와 스티븐 스필버그의 만남이라는 것부터 영화의 기대치가 높기도 했지만 ‘변신로봇’ 영화라는 점에서 특히 남성관객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 영화에 대한 평가도 ‘어린 시절에 사랑했던 로봇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해 좋았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룬다.
1970년대에 어린시절을 보낸 남성들이라면 단계별로 변신하는 ‘변신로봇’에 대한 추억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로봇이란 장난감 자체가 남성들에게 있어 젖병을 떼는 순간부터 유년기를 함께 보내는 필수 장난감임을 볼 때, 이렇다할만한 로봇 캐릭터 없이 살아온 남성들에게 ‘트랜스포머’는 어릴 적 로망이 현실로 스크린에서 재현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꿈의 공장 할리우드에서 최고의 제작진과 최고의 기술이 만들어낸 현란한 변신 로봇은 관객들을 어린 시절의 설레임 속으로 이끌어가기에 부족함이 없다.
부천영화제도 로봇 3파전
로봇 영화에 대한 인기를 타고 12일부터 21일까지 열리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도 로봇 애니메이션 3파전을 준비했다.
부천영화제는 올해 신설한 패밀리 판타와 애니 판타 섹션에서 ‘마징가Z’, ‘철인 28호’, ‘로보트 태권브이’ 등 일본과 한국을 대표하는 로봇 애니메이션을 상영, 어른들에게는 향수를, 가족간에는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통해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3040세대에게 추억의 아이콘이자 한국 애니메이션 최고의 영웅 ‘로보트 태권브이’는 패밀리 판타 섹션을 통해서 원작의 느낌을 최대로 살린 복원판으로 상영된다. 또한 애니 판타 섹션에서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물론 영화에까지 큰 영향을 끼친 일본의 만화가, 나가이 고에게 경의를 표하는 ‘추억을 찾아서: 나가이 고와 로봇대전’ 특별전을 마련 마징가Z의 24년만의 새 시리즈인 ‘마징카이저’와 ‘마징카이저 사투 암흑대장군’은 물론 2007년 새롭게 시작된 나가이 고 원작의 만화 ‘강철신 지그’를 소개한다.
영화제 관계자는 “복원판으로 새롭게 단장한 ‘로보트 태권브이’와 새로운 마징가Z 시리즈들을 비교하며 보는 특별한 재미까지 찾을 수 있어 관객들의 큰 호응이 예상 된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점은, 이 같은 남성 로망이 더 이상 남자들에게만 먹히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 예전 ‘영웅본색’이 남성의 전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에 비해 ‘트랜스포머’는 남녀 비율 비슷한 예매 비율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